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④ 메이리설산 길 끝에 서다
샹그릴라 ④ 메이리설산 길 끝에 서다
  • 트래비
  • 승인 2008.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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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트레킹 끝에 드디어 메이리설산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culture & story┃샹그릴라 ④ 메이리설산 길 끝에 서다

이제 길은 더욱 만만치 않다. 고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설산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고 위태로워 편안히 차에 앉아 나아가기를 허용치 않았다. 도로가 끝나고 사람과 말과 산양의 발자국만이 즐비한 산길을 걸어 메이리설산의 중턱 마을 위뻥에 다다랐다. 양보를 거듭하던 설산은 등을 떠밀며 그만 내려가라는 듯 더 이상 길을 내어주지 않고 우뚝 선 채 말이 없다. 길의 끝에서 뒤돌아서는 여행자에게 설산은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의 가사처럼 어서 내려가라는 듯, 가서 잘 살라는 듯 어깨를 툭툭 친다.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윈난성’ 여행기가 이번호를 끝으로 4회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서동철 기자는 지난 1년동안 ‘하얼빈에서 온 편지’,‘ 다롄에서 온 편지’등을 통해 중국을 장기 여행하며 챙긴 소중한 느낌들을 트래비 독자들과 함께 나눈바 있습니다.

마지막 계단, 더친

중뎬(샹그릴라)과 해발 3,500m의 더친을 연결하는 길은 그야말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만큼 위험천만하다. 구형 버스가 진사강을 건너자 난간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비포장길을 달려가는데 위를 올려다보면 산사태가 날 것만 같았고, 아래쪽으로는 안개가 가득한 협곡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했다. 중뎬에서 더친까지의 거리는 불과 160여 킬로미터. 하지만 길은 갈지자를 그리며 협곡을 타고 이어지니 6시간이 넘는 여행길이다. 

이 버스 안에서 중국인 두 커플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한 커플이 더친(德欽)에서 페이라이쓰(飛來寺)와 시당(西)을 거쳐 위뻥(雨崩)으로 가는 것보다는 니농(泥農)이라는 마을을 통해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이 훨씬 아름답고 트레킹도 수월하다며 다른 커플에게 동행을 제안했고, 이를 귀담아 듣고 있던 나도 손을 번쩍 들며 끼워 달라고 떼(?)를 썼다. 걷기에 좋고 풍경이 좋단 말보다는 입장료를 안 내도 되는 코스라는 말에 더 귀가 솔깃했던 것은 배낭여행자의 본능이었다. 두 커플 사이에 낀 외로운 솔로 신세였지만 아무튼 동행이 생겼으니 다행이었다.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을 이뤄 더친에서 차를 내려서니 택시기사와 가이드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룬다. 이 가운데 니마라는 장족 청년과 흥정 끝에 소형 봉고차를 타고 다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은 찌아비에촌(架別村). 이곳에서부터 메이리설산의 중턱 마을 위뻥까지는 오로지 도보만이 가능하다. 메이리(梅麗)설산 트레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협곡 중간 즈음에 란창강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좁은 길을 걸어 해질 무렵 니농에 도착했다. 꼴을 먹인 염소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집집마다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평화로운 산골마을이었다. 티베트식 식사로 저녁을 때운 일행은 집 옥상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장족들의 주식 가운데 하나인 칭커로 빚은 술을 홀짝이며 하늘을 보는데 달빛이 마치 태양처럼 밝다. 달이 구름에 가려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왔고 구름이 걷히면 마을뿐 아니라 란창강과 협곡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혔다. 난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길잡이 니마에게 고개를 꺾은 채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밝은 달은 난생 처음이야.”



1 란창강을 건너 니농으로 들어가는 니농교 2 니농에서 머물렀던 농가에서는 말린 옥수수를 땔감으로 밥을 짓는다 3 니농교를 지나 마을 초입에서 만난 쵸르텐.반드시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4 니농 농가에서 아기 염소를 잡아들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염소가‘메~’하고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낸다 5 거실을 비롯해 사당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는 니농농가의 내부

걸어서 위뻥까지 

니농에서 위뻥으로 가는 길은 들은 바대로 아름다웠다. 란창강으로 흘러드는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길가에는 폭포에서 흘러내려온 물길이 졸졸 흘러 말과 염소들의 목을 축여 주었고, 이끼 가득한 원시림을 지나는가 하면 갑작스레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야크들이 나타났다. 뒤로는 5,000m급의 바이망(白茫)설산이 든든한 배경을 이루고 목이 마를 즈음이면 때맞춰 시원하고 깨끗한 약수가 등장하곤 했다. 길잡이 니마는 산 사나이답게 위태로운 산길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열매를 따 주고, 풀뿌리를 캐어 입에 넣어 준다. 

