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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버들과 말똥게, 재두루미의 도시 '100만 대도시 고양의 재발견'

  • Editor. 최갑수
  • 입력 2021.11.04 10:08
  • 수정 2021.11.0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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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고양은 생태 도시였다. 한강을 따라 들어선 장항습지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겨울이면 큰기러기와 재두루미가 날아온다. 선버들과 말똥게는 자연이 어떻게 서로를 도우며 공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장항습지
장항습지

오늘은 고양시 관광과에서 주관하는 ‘행주에서 대덕까지, 평화누리길을 걷다’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장항습지와 평화누리길을 돌아보며 고양시의 생태를 탐방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장항습지-장항버들장어전시관-평화누리길-대덕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3시간 코스를 따라가며 고양의 깊고 울창한 자연을 탐방했다.


●여기가 장항습지랍니다


오전 9시 고양관광정보센터에서 출발한 버스가 자유로에 접어들었을 무렵, 프로그램 진행과 해설을 맡은 사단법인 에코 코리아의 이은정 해설사가 말했다. “여러분 고양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이날 참가자는 모두 다섯 명. 참가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아마 50만 정도 되겠죠?” 그 옆에 앉은 다른 참가자가 말했다. “아냐, 많이 늘었어. 아마 지금은 7, 80만은 될걸?” 이 해설사가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고양시 인구는 현재 109만이랍니다.”

버스 차창 속으로 투명한 가을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이 해설사가 차창 너머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러분 오른쪽을 보세요. 자유로를 타고 갈 때마다 다들 보는 풍경이죠. 한강 변에 가득 펼쳐진 푸른 숲. 많은 분들이 모르시더라고요. 저기가 바로 장항습지입니다.

장항습지는 김포대교에서 일산대교 사이, 신평동·장항동·법곳동 등 한강하구에 길이 약 7.6km, 폭 약 0.6km의 규모로 펼쳐져 있다. 자유로를 지날 때 보이는, 한강변을 따라 펼쳐져 있는 버드나무숲이 있는 곳이 바로 장항습지다. 버드나무숲을 포함한 육지 면적은 2.7km², 수 면적을 포함 5.95km²로 여의도(2.95km²) 면적의 2배 정도 된다.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에 이렇게 울창하고 풍성한 자연이 자리하고 있다니 놀랍죠?”

장항습지는 지난 5월 21일, 람사르 협약 사무국으로부터 ‘람사르 습지’로 공식 인정받았다. 경기 지역 내륙 습지 가운데는 첫 공식 등록이다. 이로써 한국은 1997년 ‘대암산 용늪’이 람사르 습지로 처음 등록된 후 모두 24곳의 람사르 습지를 보유하게 됐다.

버스 안에서 이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습지 안에 드문드문 논이 보이죠? 장항습지에는 10만 평이 넘는 논이 있고, 6명의 농민들이 해마다 점용허가를 받아 벼농사를 이어오고 있답니다. 겨울이면 큰기러기, 재두루미 등이 날아오는데, 추수한 논에 물을 대어 놓으면 이 새들이 적으면 40마리, 많으면 60마리까지 모여 잠을 자다가 해가 뜨면 날아갑니다.”

 

장항습지는 대륙 간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서식지인데, 철새들은 낮에는 한강의 펄과 농경지를 오가며 먹이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치기만 했는데 이런 가치와 이야기가 숨어있었다니.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행주산성 역사공원
행주산성 역사공원

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사이 버스는 김포대교와 행주대교 사이에 자리한 행주산성 역사공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투어가 진행된다. “여기가 제 고향이에요. 제가 어릴 적에 이곳에 파가 많아 ‘파밭’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네요.” 1970년대 이후 철조망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막혀있던 곳이지만 남북 간의 평화 모드가 조성되던 2012년 철책을 걷어내고 지금의 공원으로 꾸며졌다. 오히려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에 환경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옛 군사경계초소는 지금은 ‘행호정’이라는 이름이 전망대로 바뀌었는데, 이곳에 서면 한강과 김포, 행주대교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호정
행호정

행주마을 사람들은 한강을 행호라고 불렀다. 지금도 고양지역의 토박이 주민들은 한강을 행주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호정 아래에는 겸재 정선이 1741년에 그린 <행호관어도>라는 그림이 붙은 안내판이 서 있다. 1740년 겸재 정선은 영조의 명을 받아 양천현령으로 임명된다. 영조가 당대 최고의 화가인 겸재 정선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한강 부근의 아름다운 산수를 화폭에 담아보라는 배려에서였다. 그림에는 한강과 행주나루의 전경을 비롯해 고양의 산수가 원경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강에는 14척의 배가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배 한 척에 탄 사람이 2~3명이에요. 돛대가 보이지 않는 작은 어선이죠. 이걸로 짐작하건대, 당시에도 이곳의 물살이 아주 잔잔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배들은 웅어잡이 배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림 속 버드나무는 빛깔이 봄 새잎이 돋을 때로 보이는데, 이때면 이곳의 웅어잡이가 시작되거든요.”

