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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 홀로 섬, 어청도를 찾아서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2.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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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는 전라북도의 유인도 중 육지에서 가장 먼 섬이다. 군산항에서 직선거리로만 59km. 계절이 가을의 문턱 앞에 잠시 멈춰선 어느 날. 어청도를 찾아 길을 나섰다.

●반값 뱃삯의 행복


2022년은 전라북도 섬 여행의 호기다. 군산시(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 어청도, 연도, 개도)와 부안군(의도, 식도, 왕등도)에 속한 4개 항로 4개 운행구간의 여객운임(터미널 이용료 제외)이 50% 할인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뱃삯은 거리에 비례하기 마련이지만, 주말 기준 2만6,800원인 운임이 1만4,100원으로 반토막나니 먼 섬도 부담 없다.

능선에서 바라본 어청도항과 막 입항한 여객선
능선에서 바라본 어청도항과 막 입항한 여객선

어청도 항로는 우리나라 27개 국가보조항로 중 하나다. 2021년 11월, 기존의 낡은 쾌속선을 새로운 페리선인 ‘어청카페리호’로 교체했다. 물론 교체 비용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알루미늄 재질로 건조되어 날렵한 몸체를 자랑하는 최신형 여객선이다.

선수 갑판에 설치된 배 모양의 포토존
선수 갑판에 설치된 배 모양의 포토존
국내 최초 알루미늄 재질로 건조된 289톤급 어청카페리호
국내 최초 알루미늄 재질로 건조된 289톤급 어청카페리호

어청카페리호의 객실은 1, 2층에 각각 의자형과 좌식형으로 나뉘어 있다. 총 19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은 상호 실내계단을 통해 이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깨끗하고 쾌적하다. 즐길거리도 쏠쏠하다. 2층 갑판 뱃머리에는 배 모양의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고, 뒤편에 쌍안경을 설치해 스치는 섬들과 바다 풍경을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타실을 개방해 여행객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타실을 개방해 여행객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후미 갑판에 설치된 승객용 관광 망원경
후미 갑판에 설치된 승객용 관광 망원경

여객선이 연도를 기항하지 않고 어청도로 직항할 때면 비교적 근접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섬 하나가 있다. 바로 십이동파도(十二東波島)다. 군산항에서 36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이름 그대로 12개의 무인도로, 행정구역상 옥도면 연도리에 속하며 1960년대 초까지 사람이 살았다. 낚시꾼들에게 출조지로 잘 알려져 있고 나무가 없는 초지라 섬 능선이 완만하다. 백패킹의 로망을 가져 볼 만도 하지만, 사실은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는 섬이다. 특정도서란 멸종 위기 또는 보호 야생동·식물종이 서식하거나 지형적·경관적 가치 및 식생이 우수한 도서를 대상으로 정부가 지정, 관리하는 지역이다. 물론 야영과 인화 물질을 사용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고래가 헤엄쳤던 그 옛날의 섬


군산항을 떠난 지 2시간 만이다. 드디어 어청도에 도착했다. 어청도항은 말굽 모양 산줄기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빨갛고 하얀 항로표지 등대 사이로 들어서야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어청도 앞에는 ‘국가 1급 대피항’이며 ‘서해어업 전진기지’란 수식어가 붙는다. 고래잡이로도 유명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본인 마을이 형성돼 있었으며 그들의 자녀를 위한 소학교도 설립될 정도였다. 이후에도 고래잡이는 1960~80년대 초까지 이어져 번성했다. 풍랑이 거센 날이면 천혜의 피항장으로 모여든 어선들 덕분에 섬 안의 술집과 식당 등은 불야성을 이뤘다.


좋았던 시절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 속에 묻히게 마련이다. 선착장 골목에 남아 있던 어청도의 옛 자취들 역시 하나둘 없어져 가고, 현재의 섬 삶을 위한 건물과 시설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선착장 앞에 위치한 신흥상회도 그중 하나다. 

건물은 현대식이지만 3대째 운영 중인 신흥상회
건물은 현대식이지만 3대째 운영 중인 신흥상회
도시의 슈퍼처럼 깨끗하게 정리된 신흥상회 내부
도시의 슈퍼처럼 깨끗하게 정리된 신흥상회 내부

민박집 방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신흥상회로 향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슈퍼 겸 민박집 겸 매표소다. 처음 어청도를 찾아온 사람에게는 여행자 센터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민박과 식당 소개는 물론 낚시 포인트, 트레킹 코스에 대한 안내까지 친절하게 해 준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와 다름없이 가게 안은 깨끗, 단정했고 다양한 상품 구색에 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얼음 컵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다. 특히 ‘어청도관광안내’라는 리플릿을 비치해 두고 있는 점이 더욱 신선했다. 자고로 섬에 대한 정보와 자료는 여객선터미널에 비치해 놓는 것도 좋지만, 섬에 도착했을 때 쉽게 구해 볼 수 있어야 하니까.

