여행하는 공예가 세상을 물들이다
여행하는 공예가 세상을 물들이다
  • 곽서희 기자
  • 승인 2021.07.0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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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물었다. 
여행하는 공예가인가, 공예하는 여행가인가.
이 세상 가장 산뜻한 대답을 들었다.

자기소개, 한 단어로 부탁한다.

처음부터 너무 빡센(?) 요청 아닌가(웃음). 나는 여행하는 공예가다.

무슨 뜻인가.

내가 만든 직업이다. 여행 스타트업 퇴사 후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직업은 왜 꼭 한 단어로 말해야 하나, 반드시 남들이 정해 놓은 직업 중에 골라야 하나, 의문도 들었고. 그래서 직접 직업을 창조했다. 여행도 좋고 공예도 좋으니, 둘 다 하자는 생각에서다. 

제주도 녹차밭에서 맞이한 아침
제주도 녹차밭에서 맞이한 아침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니, 부럽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데.

‘굵고 짧게, 얇고 길게’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 경우엔 얇고 길게 해 오다가 굵어지고 있는 경우 같다. 2012년부터 공예품 판매와 클래스를 운영해 왔지만 회사를 다니며 병행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 사정이 있어 다른 업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도 공예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요즘은 ‘N잡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직군을 바꿀 땐 충분한 탐색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다음 스텝이 보이고, 막막했던 머릿속에 실마리가 떠오를 수도 있다. 


닉네임 모모에 담긴 뜻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따왔다. 삶의 지표가 되어 준 책이다. 4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모모> 책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일본어 책은 오사카에서 샀고, 영문 책은 뉴욕에서, 태국어 책은 치앙마이에서, 독어 책은 독일 친구가 선물해 줬다. 주인공 모모는 ‘굿 리스너(good listener)’다. SNS를 통해 온통 자기 이야기만 하는 요즘 시대에, 경청은 정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닉값’ 하며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웃음).

제주도에서 로즈메리를 채집하고 있는 참여자
제주도에서 로즈메리를 채집하고 있는 참여자
로즈메리로 염색하고 만든 헤어 스크런치와 허브스머지
로즈메리로 염색하고 만든 헤어 스크런치와 허브스머지

여행과 공예를 어떻게 접목시켰나?

해외여행지에서 현지의 공예를 배워 와 선보이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작업실이 아닌 지역에서 여행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했던 워크숍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 있는 로즈메리 밭에서 직접 로즈메리를 채집하고 염색하는 워크숍이었는데, 제주도 도민들보다 서울에서 온 수강생들이 더 많았다. 하반기에는 로즈메리 밭의 농부가 제공하는 유기농 식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작년엔 ‘blue forest’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차렸다. 그곳에선 자연 재료를 활용한 보타니컬 드림캐처 만들기와 자연 염색 수업을 하고 있다. 6월에는 자연 ASMR 만들기, 식물 세밀화 그리기 프로그램 등도 운영했다. 자연과 공예를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플로리스트들이 주된 수강생들이다.

고질적인 똥손이다. 구제 가능한가?

물론이다(웃음). 

자연물로 만든 보타니컬 드림캐처
자연물로 만든 보타니컬 드림캐처

 

처음부터 공예가가 꿈이었나?

10대 시절 내내 호텔리어를 꿈꿨다.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해 호텔에서 인턴십도 수차례 경험했지만, 역시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는 게 좋더라. 휴학을 한 뒤 우연한 기회로 마크라메(매듭을 지어 여러 가지 모양의 무늬를 만드는 공예)를 배우게 됐다. 이태원의 한 펍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작은 플리마켓에 나간 것을 시작으로 2년간 서울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아트마켓의 셀러로 참여했다. 졸업하고 한국인 여행객과 해외 현지인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 스타트업에서 3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퇴사 후엔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참여했고, 서울시 청년공간의 프로젝트 매니저 업무 등을 하다가 좋은 기회로 지금의 작업실을 얻게 됐다. 


소질이 있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과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대학교 휴학 중에 배운 매듭 공예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오사카에 가서 본격적으로 직조를 배웠다. 직물을 짜다 보니 직접 짠 원단을 염색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자연 염색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보통은 일반적인 자연 염색을 배운 뒤 자연 염색 중 가장 어렵다는 쪽 염색을 배우는데,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쪽 염색을 먼저 배웠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순서다. 


쪽이라니, 낯설다.

가장 좋아하는 염색 재료다. 쪽(indigo) 염색은 다른 염색과 달리 불을 사용하지 않고, 약리적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해살이 식물인 데다 자생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매년 파종을 하는 등 각별히 신경 써 줘야 하는 작물이기도 하다. 조그만 밭을 가꾸게 된다면 쪽 농사를 지어 보는 게 꿈이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마을인 바두이 루아르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마을인 바두이 루아르
바두이 루아르에서 경험한 직조 체험
바두이 루아르에서 경험한 직조 체험

 

쪽 염색을 배우러 해외까지 가 봤다고.