미리 비교하자면, 위뻥에서 3,800m의 야커우(亞口)를 지나 시당으로 연결되는 코스는 경관이 밋밋한 편이다. 시당에서 출발해 위뻥으로 올라오면 시간은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경사가 다급하고, 왼편으로 보이는 메이리설산의 풍경도 페이라이쓰에서 바라보는 것만 못한 데다 감상을 방해할 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큰 코스다. 니농-위뻥 코스는 풍광이 다채롭고 경사가 완만해 기분 좋은 트레킹이 가능하지만 길잡이가 없다면 길을 잃을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 

우리의 무거운 배낭을 대신 짊어진 말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메이리설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흰 봉우리’라는 의미의 ‘카와카르포’라고도 불리는 메이리설산은 티베트 불교의 8대 성산 가운데 하나로 태자(太子) 13봉이라는 열세 개의 설봉을 자랑한다. 높이는 6,740m로 히말라야산맥에 즐비한 8,000m급의 산들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 힘든 고도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간에 의해 정복된 적이 없는 도도하고 험준한 설산이다.
메이리설산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 위뻥(해발 3,200m)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객잔에서 짐을 풀었다. 설산 바로 아래 이렇게 높은 곳에도 마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니마는 남아 있는 두 개의 방을 중국인 커플에게 배정하고 내게는 길잡이들이 몸을 누이는 침상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다음날 벼룩인지 빈대인지 모를 것들에게 물린 자국들이 배와 다리에 가득했지만 난 불평도 없이 까무룩 잠에 빠져 들어갔다. 


어느 것이 진짜 하늘인지 구별키 어려운 풍경

저 산이 내려가라 하네

위뻥에서 시당으로 내려와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밍용삥촨(明永川) 입구에 다다를 수 있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틀에 걸친 트레킹으로 지친 우리 일행은 거금을 투자해 말을 타기로 했다. 말들은 길가에 돋아난 풀을 뜯어먹으며 느긋한 발걸음을 옮기다가는 길잡이들의 돌멩이가 날아들면 황급히 길을 재촉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늉뿐인 것이어서 이내 게으름을 피운다. 

말에서 내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메이리설산 주봉에서 계곡을 깎아내리며 빙하가 흘러내려와 있다. 흙과 암석들이 빙하와 얽히면서 다소 지저분한 회색빛을 띄기 때문에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새하얗게 빛나는 빙하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얼음이 천(川)을 이루며 흐르다 방금 멈춘 듯한 풍경은 인상적이고 이에 더해 설봉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다시 차에 올라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페이라이쓰에 도착했다. 이곳에 사찰이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메이리설산의 장관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다음날 아침 와이드스크린으로 늘어설 태자 13봉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건만 일어나 보니 설산은 짙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더친으로 돌아가는 차 시간은 다가오고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구름 한쪽이 옅어지며 하늘을 연다. 

그 순간 가수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 귓전을 흘렀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샹그릴라라는 이름에 이끌린 길이 메이리설산까지 이어졌고, 무엇을 얻고 버렸는지 가늠할 수 없는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산은 그렇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일까. 설산은 ‘내려가라 내려가라’하며 가서 잘 살라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는’ 것만 같다.


1 해발 3,800m의 야커우. 시당과 위뻥을 잇는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이다 2 야커우에서 시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펼쳐지는 설산의 풍경 3 타르쵸와 설산의 결합은 종교적인 경건함을 이끌어낸다 4 페이라이쓰를 떠나기 직전 거짓말처럼 설봉이 구름사이로 드러났다

[mini interview] 니 마

까무잡잡한 얼굴에 치렁치렁한 장발, 그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강한 눈빛의 소유자인 니마를 이번 트레킹의 길잡이로 만났던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장족 남성들이 그런 것처럼 다소 거친 느낌이었지만 그의 매력은 우리 남자 일행들의 질투를 유발시킬 정도였다. 한 중국 여성이 애인에게 니마처럼 산을 달려보라는 둥 자존심을 건드려 토라지게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물길이 있으면 징검다리를 놓아 주고 위험한 코스에서는 먼저 달려가 안전을 확인해 주는 등 가이드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다행히(?) 그에게 애인이 있었다. 찌아비에촌에서 다른 두 커플은 먼저 잠자리에 들고 나와 니마만이 칭커주를 마시고 있는데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무슨 술을 마셔.” “한국인하고 있어. 남자라니까!”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어찌나 우리네 연인들을 닮아 있는지 세계 어딜 가나 남녀관계는 비슷한가 보다며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올해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애인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광둥성 선쩐에서 메이리설산을 찾아온 한족 여성이 그에게 반해 결혼까지 약속했단다. 결혼 이후에는 당분간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도시로 나갈 것이라는데 산을 뛰어다니며 살던 그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니마, 도시에서도 멋있게 살고 결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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