음력 4월 말은 행주나루에 온통 웅어잡이 배로 가득할 때였다. 웅어는 조선조 후기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어 웅어를 관리하는 ‘위어소’를 설치하고 상주할 정도로 고양지역의 가장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빨랫돌머리
빨랫돌머리

 

행호정에서 내려와 강가의 ‘빨랫돌머리’로 내려선다. 버드나무가 멋지게 가지를 드리운 이곳은 행주 아낙들이 빨래를 하던 옛 빨래터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발 앞까지 물이 들어와 찰랑거린다. 이곳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구간이다. “하루에 두 번, 밀물 때.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걸 볼 수 있어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날 때 물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걸 옛사람들은 ‘물이 선다’라고 표현했죠.”



●선버들과 말똥게의 공생공존


빨랫돌머리에서 나와 장항버들장어전시관 가는 길, 길이 4~5미터 정도 되는 나룻배 하나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이 배를 ‘낚거루’라고 부른다. 옛날 낚시질하는 데 쓰이는 작은 배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방금 본 ‘행호관어도’에 나오는 고깃배와 똑같이 생겼다.

낚거루
낚거루

배를 지나면 장항버들장어전시관이다. 경기도 생태거점사업의 일환으로 장항습지와 장항습지의 생태, 문화를 알리기 위해 2019년 만들었다. 장항습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장항습지에 모여 사는 생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에코백 만들기 등 재미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장항습지가 이토록 깊은 자연이었다는 사실에 놀랄 뿐 아니라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벽면에는 정용훈 화가가 직접 그린 장항습지의 사계가 그려져 있다. “장항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첫 번째 이유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생태계가 매우 독특하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인데요, 장항습지에서 자라는 선버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선버들은 이곳 장항하구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보통 나무는 젖은 땅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데, 하루에 두 번 물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선버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말똥게 때문이다. 말똥게가 버드나무 아래 얕게는 30cm, 깊게는 1m 이상 되는 서식굴을 판다. 이 굴은 땅 아래에서 연결되어 있다. 선버들은 말똥게들이 파놓은 구멍으로 신선한 공기를 얻고 말똥게는 선버들로부터 먹이를 공급받는다. 말똥게의 배설물은 버드나무에게 천연 비료가 된다. 자연의 아름다운 공생인 셈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연은 인간에게도 베풀어 줍니다. 버드나무숲의 산소 발생량은 일반 자연숲의 3배에요. 고양 시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선물하는 거죠.” 물새가 2만 마리 이상 찾아오면 람사르 습지 등록 기준이 되는데, 장항습지에서는 3만여 마리가 월동을 한다고 한다.

장항버들장어전시관에는 장어와 참게, 너구리 등의 박제와 행주 지역에서 사용한 장어잡이 도구인 뭉칫대, 황포돛배, 죽통 등등 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노랑부리저어서, 재두루미 등을 프린트한 에코백을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자연


전시관을 나와서는 평화누리길을 걷는다. DMZ 접경 지역인 김포와 고양, 파주, 연천 등 4개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기 길이다. 총 12코스가 있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걷는 구간은 행주나루에서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인 평화누리길 4코스(행주나루길)의 일부다. 약 1.5km, 20분 거리인데, 이 길을 50분에 걸쳐 천천히 걷는다.

걷는 동안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재미있는 설명이 이어진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는데, 직박구리가 먹이를 먹을 때 나는 소리라고 이 해설사가 알려준다. 길옆에 커다란 떡갈나무 잎을 한 따더니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약간 쌉싸름한 냄새가 나죠? 봄이면 한강에서 잡은 웅어를 이 떡갈나무 잎에 싸서 작은 집에 가곤 했습니다. 떡갈나무 잎에는 탄닌(tannin)이 있어 방충과 탈취 효과가 있거든요.” 이 해설사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천천히 걷든 길, 길섶 노란 산국이 피어 흔들린다. 이 해설사가 꽃을 따서 손가락으로 살짝 짓이겨 향을 맡아보라고 한다. 진한 꽃향기가 코끝에 싸하게 퍼진다.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기분이다. “어느새 가을이 이렇게 깊었어요. 가끔 꽃을 이렇게 따는 건 자연에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이라는 것이 그냥 가만히 놔두고 이용을 안 하면 쓸데없는 것이라며 다 없애버려요. 오히려 적당히 이용을 하면, ‘아, 이게 필요한 것이구나’하면서 놔두죠. 때로는 자연을 적당히 이용하는 것도 보존하는 한 방법이랍니다.”

대덕생태공원
대덕생태공원

평화누리길에서 나와서는 평화자전거를 타고 대덕생태공원을 돌아보며 투어를 마무리한다. ‘청년 라이더’들이 끄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대덕생태공원의 가을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따뜻한 가을 햇빛을 느끼며 평화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이 마냥 상쾌하고 즐겁다. 평화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 자전거 동호인을 자주 만난다. 단체 탐방을 나온 고등학생들도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사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3시간 동안 돌아본 장항습지와 대덕생태공원은 순천만국가정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보물 같은 이곳을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의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굳이 탄소를 써가며 먼 곳으로 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고양에 사는 사람들은 고양을 조금 더 살펴보자. 부산에 사는 사람은 부산을, 광주에 사는 광주를, 청주에 사는 사람은 청주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가족들과 손잡고 한나절 즐겁고 유익하게 보낼 의외의 보석이 많이 숨어있다.


*이 밖에 고양시의 다양한 생태·테마·역사·관광 소식이 궁금하다면 고양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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