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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스폿] 비엔나 나비 천국, 슈메털링하우스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4.03.12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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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고작 나비 몇 마리’를 위한 나의 변론이다.

나비 하우스를 위한 변론 

발음이 좀 난감하다. 슈메털링하우스(Schmetterlinghaus)라…. 독일어인데 번역하면 슈메털링(Schmetterling)은 나비, 하우스(haus)는 집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나비 하우스’ 또는 ‘나비의 집’ 정도가 되겠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선 모든 여행자가 바쁘다. 발에 채는 게 관광지요, 눈만 돌리면 미술관에 궁전이라 아무리 걸음을 서둘러도 하루가 모자라다. 고작 나비 좀 보겠다고 금 같은 시간을 쪼갤 순 없는 상황. 나비 하우스가 지금껏 (유독 한국인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여기서 나비 하우스를 위한 변론 하나. 궁전 밑이 어둡다 했나. 나비 하우스 주변은 전부 메이저급 관광 명소들이다.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주지였던 호프부르크 왕궁이 바로 맞붙어 있고, 앞마당은 왕궁 정원 부르크가르텐이다. 명소들을 방문하는 김에 슬쩍 끼워 넣어 봐도 좋을, 최고의 동선에 위치해 있단 뜻. 게다가 관람 소요 시간도 길지 않다.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아 20분이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곳엔 나비가, 있다. 

‘나비가 있다’고 할 때의 ‘있다’는 단순히 공간의 점유를 뜻하는 게 아니다. 그 앞엔 ‘(살고)’의 괄호 속 내용이 붙는다. 나비들에게 이 유리 온실은 진짜 ‘하우스’다. 남미, 멕시코, 아프리카 및 기타 지역의 열대 우림에서 서식하는 약 150종 500마리의 나비가 연중 내내 제집처럼 살고 있다. 온도 26°C, 습도 80%. 정글과 똑같은 조건 속에 인간들은 땀부터 줄줄 흘리는데 나비들만은 보송보송한 날개로 유유히 날아다닌다. 

팔랑팔랑, 눈앞에서 올빼미나비, 모르포나비, 호랑나비들이 날갯짓을 한다. 이국적인 식물과 폭포 사이를 가로지르고, 꿀을 찾아 꽃에서 꽃으로 비행한다. 과일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먹방 중인 녀석들도 있다. ‘번데기 상자’에서는 실시간으로 고치에서 생명이 부화한다. 먹고 자고 날고 태어나고. 나비의 모든 균형 잡힌 일상이 이곳에 흐른다. 

나비와 인간 사이엔 어떠한 벽도 없다. 당연히 그들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도, 스트레스도 없다.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방문객 주위를 맴돈다. 가끔 누군가의 어깨나 무르팍에 앉아 쉬기도 한다. 가만 보면 좀 수줍어하는 구석도 있는데, 그게 또 좀…, 사랑스럽다. 날개는 큰데 비행 속도는 느리고, 눈에 잘 띄며 가볍기까지 해 최약체 중의 최약체 곤충. 공격당할지언정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인간이든 곤충이든, 이런 류의 생명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얼마간 다정해진다. 

인간 세상에선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 않은데, 나비들의 세상에선 어렵지 않은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그냥 왠지’라는 느낌이지만, 적어도 내가 관찰하기엔 그랬다. 지극히 단순하고 깨끗한 움직임. 그 잔잔한 세계를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즐겁다. 그건 이곳이 허물없이 친밀한 공간이자 찾아온 이에게 관대하며 누구나 무방비해질 수 있는, 집다운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이 작고 평화로운 집주인들을 위한, 나의 마지막 변론이다.  

*세계를 상대로 펼치는 ‘숨은 장소 찾기’. 곽서희 기자의 히든 스폿에서는 블로그 리뷰도, 구글맵 평점도 드문, 전 세계 숨은 스폿들을 찾아냅니다. 지도 위,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가 빼곡해질 그날까지!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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