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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의 완성, 비양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3.01.27 10:12
  • 수정 2023.01.27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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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해수욕장에서 장노출로 촬영한 겨울 비양도
협재해수욕장에서 장노출로 촬영한 겨울 비양도

비양도는 우도, 마라도, 가파도에 비해 관광객 수는 적지만 가장 제주다운 섬으로 꼽힌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제주의 섬 중 가장 막내이기도 하다. 그런 비양도를 아직도 안 가 봤다면, 당신의 제주여행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다

전에 없던 모습으로

한림항 도선대합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20분. ‘늦었구나’ 하며 포기하려는 순간, 매표소 직원이 순발력을 발휘했다. 막 떠나려는 배를 멈추게 한 뒤 객실로 들어섰을 때, 모든 시선이 내게로 와 꽂혔다. 그제야 떠오르는 걱정 하나. ‘차 시동 제대로 껐나?’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배를 놓쳤으면 2시간은 족히 낭비했을 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잊고 섬으로 가기로 했다.

비양도항은 고깃배들의 피항장으로도 이용된다
비양도항은 고깃배들의 피항장으로도 이용된다

비양도선착장에선 꽤 많은 사람이 내렸다. 반은 주민이고 반은 탐방객이다. 선착장과 비양도항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대합실과 물양장 야외무대의 공사가 막바지였고 방문자센터도 리모델링 중이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벼운 호객행위도 있었다. 얼핏 눈으로 둘러봐도 못 보던 식당과 카페 또한 많이 생겨났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배를기다리며 먹는 보말죽은 별미 중 별미다
배를 기다리며 먹는 보말죽은 별미 중 별미다

비양도의 구름이 빠르게 흐르는 까닭은 바람 탓이다. 추위가 느껴질 만큼 쌀쌀했고,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가 금세 햇빛을 쏟아냈다. 비양도를 둘러보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섬을 둘러 조성된 해안 길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비양봉에 올라 등대를 보고 내려오면 대충 끝난다. 이때 시간이 넉넉한 탐방객은 식당에 들어가 보말죽을 먹거나 소라회, 참게 볶음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기도 한다.

비양봉 분화구는 비양나무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비양봉 분화구는 비양나무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수채화처럼 맑은 섬

매번 똑같은 코스다. 비양도에선 꼭 시계 방향으로 걸음이 시작된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카페 앞에는 대여용 자전거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1인용 5,000원, 2인용 1만원에 카페 이용자는 1인 1시간 무료란다. 그런데 비양도 해안 길은 순환 2.8km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로지 하나의 길로 뻗어 있다. 라이딩의 쾌감을 즐기기에 섬 길은 너무도 좁고 짧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비양도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비양도

마을을 빠져나오니 바다 건너의 협재와 금능해수욕장이 반갑다. 그곳에서 바라본 비양도는 투명한 초록 바다에 반쯤 잠긴 예쁜 섬, 어느 계절이든 수채화처럼 맑았다. 길이 서쪽으로 접어들고 제주 본섬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이면 코끼리바위가 나타난다. 코끼리바위는 우리나라 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름이다. 바위의 한쪽이 파도에 침식돼 구멍이 뚫리면 영락없이 코끼리바위로 불린다. 그러다 보니 굴업도, 승봉도 그리고 울릉도에도 그 이름이 있다. 

가마우지 떼가 찾아와 겨울을 보내는 코끼리바위 
가마우지 떼가 찾아와 겨울을 보내는 코끼리바위 
섬길에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주민들의 삶도 녹아 있다
섬길에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주민들의 삶도 녹아 있다

예상했던 대로 가마우지 군단이 바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눈이 내린 듯 바위 표면이 하얀 것은 녀석들의 배설물 때문이다. 가마우지는 우리나라 남쪽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였지만 점차 텃세화 되어 가는 추세다. 요즘은 ‘민물가마우지’란 이름을 달고 모든 계절,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

어라, 날아온 섬이 아니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 생겨난 화산섬이라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1002년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아 나오고 그 꼭대기에서 4개의 구멍이 뚫려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그 물이 엉기어 기왓골이 되었다’고 기록된 내용 때문이다. ‘날아온 섬‘이라는 뜻의 비양도(飛揚島)란 이름도 그로 인해 붙여진 것이다. 

