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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Rail로 떠나는 캐나다 기차여행 ② PEI에서 만난 빨강머리 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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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강머리 앤의 침실 2 멍턴에 정차해 있는 비아레일 3 할리팩스 거리축제에서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티스트 4 샬럿타운 소방서에 있는 고전풍의 소방차.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이용 중이다


**캐나다 국영 철도인 비아 레일(VIA Rail Canada)을 이용한 캐나다 기차여행을 4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이번 캐나다 기차여행은 동부 지역인 토론토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할리팩스, 서쪽으로는 밴쿠버까지 이어집니다.


<캐나다 기차여행의 글 싣는 순서>

1. Happy Birthday, Canada!
2. PEI에서 만난 빨강머리 앤 
3. 캐나다 속 프랑스와 영국
4. 기차는 록키를 품고


Via Rail로 떠나는 캐나다 기차여행 ②
PEI에서 만난  빨강머리 앤

덜컹거리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차창 밖 풍경은 자연에 더욱 가까워진다. 기차는 푸른 초원을 지나고 맑게 흐르는 강을 건너 수풀이 우거진 원시림 속을 헤쳐 나간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파노라마에 한 순간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신비로운 석양 빛이 하늘을 곱게 물들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쯤, 차창에 매달린 채로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취재협조   www.viarailcanada.co.kr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기차길

몬트리올 센트럴역(Montreal Central Station)은 북쪽 가스페와 할리팩스로 이어지는 샬레르(Chaleur) 노선과 오션(Ocean) 노선이 출·도착하는 곳이다. 또한 몬트리올 역을 기점으로 토론토 및 남부 지역들과 퀘벡 시티, 북쪽 지역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를 갈아타게 된다. 그래서인지 역사 안은 늘 분주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넘쳐 흐른다. 

하루 한차례 운행되는 오션 노선은 종착역인 할리팩스까지 잇는 장거리 열차이다. 먼 여정이지만 안락한 좌석에 푹 파묻히니 기차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더 설레여 온다. 출발 전 기차 안이 궁금해져 칸마다 무엇이 있는지 탐험(?)에 나섰다. 열차가 어찌나 긴지, 문을 열고 닫기를 수십 번은 반복한 것 같다. 기차는 표현 그대로 ‘달리는 호텔’이었다. 여느 기차 좌석보다 넓고 편하게 구성된 여객 칸(Comfort class)을 비롯해 큰 차창을 갖춘 전망 라운지와 스낵 바(Service Car), 풀 코스를 선보이는 식당 칸(Dining Car), 개인 침실을 제공하는 침대 칸(Sleeping Car)까지 갖가지 시설들로 꽉 차 있었다.

긴 여행을 위한 짧은 휴식처 멍턴

다음날 점심 무렵 기차는 ‘멍턴(Moncton)’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많은 이들이 ‘세인트 존(Saint John)’이나 ‘프레데릭턴(Predericton)’, PEI와 같은 관광 도시로 가는 연결편을 타기 위해 멍턴에서 내린다. 작은 역사는 갑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로 한껏 붐비다가 하나 둘씩 뿔뿔이 흩어지면서 어느새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이들 틈에 끼여 버스 터미널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 별안간 이 작은 도시가 궁금해졌다. 걸음을 늦춘 채 잠깐 고민하다 다음날 버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마도 도시를 감싼 한적하면서도 평안한 분위기가 잠시 쉬어 가라며 내게 암시를 건 게 분명하다.
갑작스레 번 이틀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시내 투어라….” 그 직원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다운타운 지도에서 작은 박물관, 교회 하나, 시청 정도를 짚어준다. 그러면서 본인도 겸연쩍은지 살짝 미소를 짓는다. 

특별할 게 없었던 도시, 하루 머무는 동안 큰 조수 간만차로 인해 강물 역류 현상이 일어난다는 강변(Tidal Bore)을 따라 사실 그닥 신기해 보이지 않는 진풍경(?)을 감상하고 우리네 재래 시장과 비슷한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을 한가롭게 둘러본 게 전부다. 하지만 멍턴에서 보낸 하루는 그 어느 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참으로 여유롭고 평온했다. 어쩌면 특별할 게 없어서 더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다른 여행자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Must See’가 붙은 곳들은 놓쳐선 안 된다는 부담감과 끊임없이 색다른 것을 찾아 헤매던 조급한 마음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쉬어가는 도시’라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멍턴은 다음 여정을 위해 한숨 돌리고 가는 아늑한 쉼터 같았다.

