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발칸의 심장 속을 달리다, 세르비아

트래비기자     작성일제299호(2017.01) 댓글0건
이제는, 발칸
Bosnia-Herzegovina & Montenegro & Serbia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를 차례로 다녀왔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한 나라가 분리, 독립을 거쳐 세 나라가 되었다. 이 작은 나라들에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수없이 깃들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답하겠다. 복잡한 정치 상황, 슬픈 전쟁의 역사를 거쳐 지금은 제 빛을 담담하게 발하고 있는 세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발칸의 심장,
세르비아 Serbia
 
세르비아 구석구석을 차로 달리는 동안 생각했다. 땅이 가져야 할 모든 덕목을 다 갖췄다. 세르비아는 산, 들, 강이 두루 펼쳐진 축복받은 땅 위에 둥지를 틀었다. 주변 아홉 나라에 빙 둘러싸인 만큼 파란만장한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중심에 서기도 했고 변방이 되기도 했다. 한때는 코소보사태로 나토의 공습을 받고 유럽 내에서 완전히 고립된 시절도 지냈다. 모두 옛날 일이 된 듯, 그저 아름답다.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수놓은 오플레나츠 성당의 천장
베오그라드 구시가지는 활기로 가득하다
제문은 작고 아담하고 고요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마을이다
마침 베오그라드는 성 페트카를 기리는 축일로 칼레메그단 요새 내의 루지카 정교회에 몰려든 사람들의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생동하는 도시, 베오그라드 Beograd 

잘 노는 동네 오빠 같은 인상의 가이드와 동행했다. 이름은 세르지안. 그는 베오그라드에서 얼마나 많은 문화 관련 행사가 열리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패션, 아트, 디자인, 영화, 맥주, 음식 등의 다양한 페스티벌이 쉬지 않고 열리면 일 년이 훌쩍 간단다. 맥도널드를 지나가는 참이었다. 세르지안은 덧붙였다. “동유럽 최초의 맥도널드야.”

1988년, 당시의 베오그라드는 사회주의 국가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다. 맥도널드가 대단한 건지, 도시의 성격이 선천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 베오그라드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 풍의 건물 벽을 채색한 그래피티, 자유로운 청춘들의 활기에 문득문득 베를린이 연상되기도 한다. 인생의 한 지점으로 은유하자면, 감각을 타고난 청소년이 이제 막 성인이 된 느낌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베오그라드는 힙스터들의 천국이 될 것 같다. 세르비아의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같이 생긴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힙스터들의 천국이라니.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오래된 도시의 속살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로 발길을 옮겼다. 유럽의 구시가지가 그렇듯 대통령궁, 시청사, 극장, 성당 등이 공화국광장(Republic Square)을 둘러쌌다. 광장을 관통하는 대로변은 상점과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마치 서울 명동의 분위기다. 쇼핑거리를 축으로 뻗어난 골목들은 조금 더 고풍스럽고 멋있다. 아담한 카페, 우아한 디스플레이의 상점, 오래된 서점 등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다. 역시, 구시가지는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야 제멋이다. 구시가지에서 사바강변(Sava Riverside)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발길 닿는 곳마다 흥미롭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가득한 길은 다양한 분위기로 변주한다. 고작 30분 정도를 걸었을 뿐인데, 한국으로 치자면 청담동, 북촌, 가로수길, 연남동을 오르락내리락 관통하는 느낌이다. 목적지는 사바강변의 클럽과 펍이 밀집한 사바말라 지역. 가이드가 현지인들의 나이트라이프가 궁금하다면 들러 보라고 귀띔해 준 곳이다. 강변에서 귀에 착착 감기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맥주 네 잔, 치킨 윙 여덟 조각을 약 1만6,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넘쳐난다. 

베오그라드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는 곳이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 ‘전장의 요새’라는 뜻이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교차하는 지점, 우뚝 솟은 암반 위에 지어진 것으로 베오그라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주변으로 같은 이름의 공원, 동물원, 루지카(Ruzica) 정교회, 자연사박물관, 카페,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분수, 전쟁 때 사용한 무기를 전시한 야외 박물관 등이 있다.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사랑 받는 휴식처다.

베오그라드의 외곽 마을 제문(Zemun)은 다뉴브 강변에 조성된 거대한 야외 건축 박물관 같다. 로마네스크, 바로크, 고전주의 스타일은 물론 제체시온 학파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까지 아기자기하게 도열했다. 제문은 로마제국 이전부터 도시의 모습을 갖춰 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경계에 위치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헝가리에 속해 있었고 그 후에 베오그라드의 일부가 됐다. 강변으로 레스토랑과 카페가 몰려 있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다.
 