2019년 9월에 일본 도쿠시마에서 4박 5일간 열린 워크숍에 참여한 적 있다. 도쿠시마는 일본 쪽의 본고장이다. 한국 발효 쪽 염색을 배우던 중에 만났던 미국 친구가 마침 도쿠시마에 있는 일본 쪽 염색 공방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친구도 만날 겸 방문했다. 그 공방에 머물면서 농업을 공부하는 일본 친구, 패션을 전공한 싱가포르 친구 그리고 나의 미국 친구와 함께 쪽 수확을 도왔다. 덕분에 한국 쪽과 일본 쪽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쪽 염색과 서핑을 접목시켜 공방 겸 숍을 운영하는 곳들도 방문했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썰만 들어도 재밌다. 같이 여행 다니면 지루할 틈이 없겠다.

수업 도중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수강생들이 나와 여행하면 재밌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모모와 함께 떠나는 크래프트 투어’를 현지 친구들과 기획하기도 했다.

장소는?

태국 치앙마이. 공예가 발달된 도시여서다. 치앙마이 도심에서 여러 공예 브랜드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여하고, 태국 소수민족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현지 음식을 먹고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투어인데, 코로나 때문에 잠정 연기됐다.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그날이 오면 꼭 한 번 진행해 보고 싶다.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 옷을 입고 만들었던 인도네시아식 제사 상(daily offering)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 옷을 입고 만들었던 인도네시아식 제사 상(daily offering)

 

말 나온 김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 여행’은?

한국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국제교류 동아리 모임에 매듭 우정 팔찌 만들기 강의를 간 적이 있다. 반응이 좋아서 일본 오사카에서도 초청 받았다. 오사카에 사는 지인과 그의 일본 현지 친구와 함께 저녁마다 신사이바시의 길거리에서 공예품들을 판매하며 우정을 쌓았다. 이후 그 일본 친구가 오사카에 드라마 <심야식당>과 비슷한 이자카야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선물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방문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 친구의 성장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뿌듯했다. 


본투비(born to be) 여행자 같다.

어디서든 잘 자고, 뭐든 잘 먹는다. 현지화가 누구보다 빠르다. 현지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배탈이 난 적도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잘 나누고. 어딜 가도 잘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 에코 프렌들리, 지속가능한 여행 등이 트렌드다. 모모 작가의 작업들과 결이 맞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잠들어 있는 옷이나 오염물이 묻어 입지 못하게 된 옷을 자연 염색으로 살려 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면으로도 진행할 예정이고, 시간과 지역에 구애 받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키트로도 제작해 볼 생각이다. 바다에서 비치코밍(바다 쓰레기를 줍는 행위)을 하고, 주운 조개나 마모된 유리조각으로 드림캐처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태국 치앙마이 소수민족 마을에서 만끽한 풍경
태국 치앙마이 소수민족 마을에서 만끽한 풍경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염색 방법이 있나.

광물로 염색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광물이면, 돌 같은 것?

맞다. 돌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볼 수 있는 광물 중 하나다. 그래서 요즘은 숲에 가면 바쁘다. 색이 있는 돌을 보면 다른 돌에 그어 보곤 한다. 해외 작가의 자료와 수업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라 광물로 염색하는 법도 책이나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연구해 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 볼 생각이다. 

정원에서 채집한 꽃
정원에서 채집한 꽃
원단에 꽃을 뿌리는 작업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원단에 꽃을 뿌리는 작업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눈으로 보는 꽃잎의 색과 원단에 묻어 나온 색은 다를때가 많다.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순간이다
눈으로 보는 꽃잎의 색과 원단에 묻어 나온 색은 다를때가 많다.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순간이다
염색한 실크 원단은 손찢음해 부케를 만들 때 활용하면 아름답다
염색한 실크 원단은 손찢음해 부케를 만들 때 활용하면 아름답다

마지막 질문이다. 모모 작가는 여행하는 공예가인가, 공예하는 여행가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예와 여행 중 여행이 좀 더 좋을 때도 있다(웃음). 새로운 곳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이 익숙해지는 과정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하는 공예가가 맞는 것 같다. 여행은 수단이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고 내가 하는 것들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리고 삶의 견문을 넓혀 주는 수단. 반면, 사람들과 보다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공예다. 한쪽으로 기우뚱 기우뚱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두 가지 모두를 사랑한다. 둘 다를 한껏 품으며 살아가고 싶다.  

제주도 비자림 산책 중 인사를 나누었던 나무
제주도 비자림 산책 중 인사를 나누었던 나무
자연 재료로 만든 것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자연 재료로 만든 것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모모(황예지) 작가는 여행가이자 공예가다. 여행과 공예, 모두를 품고 싶어 둘 다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자연과 천천히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blueforest_momo

 

글 곽서희 기자  사진 모모(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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