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5
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5
  • 트래비
  • 승인 2006.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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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라틴 아메리카!

“길 끝에 서서 허무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야”

드디어 끝에 섰습니다. 아프리카부터 라틴아메리카까지 일년간의 긴 여행의 종착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였습니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호스텔에 멍하니 앉아 소란스러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그리 허전하던지요. 남미 특유의 햇살이 제가 앉은 자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제 마음은 계속 그늘이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존경하는 조병준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여행이 끝날 때에는 ‘에너지 100%’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허무한지 모르겠다고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조 선배의 답이 왔습니다. 지당한 일이라고요. 그 허무, 그 슬픔이야말로 여행의 정수라고요. 나중에 영혼이 퍼석퍼석 건조해지고 거칠어질 때 조금씩 꺼내 찍어 바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지금의 허무라는군요.

낯선 길과 이별, 지독한 현실로의 귀환

그다지 큰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원하던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행이었지만, 일년 동안 여행을 한다고 해서 소심한 제가 대범하게 변한다거나, 제가 가지고 있던 얕은 지식이 뻥튀기처럼 부풀어 오른다거나 할 거라는 꿈은 꾸지도 않았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눈을 똥그랗게 뜨게 만드는 제 인생의 테마였지만, 단 한 번도 저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준 적은 없었거든요. 

아마도 지금의 이런 느낌은 낯선 길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일년간 적응해 온 노마드 인생과 작별하고, 다시 지독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서울에 돌아가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에 불안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무던히 애써야 하겠지요. 어쩌면 돌아가서 한동안은 건조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길 끝에 서 있는 저를 허무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더군요.

매순간 다스려야 하는 것이 삶인 것을

눈을 감고 라틴의 원색 세상과 아프리카의 드넓던 초원을 떠올려 봅니다. 가슴 벅찼던 순간들과 한없이 작아졌던 기억들이 올라옵니다. 그러고 보니 일년간 둘러본 세상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군요. 잊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으로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큰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말이죠. 그리고 아주 조금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지 않더라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고,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는 일 중독자였거든요. 한 순간도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누군가 나를 찾지 않으면 조바심 나 하는 그런 사람 말이죠. 

이제는 저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만큼이나 한 순간도 놓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여 가야 한다는 것도요. 매 순간순간 말이지요. 

그동안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를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지면이 아닌 길에서 만나 뵙지요. 삶의 길이든 여행의 길이든, 좋은 동행을 만나는 건 행운이겠지요. 길에서 만나면 우리 꼭 ‘안녕’ 하고 인사하자구요! See you on the road!

채지형 www.traveldesigner.co.kr


* 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끝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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