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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일간의 기다림, 타이완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22.11.29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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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이 열린 첫날,
여전하고도 낯설었던 
10월의 타이완. 

비 오는 스펀 거리
비 오는 스펀 거리

낯설어진 일상


비자를 발급받을 필요도 없고 격리도 사라졌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타이완이 국경을 전면 개방했던 2022년 10월13일, 나는 어떤 감정에 고무되어 있었다. 처음이라는 설렘과 불확실성에 따른 걱정, 마음이 둘 사이를 줄타기하다 어딘가 붕 뜬 상태로 머물렀다고나 할까. 세 시간 남짓 비행 끝에 타오위안공항 입국 심사대로 향하는 길, 공항 직원들이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무료로 나눠 줬다. 타이완여행을 기다렸던 이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지만 입국 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간 바이러스 전파력이 없는 나의 ‘청정한 상태’를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가. 코로나 이전에는 당연했던 일이 참 낯설었다.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니 현지 언론들의 열띤 취재 열기가 맞이했다. 무려 939일간의 입국 제한을 끝낸 날이었다.

타이베이 시먼딩 무지개 횡단보도
타이베이 시먼딩 무지개 횡단보도

미식의 천국에 왔으니 배부터 채워야 했다. 타이베이101에 위치한 딤섬 음식점 딘타이펑에 들어서면서도 어색했다. 타이완은 국경 개방과 함께 한시적으로 ‘0+7’ 건강 자율관리 제도를 시작했다. 원칙적으로는 7일간의 자율관리기간 동안 최소 이틀에 한 번은 코로나 음성 결과를 받아야 외출할 수 있었다. 방금 도착해 자가진단을 하지도 못했는데 자유롭게 이동해도 될까? 1차 검사는 도착 다음날까지 하면 되는 터라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 검열에 빠졌다. 타이베이101 입구의 체온 측정기를 지나자 36.4도라는 초록색 숫자가 떴다.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현지에서 먹는 딤섬은 왜 이리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앞에 쌓여 가는 접시들에 만족감과 뿌듯함이 쌓였다. 먹부심은 부리는 게 아니라지만 일종의 훈장처럼 보였다. 아무렴 어때. 여행이 주는 순간의 기쁨은 알고 있는 모든 표현으로 뽐내도 부족한 걸.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무는 내내 그 어떤 곳에서도 음성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물론 스스로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건 이 시대 여행자들의 책무다). 코로나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식사·조깅을 포함해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점.

가오슝 용호탑
가오슝 용호탑

6년 전 그날과 오늘 


친절하다. 깔끔하다. 길거리 음식이 맛있다. 지하철에서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 
2월에도 태양 아래는 뜨겁다. 약 6년 전 첫 타이완여행의 단편적 조각들. 철두철미한 계획형 친구와 한량 같은 무계획형 인간(나)의 좌충우돌 자유여행이었다. 남는 건 시간이고 모자란 건 돈인 학생이었던지라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밤비행기를 탔었다. 시먼딩 망고빙수 가게에서는 둘이서 빙수 하나를 나눠 먹다 1인 1빙수를 먹는 현지인들을 보고 놀랐고, 길거리에 서서 방금 나온 뜨거운 곱창국수를 후후 불며 먹기도 했다. 오랜만에 간 망고빙수 가게에서는 코로나 이후 첫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라며 직접 제작한 마스크를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요청했고, 곱창국수에는 여전히 탱글탱글한 곱창이 가득했다. 택시투어 대신 시간 맞춰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사서 고생하던 그 시절의 패기와 젊음이 떠올랐다. 

한적한 예류지질공원
한적한 예류지질공원

하필 태풍의 영향권이었다. 타이완에 있는 5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친구와 함께 한 첫 타이완 여행 때는 2월인데도 종일 해가 쨍쨍해 땀을 뻘뻘 흘렸건만, 날씨가 야속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예류지질공원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여 사진을 찍기조차 어려웠었는데 이제는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변했고, 여전히 그대로인 기암괴석들을 보며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임을 새삼 깨달았다.

스펀에서는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기찻길을 바라보다 잠시 비가 잦아든 틈을 타 재빨리 천등에 소원을 적었다. 6년 전 그때 빌었던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은 왜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나는 월급쟁이인 건지. 누군가 꿈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꿔야 한댔다. ‘강남 건물주’ 다섯 글자를 쓰고 야무지게 건물 그림도 그려 넣었다. 꾸물꾸물한 날씨 흐린 하늘로 날아가는 알록달록 천등이 유난히 사랑스러웠다.

 

욕심껏 타이완 일주


욕심났고, 욕심냈다. 타이완 6개 도시 타이베이, 뉴타이베이, 타오위안, 가오슝, 타이난, 타이중을 모두 돌아봤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데 꽤나 길이 막혔다. 타이완 사람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말이면 지방으로 많이들 놀러간다고 한다. 타이난 지안샨피 지앙난 리조트는 현지인들에게 인기인 휴양지이자 리조트로, 넓은 야외공원에는 소풍 온 가족여행객이 가득했다.

타이완 난도관광공장
타이완 난도관광공장

이어 난도관광공장으로 향했다. 다소 생소한 관광공장은 다양한 테마의 체험과 특산품 구입이 가능한 복합적 성격의 관광지를 말한다. 난도관광공장에서는 난을 이용한 화장품을 구입할 수도 있고, DIY 체험도 가능하다.

가오슝으로 이동해 독특한 하얀 외관을 자랑하는 가오슝팝뮤직센터와 다강대교의 붉은 노을을 바라봤다. 400년 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군사시설인 안평고보에 올라 타이난 거리를 눈에 담았다. 용과 호랑이가 지키고 있는 용호탑에서는 용의 입으로 들어가 호랑이 입으로 나와야 한단다. 반대로 한다면 불운이 찾아올지도(믿거나 말거나)?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아쉬움에 잠들지 못하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마스크를 벗고 공원을 달렸다. 타이완의 공기는 여전히 미지근했다. 

다강대교의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간
다강대교의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간

글·사진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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