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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어워즈 2023 'Memorable Moment'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3.12.09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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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취재부가 선정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순간’
그리고 ‘최고의 여행지’(2022년 11월~2023년 10월 기준)를 뽑았다.

●EDITORS’ CHOICE AWARDS 2023 | Moment

Day after heavy snow
강원도 평창 대관령 

| 손고은 기자

내게 가장 두려운 계절은 겨울이다. 추위를 버티느라 잔뜩 힘이 들어간 승모근이 불쌍해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 편. 출퇴근만으로도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는 계절이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여행은 겨울에 있다.

1월의 어느 날,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 다음날, 하루만 이불 밖에서 놀아보자는 친구 손에 이끌려 강릉 여행을 강행했다. 가는 길은 온통 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얀 설산은 푸릇푸릇한 봄‧여름의 산과 알록달록한 가을의 산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냈다.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스위스?’라는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달려가 폭신한 눈길도 걸었다.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추웠는데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제철 음식이고, 가장 즐거운 여행은 제철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회수차 안에서
홍콩 ‘사이클로톤’

| 강화송 기자

얼마 전 사이클로톤(Cyclothon) 대회를 다녀왔다. 사이클로톤은 홍콩에서 열리는 대규모 자전거 대회다. 대회라는 게 꼭 경쟁을 의미하진 않는다. 프로 선수부터 자전거 동호인, 일반인, 여행객 등 기본적인 체력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이 참여하는 캐주얼한 행사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순위가 없는 건 아니고.
 
어쨌든 출발선에 섰다. 대략 한 5,000명 정도가 참여했으니, 그래도 1,000명 안에는 들겠지. 필자 3대(벤치프레스 & 데드리프트 & 스쿼트) 420kg을 드는 남자, 출발 신호가 떨어졌고 페달을 굴렸다. 연배 그윽하신 어르신 한 분이 철물점 앞에서나 볼듯한 고물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스쳐 가신다. 페달을 밟아도 멀어져가는 당신. 대회 시작 10분경과, 5,000명 중 현재 순위 4,997등. 대회 당일 새벽에 빌려놓은 자전거 뒷바퀴가 터져있었다(핑계가 아니다).
 
아스팔트가 바퀴를 빨아들일 때마다 렌탈숍 직원의 얼굴을 생각하며 정확히 27km 지점에서 타임아웃. 회수차에 올라탔다. 회수차는 자전거 대회에서 시간 내 완주하지 못했을 때 탈락자의 자전거를 회수하는 대형 버스다. 자전거 대회를 취재하러 가서 회수차 내부를 취재해온 기자. 아마 내가 세계 최초가 아닐까. 올해 내게 최고로 인상 깊었던 순간은 올해 내가 가장 굴욕적이었던 순간. 자세한 이야기는 <트래비> 1월호에. 참고로 회수차에 10명 탔고, 젊은 사람은 나 하나였다.

 

이토록 파란색
괌 ‘돌핀 크루즈

| 이성균 기자

자칭 바다 수집가에게 큰 충격을 준 ‘괌’. 나쁜 의미는 아니고 굉장히 인상적인 방향으로. 유독 빛이 좋은 7월의 어느 날, 돌핀 크루즈에 탑승했다. 돌고래에 흥미가 없는 30대 아저씨는 아이들과 달리 영혼이 가출한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무심한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배 갑판에서 바다를 보고 전기가 오른 것처럼 짜릿했다. 푸른 바다가 아니라 진짜 파란 바다였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파란색이라고 속삭이듯이. 이 색상을 고스란히 사진에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그저 그때 그 바다와 닮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투어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자 얼굴 표정은 정반대가 됐다. 아저씨는 상기됐고, 돌고래를 못 본 아이들은 심술이 잔뜩 났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다 미안하다. 어떤 수단을 활용해서도 표현하기 힘든, 그래서 계속 보고 싶은 바다이다. 세상 모든 여행자가 봤으면 할 정도로. 

 

천만번의 페달질
스위스 ‘트레몰라 산고타르도’
 
| 곽서희 기자

자전거로 스위스를 달린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MTB부터 로드 바이크까지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으니, 체력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어느덧 마지막 코스였다. 멈추라고 했다. 그만하면 됐다고들 했다. ‘충분’하단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누구랑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지는 느낌이 들었고, 싸워 보지도 않고서 질 준비부터 하는 듯했다. 그럴 순 없었다. 기자로서도, 여행자로서도. 그래서 달렸다.
 
고통, 분노, 피로, 절망, 고독…. 세상의 온갖 뾰족하고 아픈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양팔은 파스로 뒤덮였고 왼쪽 허벅지엔 시뻘건 두 줄의 상처가 그어졌다. 그래도 밟았다. 천만번의 페달질,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완주’라는 단어를 부여잡고 죽기 살기로 애원하듯, 매달리듯, 그렇게 올랐던 것 같다. 2023년 6월22일 오후 3시42분. 나는 트레몰라 산고타르도 알파인 코스를 완주했다.
 
아직도 내가 이긴 게 중력인지, 체력인지, 내 자신인지 아니면 전부인지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훗날 2023년, 뜨겁게 흐르던 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위스란 세 글자, 그 이름일 것이란 사실이다. 

 

단풍 맛집을 찾으시나요?
강원도 철원 ‘한탄강’

| 김다미 기자

멀게만 느껴지던 ‘철원’. 최전방, 혹한 등의 키워드만 떠올랐고, 심리적으로는 강릉, 양양보다 멀었다. 우연한 기회로 철원에 가게 됐다. 그리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 덕분에 가을을 가득 느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걸으며, 한탄강과 주상절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협곡은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고, 구멍이 숭숭 뚫린 잔도를 걸으며 아찔함과 재미도 느꼈다. 철원은 이제 나에게 있어 혹한의 최전방 도시가 아니다. 아름다운 협곡을 보며 단풍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가을 여행지다.

 

계절을 깨우는 나무
유후인 ‘긴린코 호수

| 송요셉  기자

유난히 더웠던 여름,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가을, 올해는 계절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10월의 유후인이 이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한껏 여행자를 위로했다. 

긴린코 호수에 도착했다. 그리고 단 한 그루의 나무에 눈길을 빼앗겼다. 황금빛 잉어가 비추는 호수의 윤슬보다도. 그 나무는 다른 것들보다 한발 일찍 몸을 붉게 물들여 단풍을 선물했다. 무더위에 치여 잠시 잊고 있던 가을의 존재를 떠올리게끔. 조금 시원해진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나의 2023년 가을이 시작됐다.

 

글·사진 무교로16 취재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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