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④ 초원의 하늘을 보셨나요?
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④ 초원의 하늘을 보셨나요?
  • 트래비
  • 승인 2007.12.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다퉁의 ‘귀여운 택시기사 아저씨’와 작별하고 내몽골의 성도 후허하오터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내몽골을 찾는 이유는 광활한 초원과 그 위를 달리는 징기스칸의 말 때문이다. 중국에 오기 전부터 줄곧 머리를 길렀는데, 그것은 오로지 초원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머리를 질끈 말총머리로 묶고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타고 초원을 내달린다…. 다소 철없는 꿈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말발굽 소리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허하오터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흥정이 붙기 시작했다. 역 근처에서 마땅한 숙소를 찾았는데 호텔 건물에 있는 여행사 직원들이 초원에 가는 상품이 있다며 말을 걸어 온 것이다. 후허하오터에서 가장 가까운 초원인 시라무런으로 가는 1박2일짜리 일정이었다. 몽골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인 게르에서 잠을 자고, 몽골식 식사에 고비사막까지 맛볼 수 있는 상품의 가격은 400위안(한화 약 5만2,000원). 가이드북에 적혀 있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허나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는가. 썩 괜찮아 보이는 호텔급 숙소에서도 흥정이 가능한 중국이었다. 학생 신분을 들먹이며 돈이 없다 했더니 350위안까지 내려갔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욕심을 내보았다. 친구들이 이미 다녀왔는데 300위안이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직원들끼리 어느 여행사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다른 일행들에게 가격을 말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단체여행에 동참하게 됐다. 

다음날 아침 몇 명의 중국인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초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곳의 몽골인들은(한족일지도 모른다) 말이 아닌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삼고 있었고 사람들이 오간 자리에 압사당한 풀들이 흙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어 듬성듬성한 느낌이다. 게르는 흉내만 낸 것 같이 작았고, 저녁 때 보여 준다는 전통 공연은 중국 관광객들의 노래자랑 코너로 변질되었다. 

얼마의 돈을 내고 말을 타고 나서야 조금씩 대초원의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웃자란 풀들이 지평선까지 멀어져 가며 아득했고, 드넓은 평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와 말들이 한가로웠다. 하지만 환상은 역시 환상일 뿐. 말을 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엉덩이는 아파 왔고, 주위에는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 분명한 소규모 마을들이 자연스러운 초원의 흥취를 덜어냈다. 해가 지기 전 그들이 선보인 말 타기 시범과 전통 씨름이 한갓 ‘쇼’로만 보였던 것도 환상과 현실 간의 거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광활한 초원 위로 펼쳐진 광막한 하늘은 달랐다. 어느 사진작가가 그랬다던가. 몽골에 가면 구름사진이 절로 찍힌다고.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구름들은 초원보다도 더 넓은 하늘을 사람을 태운 말들보다도 더 자유롭고 경쾌하게 오간다. 해가 기울어지면 붉은 기운을 받은 구름들은 황금빛인 듯, 주홍빛인 듯, 보랏빛인 듯 뭐라 묘사할 수 없는 색감으로 물들다간 어둠에 몸을 숨기었다. 

밤이 깊어 술렁이던 사람들도 찬바람을 피해 게르로 들어가고 나면 새까만 하늘에 별들의 축제가 침묵 속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작은 마을을 벗어나 조금만 산책을 나서면 어디가 땅이고 하늘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라. 아니 고개를 들 것도 없이 별들은 팔방에서 떠올라 윙크를 하듯 까물거린다. 내가 이고 사는 이 하늘에 이토록 수많은 별들이, 이처럼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고 싶다면 100개의 소원도 모자라다. 아주 잠시만 눈길을 밤하늘에 머물고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빠르게 혹은 천천히 빗금을 그으며 빛을 발하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쇼’는 이렇게 언제나 내 머리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건만 이 순간 단 한 개의 소원도 떠오르지 않았다. 초원을 내달리는 바람은 풀들을 쓰다듬으며 달려와 체온을 조금씩 빼앗아 갔지만, 난 고개를 꺾은 채로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소원은 여전히 생각나지 않는데도 오랜 소원을 이룬 듯 가슴은 자꾸만 벅차올랐다.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중구 무교로 16, 5층 (주)여행신문
  • 대표전화 : 02-757-8980
  • 팩스 : 02-757-89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렬
  • 법인명 : (주)여행신문
  • 제호 : 트래비 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 라 00311(2009-10-13)
  • 발행일 : 2005-05-30
  • 발행인 : 한정훈
  • 편집인 : 김기남
  • 트래비 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트래비 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ktt@traveltime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