비양도의 서쪽 해안은 화산석 전시장이다
비양도의 서쪽 해안은 화산석 전시장이다

그런 비양도에서 신석기시대와 기원 전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화산 폭발 전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바닷가 용암의 생성 연대도 2만7,000년 전임이 판명됐다. 그때 생성된 화산체는 사라졌지만, 흔적들은 서쪽 해안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애틋한 전설을 품고 있는 천연기념물, 애기 업은 돌
애틋한 전설을 품고 있는 천연기념물, 애기 업은 돌

높이 4.5m, 직경 1.5m의 ‘애기 업은 돌’은 비양도의 40여 개의 호니토(Hornito, 용암 내의 가스 분출로 생긴 소규모 화산체) 중 원형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대개는 내부가 빈 굴뚝 모양이다.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업은 모양을 한 호니토에는 구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130여 년 전, 구좌읍 김녕리에 사는 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비양도에 들어왔다. 작업을 마친 후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나, 우연히 아기를 업은 한 해녀만 섬에 남게 되었고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와 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선인장과 황근 섬을 기대하며

바닷가에 선인장 군락이 생겨났다. 손바닥 모양의 자생종인 것으로 보아 월령리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추측되었다. 월령리가 선인장 마을이 된 까닭도 멀리 남방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선인장 종이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선인장이 비양도의 명물로 등극할 날도 멀지 않았다.

장차 비양도 해안을 점령하게 될지도 모를 선인장 군락
장차 비양도 해안을 점령하게 될지도 모를 선인장 군락

펄랑못은 바닷물이 뭍으로 흘러 커다란 연못을 이룬 염습지로, 마을과 비양봉 사이에 있다. 밀물 때는 연못 아래에서 바닷물이 솟아나고 또 비가 내리면 민물이 고이기도 한다. 최근 펄랑못의 생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데크로드의 일부가 철수되고 못 주변에 있던 정자도 해안 쪽으로 옮겨졌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펄랑못은 철새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전에 없었던 염생식물인 황근도 눈에 띄었다. 여름이면 노란색의 꽃을 피워 노랑무궁화로 불리는 황근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된 토종 식물이다. 펄랑못의 환경이 복원지로 적당해서 작년에 식재한 것이라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생태의 보고 ‘펄랑못’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생태의 보고 ‘펄랑못’

비양봉 탐방로는 마을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뒤편으로 이어진다. 경사면마다 나무계단이 놓여  있어 정상(114m)까지 그저 편안하게 발걸음만 옮기면 된다. 정상의 무인 등대는 비양도의 대표 포토존이다. 비양도에 왔다면 이곳에서 사진 한 장은 남겨야 한다. 비양봉 전망대는 한림항, 금능, 협재해수욕장은 물론 한라산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품고 있다.

멀리 해남 땅까지 조망할 수 있는 비양봉 전망대
멀리 해남 땅까지 조망할 수 있는 비양봉 전망대

‘설마’에서 ‘역시’로

탐방객 대부분은 대략 2시간 남짓 비양도에 머문다. 매표소에서도 9시20분 표를 끊으면 11시35분 배로 돌아올 것을 권한다. 걷기만 한다면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여유와 느긋함으로 섬을 즐기려면 적어도 두 배의 시간은 필요하다. 여행의 보람은 오래 머무는 자가 훨씬 많이 가져간다. 섬 탐방을 마치고 한림항으로 돌아왔을 때, 출발할 때 품었던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알았다. 설마설마 했지만 역시나, 자동차 배터리 방전. 시동을 완전히 끄지 않은 채 배에 올랐기 때문이다. 보험사 긴급출동을 불러 충전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괜스레 웃음이 났다. 도대체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건지.   

비양봉에서 내려다본 제주스러운 마을 풍경
비양봉에서 내려다본 제주스러운 마을 풍경

▶여객선
한림항 비양도 도선 승선장 → 비양도 선착장  
일 8회 운항(왕복 9,000원/ 15분)
*천년호와 비양도호가 각각 일 4회 운항한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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