노비사드의 구시가지는 베오그라드 구시가지에 비해 아담하고 알록달록하다
페트로바라단 요새에서 내려다본 노비사드의 전경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노비사드 Novisad

베오그라드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세르비아 제 2의 도시 노비사드(Novisad)에 닿는다. 다뉴브강이 흐르는 노비사드의 전경을 한눈에 담기 위해 페트로바라단 요새(Petrovaradan Fortress)로 향했다. 덧문 여러 개를 거쳐 한참을 걸은 후에야 전망대에 이른다. 푸른 숲, 맑은 강, 시야를 빼곡히 채우는 오래된 붉은 지붕들 위로 뭉게구름이 둥실 떴다. 요새에는 동화 같은 풍경에 어울리는 시계탑이 있다. 어부들이 멀리서도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시계는 짧은 바늘이 분침, 긴 바늘이 시침이다. 이런 위트라니! 덕분에 시계탑은 노비사드의 랜드마크가 됐다. 

페트로바라단 요새는 17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건설됐다. 오스만 전쟁 당시 터키군이 단 한 번도 함락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단다. 과거 같은 자리에 있던 옛 요새를 오스만투르크에 빼앗긴 합스부르크 왕가의 절치부심이 유럽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요새를 만들어낸 셈이다. 21세기, 요새는 흥으로 가득한 공간이 됐다. 사람들은 운동하고, 산책하고, 소풍 오고, 축제를 즐긴다. 매해 여름, 유럽에서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로 꼽히는 엑시트 페스티벌(Exit Festival)도 이곳에서 열린다.

요새에서 내려다본 강 건너에는 구시가지가 있다. 베오그라드에 비해 한참 작은 규모지만 흔한 관광지의 구시가지와는 다른 정겨운 풍경들이 가득하다. 돈을 받고 책을 읽어 주는 사람, 거대한 비눗방울에 손을 뻗는 아이들, 주인과 함께 구시가지 골목을 산책하는 개들이 거리를 빛낸다. 
 
 
개천을 흐르는 물소리, 간간이 우는 새소리만이 밀레세바 수도원의 정적을 가른다
돔형식의 문을 통해 본 수도원 내의 예배당, 내부에 ‘성 분묘사의 대천사’가 있다
오플레나츠 성당 지하 분묘의 벽면을 장식한 예수의 생애
극적으로 아름다운 오플레나츠 성당의 내부
오플레나츠 성당의 전경
 
 

●세르비아 정교의 유물, 
황혼기의 교회들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네마니치 왕가의 왕들은 회고록을 작성하듯 인생의 황혼기에 교회를 세웠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왕들은 성인으로 선포되어 교회 벽에 얼굴과 이름을 두고두고 남길 수 있었다.

세르비아 서쪽의 산간지역인 프리에폴리에(Prijepolje)의 밀레세바 수도원(Mileseva Monastery)역시 궤를 같이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왕이 아닌 왕자가 세웠다는 것. 세르비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감히 왕자 주제에 야심을 품고 수도원을 세운 용감한 자는 스테판 블라디슬라브다. 그의 삼촌이자 세르비아 정교회 최초의 대주교였던 성 사바(St. Sava)가 불가리아에서 죽자, 그의 유해를 훔쳐 오다시피 해 이곳에 안치했다. 이는 밀레세바 수도원이 세르비아 정교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지만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왕족의 초상, 성모와 예수의 생애를 그린 교회 내부에 가득한 프레스코화 때문. 백미는 ‘성(聖)분묘상의 대천사’라는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성분묘상의 대천사’의 흰 옷깃은 거친 비바람과 회칠에도 끄떡없이 순백의 빛을 발한단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수도원은 세르비아 정 중앙에 위치한 마을 토폴라(Topola)에 있는 오플레나츠(Oplenace)다. 19세기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을 통치한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는 토폴라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왕족이니 높은 곳에 터를 잡아 궁전과 별장을 짓고 포도밭도 가꿨다. 그리고 다른 왕들이 그러했듯 교회를 세웠는데,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지은 교회가 오플레나츠다. 

지하에는 왕족의 묘가 있다. 화려하고 아늑하다. 한 맺혀 서슬 퍼런 얼굴로 죽어도 여기에 묻히면 평화롭게 영면할 것 같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교회 내부 길이는 30m, 돔의 높이는 27m다. 1만5,000 색감의 빛을 발하는 4,000만 개의 모자이크 조각을 맞춘 그림은 725개다. 금빛은 모두 24k 순금이고, 붉은 돌은 루비, 푸른 돌은 사파이어, 흰  돌은 크리스털이다. 거대한 높이의 돔, 벽면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모자이크화, 그림 속 모두와 눈을 맞추는 경이. 한참을 생각했다.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나는 더욱 겸손해져야겠군.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신이 내린 가장 큰 축복이야.’  
 
▶TRAVEL INFO
 
FOOD
세르비아
세 나라 중 가장 음식이 맛있고 다양하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중심이었으니, 지금은 독립한 주변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대부분 포함된다. 다뉴브강, 볼보디나 지방의 대평원, 산간 지역이 골고루 펼쳐진 축복의 땅인 만큼 생선, 고기, 신선한 야채와 밀 등 식재료가 풍성하다. 헝가리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던 탓에 굴라쉬(Goulash), 헐라스레(Halaszle) 같은 한식과 비슷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굴라쉬는 육개장 맛, 헐라스레는 매운탕 맛이다. 더불어, 빵이 진짜 맛있다. 빵순이들에게는 세르비아가 천국일 듯.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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