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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 땅에서 본  시드니의 세 얼굴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3.06.13 08:45
  • 수정 2023.06.13 16: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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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시드니가 낯설어졌다. 
바다와 하늘, 땅에서 본 
시드니의 세 얼굴, 새 얼굴.

●BOAT CRUISE
악어의 입 안을 항해하는 법

여행에 있어서 보편적이라는 건 개성의 결여보단 다수의 호(好)에 가깝다.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분명한 포인트가 있다는 것. 시드니 여행에서 크루즈 투어는 ‘보편적’이다. 그리고 거기엔 마땅히 납득 가능한, 보장된 기쁨이 있다. 

시드니 동쪽 해안은 악어의 이빨을 닮았다. 마치 누군가 핑킹가위로 마구 오려댄 것처럼, 해안선을 따라 깊이가 서로 다른 만(bay)들이 들쭉날쭉 파여 있다. 튀어나온 육지 부분이 곧 이빨인 셈. 만마다 항구가 있어 조그만 요트부터 초대형 크루즈까지 다양한 선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악어새처럼 잇몸 사이사이를 들락거린다. 

시드니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건 바다와 요트다
시드니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건 바다와 요트다

그중 가장 유명한 항구는 시드니 중심부의 달링 하버(Darling Harbour). 시드니의 모든 관광객이 꼭 한 번씩 지나치는 명소이자 크루즈 투어의 대표 출항지다. 투어는 보통 달링 하버에서 출발해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거쳐 왓슨스 베이까지 1~2시간 동안 크게 한 바퀴 항해한다. 한여름 태양과 선선한 해풍. 물결치는 배 위에서 할 일이라곤 갑판 위에 벌렁 드러누워 한 손으로 손차양을 만들고, 샴페인을 홀짝이는 것뿐. 

앞 유리창을 가득 채운 하버 브리지
앞 유리창을 가득 채운 하버 브리지
항해 중 마주친 오페라 하우스. 햇빛 받은 조개 껍데기 같다
항해 중 마주친 오페라 하우스. 햇빛 받은 조개 껍데기 같다
조타 핸들 앞, 선장이 된 기분
조타 핸들 앞, 선장이 된 기분

보편성에 개성을 불어넣고 싶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유리 바닥 아래로 바다 생물을 감상하는 크루즈에 올라타거나, 오페라 하우스 공연 관람이 포함된 투어를 선택하거나. 나는 프라이빗 보트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좀 더 호화로운 방법을 택했다. 물론 모든 ‘스페셜리티’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25인승 요트 1시간 이용 요금이 대략 60만원 선인데, 사실 인당 약 2만4,000원에 할리우드 스타가 되는 기분을 누릴 수 있다면 가성비란 단어를 꺼내도 양심에 거리낌은 없다.

아기자기한 해변가의 집들. 가격은 아기자기하지 않다
아기자기한 해변가의 집들. 가격은 아기자기하지 않다

●HELICOPTER TOUR
수직선의 세계


어떤 도시에 헬기 투어가 있다면, 그건 그 도시를 반드시 하늘에서 봐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시드니 상공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시드니는 호주 대륙 동쪽 끝에 있다. 북쪽은 산악지대, 동쪽과 남쪽은 태평양과 맞닿아 있다. 산과 물이 있는 땅은 지루할 틈이 없다. 산에 모인 물은 강과 계곡이 되고, 강에서 운반된 퇴적물이 조각나면서 만이 되고,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 해변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담기가 좀 어려운데,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게 헬기 투어다.

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탑승 안내 비디오를 시청하고 몸무게를 재서 인원을 나누고, 헬기에 오르면 끝. 안전벨트를 메자 순식간에 땅에서 멀어지더니 본다이 비치(Bondi Beach), 쿠지(Coogee), 클로벨리(Cloverly)를 포함한 동부 교외 해안가가 금방 발아래다. 가격은 보통 20분 기준 20만원대. 분당 1만원 수준이지만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절벽 하나만 봐도 본전은 뽑는다. 하늘에서 보니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해안절벽이 해안선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약 1,500만 년 전부터 태평양의 파도와 바람이 열심히 깎아 만든 결과물이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기라도 하면 절벽의 속살이 샛노랗게 빛나는데,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워진다. 이런 풍경을 보면 아무리 심드렁한 사춘기 10대 소년일지라도 벌떡 일어나 ‘이야’ 하고 소리치게 된다.