작고 오붓한 어청도 마을 안 포구
작고 오붓한 어청도 마을 안 포구

●당일치기는 아니 되오 


어청도 여객선은 주중에는 하루 1회, 주말에는 2회 운항한다. 주말 아침에 입도하면 오후에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여행 방법이다. 섬에서의 하룻밤이 필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청도는 겨우 몇 시간만을 투자해 여행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섬이다. 서정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등대, 능선을 따라 섬이 품은 순수 자연. 이 모든 것을 누리려면 최소한 1박2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정 사이사이에 오랜 세월 섬을 지켜 온 주민들의 삶과 그들이 마련한 정성스러운 섬 밥상도 놓칠 순 없다.

이제는 들꽃들의 세상이 되어 버린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
이제는 들꽃들의 세상이 되어 버린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

어청도에는 대략 10여 곳의 민박이 있다. 대부분 객실 내에 취사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고 식당을 겸해 운영한다. 캠핑 장소로는 2021년 폐교된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이 적당하지만, 마을과 교육청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텐트 없는 침낭과 비박색 모드에 비화식이라면 선착장 뒤편 산 중턱에 있는 전망 데크도 활용해 봄 직하다.

어청도 섬 능선을 걷다 보면 또렷한 한반도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어청도 섬 능선을 걷다 보면 또렷한 한반도 지형을 만날 수 있다

●등대는 어청도 여행의 반


1912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어청도등대는 섬의 서북 끝자락 항로표지관리소 내 바다 쪽 별도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하얀 등탑에 빨간 지붕과 아치형 미닫이문을 가진 등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습이 돋보이지만, 본체로 이어지는 좁고 낮은 돌담길과 울타리가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그림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붉게 물든 수평선을 배경으로 애틋한 정취를 발산한다. 우리나라 등대 15경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단연 손꼽히며,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어둠이 내리면 또 다른 신비감으로 태어나는 어청도등대
어둠이 내리면 또 다른 신비감으로 태어나는 어청도등대

어청도등대를 제대로 경험하려면 해 질 무렵 찾아가 완전히 해가 지고 난 뒤 등대의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파랗게 변신한 하늘과 등대에서 분출하는 또렷한 섬광을 두 눈에 담았다면, 어청도 여행은 이미 반쯤 성공이다.

섬 비탈에 가득 피어난 노란 원추리
섬 비탈에 가득 피어난 노란 원추리

●구불구불, 구불길을 따라서


어청도는 ‘구불길’이라는 이름으로 4개의 트레킹 코스를 조성해 두고 있다. 한번에 순환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걷다 보면 길이 중복되곤 한다. 선착장에서 치동묘와 사랑나무가 있는 마을은 이른 아침에 별도로 탐방하는 것이 좋다. 

바다 건너 어청도를 조망할 수 있는 목넘쉼터
바다 건너 어청도를 조망할 수 있는 목넘쉼터

추천 코스는 다음과 같다. 1일 차엔 선착장 뒤편 진입로를 통해 전망데크, 헬기장, 봉수대, 당산, 팔각정 쉼터를 거쳐 등대에서 낙조까지 감상한 후 곧장 마을로 내려오자. 2일 차 아침에는 일찍이 마을을 들머리로 팔각정쉼터까지 올라가 공치산, 해막넘쉼터, 목넘쉼터, 안산까지 걸은 뒤, 샘넘쉼터에서 농배로 내려와 해변산책길을 통해 마을로 원점 회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어청도 해안 데크는 마을에서 농배까지 이어진다
어청도 해안 데크는 마을에서 농배까지 이어진다

공치산 정상에서 해막넘쉼터로 내려오는 길에 동쪽 섬 능선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한반도 지형이 나타난다. 여름에서 가을 사이 섬 비탈을 따라 지천으로 자생하는 노랑원추리 군락도 눈요깃감이다. 바다 너머로는 외연도도 건너다보인다. 전북의 먼 섬에서 충남의 먼 섬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감회가 절묘하다.   

 

Travel Info

▶여객선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 → 어청도  
1일1회, 주말 2회 운항(09:00 출발, 소요시간 2시간~2시간 20분, 연도 경유)

 

▶SPOTS

봉수대
이동통신사 중계탑과 레이더기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봉수대는 당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었던 것을 평편한 자리로 옮겨 원형을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왜구들의 침입을 막고 인근을 지나는 배들의 길잡이가 돼 주기 위해 설치되었다. 

치동묘
어청도 마을 중앙에 있는 제나라 전횡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전횡은 그의 주군 항우가 전쟁에 패해 자결하자 부하 500명을 이끌고 망망대해를 전전하다 안개를 뚫고 솟은 푸른 섬에 닿았다. 그곳에 어청도란 이름을 지어 머물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인근 외연도에도 전횡장군의 사당이 있다. 

농배
해변 산책로가 끝나는 부근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농배라 부른다. 썰물과 밀물에 따라 온전하게 드러나거나 하부가 물에 잠긴 모습이 된다. 바위를 뚫고 자라난 풀과 나무가 이색적이며 물색과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준다.

사랑나무
어청도초등학교 옛 교문을 지키는 두 그루의 향나무다. 각각 옆으로 뻗어난 줄기가 중앙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랑나무라 불린다. 2021년 학교가 폐교되고 아이들이 사라진 후 외로이 운동장을 지키게 됐지만,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전해진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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