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영업비밀입니다만, 글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혹은 첫 문장)’에 있습니다. 여행글쓰기 강의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과제 피드백의 비중을 높여 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제목의 중요성입니다. 제목 없는 글(정확히는, 마땅한 제목이 찾아지지 않는 글)은 제목 없는 여행이었고, 그건 제목이 없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의 제목은, ‘스승이란’입니다. 이 레터를 마감하지 못한 찝찝함으로 새벽 3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물감통을 열었습니다. 굳은 붓을 깨워 물감을 입히고, 지난겨울 광주에서 멈춰 섰던 채색을 이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제가 안타까우셨는지, 열흘 전에 광주의 스승께서 올라와 물감과 붓을 주고 가신 덕분이었습니다. 두 손을 자판 치는 일 말고, 다른 일에 써 보고 싶어 하는 걸 알아주시는 지구상 유일한 분이죠.
어제의 저는 몇십 개의 첫 문장을 날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업으로, 학업으로, 봉사로도 글을 쓰지만, 백지는 언제나 설레고 두려운 대상입니다. ‘당신, 잘살고 있는가’를 묻는 리트머스시험지 같거든요. 이 새벽, 제 생각에 맺힌 제목은 ‘스승이란’이고, 그다음 문장은 ‘자꾸만 다시 깨우쳐 주시는 분’입니다. 적어도 저에겐 흡족한 이 문장이 다시 생각을 열어 주었고, 이만큼이나 원고지를 저벅저벅 걸어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조금 가불하자면, 10월에는, 늦어도 11월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격리 없는 여행은 여행의 격리도 해제시켜 줄 겁니다. 새로운 여행에 붙여질 제목들은 또 얼마나 신선할까요. 그렇다고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던 시간도 무용한 것은 아닐 겁니다. ‘제목 없는 시간’은 제목을 찾는 시간이고, 그 속에 새벽 같은 성찰이 있다는 걸, 코로나의 긴 터널을 저벅저벅 걸어 여기까지 온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자! 이제, 출근해 볼까요.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