조종사가 방향을 꺾자 이번엔 앞 유리창이 온통 도시다. 날아가는 새의 시점으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를 본다. 핸들이 휘어질 때마다 또 다른 각도의 풍경이 한 꺼풀씩 드러났다. 땅에만 붙어 있는 미물들은 알 수 없는 대기의 상태가, 평행선의 세계에선 알 수 없었던 수직선의 세계가, 창문 너머로 펼쳐진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 여행의 이유가 있다면, 헬기 투어에는 시드니를 여행하는 이유가 있다.

 

●WALING IN THE CITY

걷다 지칠 땐 젤라또 한입. 피로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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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피로연도 종종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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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 브리지를 한적하게 볼 수 있는 시드니 천문대
하버 브리지를 한적하게 볼 수 있는 시드니 천문대

●SYDNEY NIGHTS
구다이, 시드니

시드니를 걸으면 농부가 정성 들여 가꿔 놓은 텃밭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든다. 생명이 움트기에 이보다 더한 조건이 있을까. 날씨부터 환상적이다. 봄, 가을 평균 기온 20도 이하. 여름도 25도 이하로 쾌적하고, 겨울에도 10도를 넘는 따뜻한 날들이 이어진다. 공기는 또 어찌나 상쾌한지. 도시 하늘에 거대한 공기청정기라도 틀어 놓은 것 같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지만, 시드니시 정부 차원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대중교통 서비스 확대 등 대기오염 저감을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덕분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대륙답게 일조량도 엄청나다. 시드니 여행에서 흐린 날을 만났다면 조상 중 누군가 대역죄를 지었나 의심해 봐야 할 정도. 이런 땅에서는 나무도, 풀도, 사람도, 무럭무럭 자란다. 

세인트 메리 성당은 벌써 가을 냄새가 난다
세인트 메리 성당은 벌써 가을 냄새가 난다
대학교 쉼터에 놓인 탁구대마저 감각적이다
대학교 쉼터에 놓인 탁구대마저 감각적이다

시드니가 걷기 좋은 도시인 건 꼭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시드니는 보행자 친화적이다. 차와 사람 중엔 무조건 사람이 우선. 아무리 좁은 골목일지라도 차가 사람보다 먼저 가는 법이 없다. 도심 내에 쉴 곳도 많다. 높은 건물 사이로 조금만 걸으면 작은 공원이 나오고, 몇 발자국 떼면 광장에 쇼핑센터다. 벤치든 잔디든, 다리가 아프면 언제든 맘 놓고 털썩 앉아버리면 된다. 

주말 저녁이면 발걸음은 서큘러 키(Circular Quay)로 향한다. 시드니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로, 서큘러 키 역에서부터 오페라 하우스까지 부둣가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데이트하고 싶어지는 야외 레스토랑과 바는 여기 다 모여 있다. 아무 가게나 골라 가도 연인에게 타박받을 걱정은 없다. 타이밍만 잘 맞춰 가면 하버 브리지 뒤로 노을이 녹진한 붉은 색으로 번지는데, 그게 또 그렇게 예쁘다. 로맨틱한 저녁의 완성.

호주 인사말 중 ‘구다이 마이트’란 게 있다. ‘G’day, mate(좋은 날이야, 친구)?’의 호주 발음인데,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도 그 어감이 안 산다. 아무튼 이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호주인들 특유의 유쾌함이 느껴지는데, 서큘러 키는 딱 그만큼 유쾌하고 활기차다. 할 일 없는 늦은 저녁. 서큘러 키를 설렁설렁 걷는 것보다 더 ‘구다이’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뉴사우스웨일스주관광청, 콴타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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