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언제 이렇게 변한 건지. 힘들고 바쁠 때는 하루가 참 더딘 것 같다가도, 시간은 결국 쏜살처럼 흘러갑니다. 문득 냉정하게 느껴집니다. 인생의 끝에서조차 돌아보면 빠른 것이 시간일 텐데, 멈추지 않겠죠. 2번의 마감만 더해 내면 2024년입니다.
저는 며칠 전 오스트리아에 다녀왔습니다. 각국에서 모인 여행기자들과 온종일 소란스럽게 논쟁하다 돌아왔습니다. 논쟁의 주제는 ‘종이’였습니다. 종이 잡지의 존폐. <트래비> 독자님들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스페인 매체에서 온 ‘그녀’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는 종이 잡지를 만들고 있지만, 근 몇 년간 종이 잡지를 사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었고, 자신도 그녀와 마찬가지라며 동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답을 찾고자 하는 논쟁은 아니니,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같은 주제로 떠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했습니다. 아직 이토록 열정적이고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종이에 집착하고 있어서, 그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와 바로 다음날부턴 <트래비> 마감에 몰두했습니다. 시차에 적응하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냉정한 세월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레터의 마지막 마침표가 찍히면 드디어 마감입니다. 힘든데 뿌듯한 기분입니다. 맞습니다. 체력은 좀 약하지만, 저도 여전히 종이에 진심인, 열정적이고 수다스러운 사람입니다.
10월호에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여행지를 담았습니다. 쓰촨성, 타이완 아웃도어, 그리스 메솔롱기, 베트남 기차여행, 세부, 말레이시아, 샌프란시스코. 반가운 이름도 있습니다. 예술 소비자로 돌아온 <트래비>의 전 부편집장, 천소현 작가가 지금 핫한 유럽을 소개합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 하늘, 이 단풍, 이 청량함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여행을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쏜살처럼 흐르는 게 시간이자 계절입니다.
<트래비> 강화송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