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 - “중동과 이슬람, 내겐 너무 어여쁜 연인입니다”"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 - “중동과 이슬람, 내겐 너무 어여쁜 연인입니다”"
  • 트래비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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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햇살 따스한 봄날 오후, 덕수궁 앞에서 이희수 교수를 기다린다. <세계문화기행>과 <이슬람> 등을 읽으며 항상 만나 보고 싶었던 이희수 교수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데 이 교수가 활짝 웃으며 헐레벌떡 뛰어온다. 어느새 녹음이 우거진 덕수궁 안에서 고대하던 데이트를 시작한다.

중동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다

덕수궁 야외 벤치에 자리를 마련하자마자 이희수 교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시절, 사람들이 관심도 갖지 않던 중동 지역이나 이슬람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이희수 교수에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이에 이 교수는 “서울대 낙방이 제 인생에서는 새로운 계기가 됐어요” 한다. 입시에서 서울대를 떨어지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중동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중동에 대한 온통 왜곡되고 부정적인 시각들이 가득했는데, 이 교수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는 중동 지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온통 상처 받은 너를 내가 귀엽고 아름답게 보듬고 안아 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내 애정 때문인지 중동과 이슬람이 나에게 강하게 빨려 들어왔다”고 말한다. 

중동과 이슬람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니 그동안 보고 들었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이 교수는 그때부터 중동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터키의 50년 짝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이희수 교수는 83년 터키 유학길에 올라 10년 동안 터키에서 생활했다. “남들이 미국으로 유학 갈 때 나는 다른 이들과 반대편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 선택에 감사한다.” 그는 10년 동안 터키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외국인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단다. 터키인들의 따뜻함과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 덕분에 그의 터키 생활은 외롭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다가, 터키에 가서야 느꼈어요.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하지만 당시 한국은 미국 같은 나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결국 터키는 혼자 50년 동안 한국을 짝사랑해 왔던 거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아, 한국에 돌아가서 그들의 한국에 대한 짝사랑을 알려줘야겠다고.”

그런 그이기에 지금 한국인들이 터키에 보이는 관심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83년 이희수 교수가 터키로 유학을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도쿄로 가서, 바그다드와 아테네를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 국적기가 터키까지 직항노선을 운항하게 됐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트래비

문화여행을 키우다

이희수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동과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행’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는 자신같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접 그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그들과 적대적 이해관계에 있는 미국의 눈을 통해 중동을 봐 왔는데, 이제 한국에 다가오려는 그들을 우리 눈으로, 우리 친구로 바라보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행이 큰 몫을 했죠.” 

이희수 교수는 이렇듯 여행의 힘을 알기에 문화여행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다. 90년대 초 귀국 후 1주일에 유럽 16개국을 도는 여행 상품 광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단다. 대영박물관 같은 곳에서 30분도 채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이런 여행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이집트 한 나라를 14일에 걸쳐 돌아보는 여행을 기획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문화여행이 약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의 문화여행 동호회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회 유명 인사들부터 일반인까지 총 500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 유명 인사들이나 회사 사장 등 일 때문에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입니까? 저는 회사 사장들에게 사장이 빠진다고 돌아가지 않는 회사는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역으로 ‘어쩌면 내가 없으면 세상은 더 잘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시다. 내가 비운 시간 동안 다른 이들에게 기회도 주고, 본인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오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유럽과 미국 등 안락한 여행지는 나중을 위해 남겨 두고, 돈은 없고 힘은 넘쳐나는 젊은 시절에 중동이나 실크로드 등 오지로 떠나라고 말한다. “세상이 버리고 있는 진공의 세상, 그곳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십시오.”

내 사랑, 이스탄불이여!

지구를 두 바퀴도 넘게 돌았다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추천 여행지를 물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스탄불입니다. 이스탄불은 동·서양이 만나고 온갖 문명이 집중된 ‘살아 있는 인류 문명의 옥외 박물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곳,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꼽는다. 안달루시아는 유럽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가 만나는 곳이자, 이슬람과 가톨릭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 이스탄불이나 안달루시아 같은 곳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화합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이희수 교수는 이렇게 문화와 유적지 얘기를 함께 담아 내년쯤 <이슬람 문화 기행>이란 책을 낼 계획이다. 그리고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희수 교수의 이스탄불 100회 방문을 기념하는 책자가 발간될 예정이다. 한 출판사가 이미 수년 전,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는 이 책자 발간을 제안했다는 것. 대한항공 터키 이스탄불 직항 개통 기념으로 또다시 이스탄불로 떠난 이희수 교수. 이번이 92번째 이스탄불 방문이니 그의 100회 이스탄불 방문 기념 책자를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아흔 번이 넘게 갔지만 아직도 이스탄불에 갈 때마다 가슴이 떨립니다”라며 웃는 그의 미소가 봄 햇살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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