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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신혼여행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3.09.01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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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한 달이 된 친구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답니다. 좋겠다고 답했더니, 그게 전부냐고 되묻습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어쨌든 그 친구가 제게 연락한 목적은 그전에 동창끼리 뭉쳐 근황이나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고백합니다. INTP인 저는 모임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약속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친구라는 게 막상 만나면 좋긴 한데, 또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괜히 푸근해진 서로의 외모만 품평하다가 신혼여행 이야기로 주제가 좁혀집니다. 이때부터 이 모임의 첫 번째 과녁판은 직업이 여행기자인 제가 됩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추천해? 음식은? 가격은? 깨끗해? 경비는? 치안은? 환승은? 숙소는? 벌레는? 옷차림은? 안 더워? 사실 저는 신혼여행 준비의 결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부부가 원하는 곳을 알아서 잘 선택할 겁니다. 좀 더 정확히는 아내가 바라는 곳을 선택해야 편할 겁니다. 이제 막 결혼한 유부남이라면 본능에 따라 위아래로 끄덕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윽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친구가 두 번째 과녁판이 됐습니다. 저는 불현듯 속으로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그 질문을 꺼내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놈이 저질러버리고 맙니다. “일본은 너무 가깝지 않냐? 신혼여행 인생에 딱 한 번 가는 건데 다시 생각해 봐라…” 말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내랑 다시 상의해 봐야겠네”라며 넘긴 두 번째 과녁판 덕분입니다. 잘 살 것 같습니다.

여행은 깊고 끈끈한 기억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낯선 환경에 본능적으로 예민해지기 때문입니다. 무감하게 지나칠 만한 하루의 순간과 미묘한 서로의 변화를 느끼고, 그 찰나를 양분 삼아 살아가기 위함이 ‘신혼여행’입니다. 사랑이 팽배한 순간이라면 거리는 시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남의 신혼여행에 소금을 뿌려댄 그 친구는 다행히도 미혼입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약속할 때가 된다면, 분명 그날의 소금을 반성할 겁니다.

어느덧 수많은 부케가 떠오르는 가을이 다가옵니다. 그에 맞춰 9월의 <트래비>는 사랑을 나누기 좋은 여행지들을 담았습니다. 이제 최종 마감까지 단 30분, 마음이 켕깁니다. 이번 레터, 제가 쓰고도 조금 느끼합니다. 사랑을 ‘사랑’이라 적나라하게 적는 것이 언제 익숙해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트래비> 강화송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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