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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낼 자신이 있는 ‘남’자들의 해남 템플스테이 여행기

  • Editor. 홍은혜 기자
  • 입력 2022.05.04 06:40
  • 수정 2022.05.0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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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닮은 두 벗이 두륜산 대흥사로 찾아들었다.
봄의 산은 웃으며 그들을 맞았고, 걸음마다 발끝에서 파란 새싹이 인사를 건넸다.

표충사를 둘러보는 두 사람과 설중 스님
표충사를 둘러보는 두 사람과 설중 스님

●莫逆之友 막역지우
첫 만남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막역지우(莫逆之友), 마음이 잘 맞는 사이라는 걸. 덩치도, 성격도, 심지어 웃는 모습도 닮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의 연을 맺어 온 이상윤과 류동우 씨. 상윤은 퇴사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중이다. 동우는 얼마 전에 대학 졸업 후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 그 중간에 서 있는 이들. 어찌 보면 이 두 벗은 갓 피어난 벚꽃을 닮았더랬다. 차분하면서도 사뭇 진지했던 청년들과 1박 2일 동안 함께했던 독자 동행 여행이었다. 대흥사 템플스테이를 위해 대구에서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연리근 앞에 다소곳이 앉은 상윤과 동우
연리근 앞에 다소곳이 앉은 상윤과 동우

두륜산에 위치한 대흥사는 신라시대의 사찰이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본진이기도 했었던 곳. 대흥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새벽예불, 북미륵암 산행, 요가 등을 진행한다.

천불전에는 높이 25cm 안팎의 소형 불상 1,000개가 있는데 표정과 몸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천불전에는 높이 25cm 안팎의 소형 불상 1,000개가 있는데 표정과 몸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同床異夢 동상이몽
저녁예불

저녁 6시. 예불은 30분 동안 진행됐다. 둘은 정성스레 절을 올렸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했을까. 예불이 끝난 후 슬쩍 물어봤다.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상윤의 대답에 동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뜻이 있어서 퇴사했기 때문에 막막하진 않아요. 도전에 대한 기대감도 있습니다.” 상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동우는 경찰 공무원 고시 공부를 막 시작했던 터라 고민이 깊어 보였다. 두 친구는 한때 같은 경찰행정학과를 다녔지만 이제 서로 다른 갈래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지만 간절한 마음은 같았다.

천장에 달려 있는 목각인형
천장에 달려 있는 목각인형
저녁예불에서 절을 올리는 두 사람
저녁예불에서 절을 올리는 두 사람

절을 하는 손끝, 발끝에서 티가 났다. 저녁예불을 했던 곳은 대웅보전. 대흥사의 중심 법전으로, 추사 김정희가 한때 대웅보전에 자신이 쓴 현판을 올린 적이 있다. 용두와 칠보문양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으며 대들보와 기둥은 휘어진 자연목으로 지었다. 보통 템플스테이의 경우 저녁공양 이후 저녁예불과 108배, 명상 등을 한다. 

범종각에서 때에 맞춰 종을 울리는 스님
범종각에서 때에 맞춰 종을 울리는 스님
동백나무가 대흥사 한쪽 구석에서 아름다움을 떨어뜨리고있다
동백나무가 대흥사 한쪽 구석에서 아름다움을 떨어뜨리고있다

●茶香忘憂 차향망우
스님과 차담

차향망우(茶香忘憂), 차의 향기에 근심을 씻어 내는 시간. 예불하며 키워 갔던 근심을 가득 안고 차담장에 들어섰다. 템플스테이 담당자인 포교국장 설중 스님이 들어오자 체험자들은 세 번의 절을 올리며 예를 갖췄다. 절에서 스님들이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차는 보이차와 녹차. 이날은 설중 스님이 주로 마시고 있는 보이차를 우려냈다. 스님은 불교의 정의, 다른 종교와 불교의 차이,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등을 유명 철학자들의 어록을 인용해 설명했다. 꾸벅꾸벅 졸 법도 한데 네 개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차담이 끝난 후 차 맛이 어떤지 물어봤다. “평소에 마시던 차와 비슷해요.” 알고 보니 동우는 평소에 물 대신 보이차를 마신다고. 스님과 차담이 처음이라던 상윤은 절이라서 그런지 차 맛이 좀 다르게 느껴졌다던데. 

스님과의 차담은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스님과의 차담은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차담은 대흥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스님은 가장 인상적인 차담으로 종교에 대한 갈증이 해소가 안 돼 불교도 공부했다던 가톨릭 신자 교수와의 담소를 꼽았다. 

‘대흥사 안내’ 시간에 응진당을 둘러보는 두 사람
‘대흥사 안내’ 시간에 응진당을 둘러보는 두 사람
응진전 앞에 있는 국보 삼층석탑은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라자장(慈藏)이 중국에서 석가여래의 사리를 가져와 보관한 사리탑이다
응진전 앞에 있는 국보 삼층석탑은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라자장(慈藏)이 중국에서 석가여래의 사리를 가져와 보관한 사리탑이다

●平旦之氣 평단지기
새벽예불


새벽 4시5분.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상윤과 동우는 맨투맨 위에 법복 조끼만 입고 춥지도 않은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새벽 예불은 저녁 예불보다 좀 더 길게 진행됐다. 예불문을 가끔 따라 읽고, 가끔 절을 했다.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예불을 끝내고 다시 숙소로 가는 길. “좀 졸던데.” 동우가 상윤을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제 몇 시에 잠들었냐 물어보니 10시 전에 잤다고. 그래도 새벽 4시에 눈이 떠지긴 하더라며 웃었다.

