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⑧ 수향(水鄕)을 걷다-저우좡
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⑧ 수향(水鄕)을 걷다-저우좡
  • 트래비
  • 승인 2008.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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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수향(水鄕)을 걷다-저우좡


중국의 겨울은 서민들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겐 축복받은 계절임이 틀림없다. 북방지역에는 ‘누안치(暖      )’라는 난방용 스팀이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고, 이를 중앙에서 관리해 난방비를 따로 걱정하지 않고도 뜨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중국이라지만 따뜻함만큼은 공평해 보였다.
물론 문제점도 많다. 난방 조절장치가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때로 이 따뜻함은 지나치기까지 해서 한겨울에 창문을 열어야 할 만큼 후덥지근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또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탓에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1월 말부터 다음해 2월 말, 혹은 3월 초까지만 누안치가 가동된다. 이러니 늦가을이나 초봄에는 와들와들 떨며 잠을 청하거나 전기장판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지경이다.

아무튼 겨울은 어디에서고 반갑기만한 계절은 아니다. 베이징과 내몽골 등을 다녀온 이후 발이 다시 근질근질해질 무렵 ‘피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는 상하이, 그리고 상하이를 거점으로 삼아 인근의 쑤저우와 항저우, 그리고 저우좡 등 물의 도시를 당일 코스로 다녀오는 일정이다. 허나 상하이 푸동국제공항에 내려서는 순간 피한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상하이의 겨울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는 듣고 왔지만 완연한 겨울날씨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방지역인지라 누안치도 없으니 외풍이 심했던 민박집에서 잠을 청할 때면 다롄의 따뜻한 집이 향수병처럼 그리워지곤 했다.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돌아본 상하이는 추위 때문이었을까, 그리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동방명주를 비롯한 상하이의 휘황한 빌딩들을 황푸강 너머로 바라보는 와이탄의 야경도, 진마오 빌딩 88층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상하이의 전경도 추위로 움츠러든 어깨를 펴 주진 못했다. ‘上有天堂, 下有    杭(상요우티엔탕, 샤요우쑤항)’, 하늘에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지만 하루 이틀 일정으로 추위와 시간에 쫓기며 돌아보고 나니 남는 것은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그러나 물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저우좡(周庄)은 매섭고 습기 찬 겨울바람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상하이체육관에서 관광 전용 버스를 타고 아침나절에 도착한 저우좡의 풍경은 신비로웠다.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물안개가 어슴푸레하게 수로 위를 떠돌고 있었고, 회색빛깔의 건물들 사이로 자잘한 물그림자를 드리우며 흘러가는 나룻배들은 시간을 거스르듯 천천히 떠 간다. 야트막한 건물들에 내걸린 붉은 빛깔의 등롱은 그 희미함 속에서 제 스스로 빛을 발하듯 진홍색을 띄워 보냈다.

나룻배에 올라타면 몽환적인 분위기는 그 농도를 더한다. 고요함 가운데 찰박찰박 물살이 뱃전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뱃사공이 물을 젓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우뚱거리며 나무들이 서로 몸을 비벼 울리는 마찰음. 안개를 헤치며 배가 미끄러져 가는데 여자 뱃사공이 민요인 듯한 노래 한 자락을 뽑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경쾌하지도, 그렇다고 청승맞거나 한이 스며 있지도 않았다. 그것은 느릿느릿 삶을 저어가듯 노를 젓는 불규칙한 박자에 맞춰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배들이 손쉽게 오갈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봉긋하게 솟은 석교들과 물길을 따라가다가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으로 이어지는 자갈길은 오후 늦게까지 산책을 권유한다. 좁은 골목 좌우로는 잡다한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로 북적여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저우좡의 풍취를 덜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수로를 옆에 끼고 걷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이곳의 특산품이라며 차 한잔을 권한다. 이름은 아포차(阿婆茶). 사전을 찾아보니 어머니, 할머니 등의 뜻을 갖고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중국인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하루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말들은 잘 못 알아들었지만 겨울에 오길 잘했단다. 날씨가 따뜻하면 좁은 수로 마을이 내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해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한다. 하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저우좡이 파묻힌다면 그것이 어디 저우좡이겠는가. 추워도 겨울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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