여름이면 계류 금당천에는 생명력이 넘쳐난다
여름이면 계류 금당천에는 생명력이 넘쳐난다

평단지기(平旦之氣). 맑고 깨끗한 새벽의 기운이 그들을 깨웠던 건 아니었을까. 동우는 종교가 불교다. 상윤은 무교지만 부모님이 불교 신자다. 어쩐지 때에 맞춰 절을 하는 모습에 어색함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평상시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절을 찾는 편이라고. 갓 퇴사한 상윤은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굳이 묻지는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기 때문에. 

흙길마다 노오란 꽃이 피었다
흙길마다 노오란 꽃이 피었다

●孤軍奮鬪 고군분투
요가 명상


동우의 괴로운 표정이 보였다. 눈은 질끔, 하늘로 뻗은 손은 부들부들. 상윤의 얼굴은 벌게졌다. 두 다리를 편 상태에서 앞으로 몸을 수그리는 동작을 할 때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렸다. 반면에 템플스테이 팀장님은 평온해 보였는데. 한쪽 벽에 걸려 있던 거대한 그림 속 부처의 표정과 같아 보였달까. 얼마나 힘들길래? 한 번 따라 해 봤다가 바로 이해가 갔다.

요가를 할 때 꽤 버거워 보였던 두 사람
요가를 할 때 꽤 버거워 보였던 두 사람

드디어 30분 만에 찾아온 마지막 동작, ‘그냥 누워 있기’. 상윤은 평소에 뛰는 운동을 좋아해 정적인 요가는 처음이란다. 동우는 골반이 틀어져 있었는지 요가할 때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고. 요가 강사이기도 한 대흥사 템플스테이 담당자의 지도 아래 진행됐으며, 명상 음악은 따로 없었다. 

부도전을 둘러보고 있는 설중스님과 두 사람
부도전을 둘러보고 있는 설중스님과 두 사람
돌에 새겨진 미륵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며 명상을 했다
돌에 새겨진 미륵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며 명상을 했다

●春山如笑 춘산여소
북미륵암 산행


춘산여소(春山如笑). 봄의 두륜산이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자연이란 언제나 그렇듯 신기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메마른 나무에 생명의 불씨라곤 없어 보였는데, 가지 끝마다 분홍색 점이 콕콕 박혀 있다. 아직은 수줍은 듯 봉오리 안에 꼭꼭 숨었지만, 봄의 기운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새싹과 나무들은 중력을 거슬러 힘차게 위로 뻗어 있었다. 푸른 잎사귀들은 지나가는 등산객의 등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두륜산은 평탄한 흙길과 제법 큰 바위들이많은 길로 이뤄져 있다
두륜산은 평탄한 흙길과 제법 큰 바위들이 많은 길로 이뤄져 있다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제법 많다. 5분만 올라가도 저절로 호흡이 가빠진다. 30분 정도 힘겹게 올라 거대한 돌에 새겨진 미륵을 만났다. 북미륵암은 용화전, 요사채 등의 건물과 2기의 3층 석탑으로 이뤄져 있다. 용화전은 마애여래좌상을 받들어 모신 건물, 요사채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두 사람은 용화전에서 설중 스님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두 눈을 감고, 손은 단전에 모으고, 반가부좌로 앉아 10분 정도 고요 중에 머물렀다. 

연리근 위에 서서 대흥사를 바라보는 두 사람
연리근 위에 서서 대흥사를 바라보는 두 사람

●逆旅過客 역려과객
소감문 쓰기


산행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활짝 핀 벚꽃과 동백이 두 사람의 가던 걸음을 자꾸 멈춰 세웠다. 3보 1인증숏. 아니, 삼보일배가 맞으려나. 사진을 찍다가도 노스님들이 지나가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바닥을 모으는 합장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불교식 인사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소감문 쓰기
마지막 프로그램인 소감문 쓰기

꽃의 유혹을 물리치고 들어온 숙소에는 하얀색 종이 두 장과 마스크, 기념품이 놓여 있었다. 종이 위로 템플스테이 소감을 써 내려가는 청년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진지함이 묻어났다. 상윤은 108배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오후 3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11시30분에 끝나는 일정도 짧게 느껴졌다고 했다. 좋았던 프로그램은 예불. 옆에서 동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담과 산행도 좋았다고 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나 했는데 두 친구는 여행을 좀 더 할 예정이었다. 상윤은 얼마 후에 터키로 여행을 또 떠난다. 여행지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려나 보다. 역려과객(逆旅過客). 세상은 여관이고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다. 

초록 나뭇잎들이 벚꽃이 진 자리를 메꾼다
초록 나뭇잎들이 벚꽃이 진 자리를 메꾼다

*템플스테이는 절에서 불교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200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프로그램은 절 예절 배우기, 발우공양 체험, 연등 만들기 등이 있으며 절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약은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대흥사 템플스테이 
주소: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요금: 디디고 템플스테이 성인 6만원, 청소년 5만원, 초등학생 4만원

 

글 홍은혜 기자   사진·취재협조 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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