이름처럼 모든 게 ‘예쁜’ PEI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중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컨페더레이션 다리(Confederation Bridge)를 건너가는 PEI로 가는 길, 마치 바다 위로 난 구름 다리를 건너는 기분이다.
보통 PEI로 약칭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는 섬 하나가 한 주를 이루고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이다. 하지만 주도인 샬럿타운(Chalottetown)은 캐나다 연방 결성을 위한 주요 회의가 개최되었던 장소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곳이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초록색 들판과 붉은 감자밭, 언덕 위 집들이 띄엄띄엄 반복되는 섬 풍경은 무척이나 목가적이면서 전원적이다. ‘근심’, ‘걱정’이란 단어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그저 평화롭기만 한 섬 안에 며칠 머물다보니 점점 섬에 동화되어 가는 듯 여행길까지 덕지덕지 매달고 온 짐스러운 마음들이 어느 샌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PEI는 이름만큼이나 모든 게 너무 ‘예·쁘·다.’ 수없이 많은 해변들이 펼쳐지고 붉은 색이 감도는 모래 사장과 해안가 절벽이 이국적인 독특한 멋을 풍겨 낸다. 석양에 흠뻑 젖어 붉게 빛나는 절벽은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절벽 위 장난감처럼 얹혀진 예쁜 등대는 마치 그림엽서처럼 예쁘기만하다. 하루 내내 드라이브를 다니면서도 얼마 돌아보지 못한 건 길을 가다가도 자꾸만 차를 멈춰서 볼 만큼 섬 여기저기 예쁘지 않은 곳이 없던 탓이다.



1 멍턴에 있는 초기 정착민 기념비 2 우리네 재래시장과 비슷한 할리팩스 파머스 마켓 3 PEI 옛 주의사당 4 PEI 옛 주의사당에서 바라본 시원하고 한가한 전경 5 PEI의 장난감처럼 귀여운 등대 6 아기자기함이 넘치는 샬럿타운 7 PEI 시청 앞에 놓여진 옛날 종 8 <빨강머리 앤> 소설 속의 무대가 된 호수



소설 밖으로 튀어나온 ‘빨강머리 앤’

PEI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 아닌가. 저자인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여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책을 집필한 장소여서 그런지 책 구석구석 섬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특히 소설 속 주요 무대인 캐번디시(Cavendish) 마을은 지금도 앤의 흔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재밌게도 캐번디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이들은 일본 여행자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동명의 만화 영화 덕분인지 많은 일본 팬들이 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이  마을을 찾아온다. 만화 영화 팬이라면 캐번디시에 있는 그린 게이블과 빛나는 호수, 연인의 오솔길 등이 놀랍게도 만화 영화 속 이미지와 꼭 닮아 있어 깜짝 놀랄 것이다. 사전에 제작진들이 섬을 방문해 꼼꼼히 스케치를 한 후 그대로 영상에 옮겨 놓은 덕이다. 

앤이 살던 집을 방문하고 뒤로 난 숲길을 걷다 보니 앤이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 같은 착각마저 인다. 올해가 <빨강머리 앤>이 탄생된 100주년 되는 해이니 만약 앤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장수 할머니 상을 받지 않았을까?
샬럿타운에서는 만년 소녀다운 활기 넘치는 앤을 만날 수 있었다. 매년 여름 샬럿타운에서  축제 기간 동안 뮤지컬 <Anne & Green Gables> 무대가 펼쳐지는데 벌써 수십년째 인기리에 상연되고 있는 롱런 작품이다. 뮤지컬 속 앤은 소설 밖으로 막 튀어나온 ‘빨강머리 앤’ 그대로였다. 동화책을 보듯 시종일관 깜찍하고 발랄하던 극은 마지막에 살짝 눈물까지 안겨 주며 진한 감동을 주었다.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지만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럽기만한 그녀를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PEI 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그렇게 앤과 아쉽게 작별했다. 


1 <빨강머리 앤>의 전세계 다양한 번역본들 2 <빨강머리 앤>의 저자 몽고메리 여사의 무덤 3 빨강머리 앤 복장을 한 소녀 4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그린 게이블 앞은 사진 찍는 이들에게는 필수 촬영 스폿이다 5 PEI 컨페더레이션 센터 앞에서 펼쳐진 무료 공연

활기 넘치는 부둣가 도시 할리팩스

PEI 를 떠나오는게 무척 아쉬웠지만 할리팩스에 도착할 무렵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음이 또다시 부풀어 올랐다. 더구나 화창한 날씨로 처음 온 방문자를 맞아 주니 그처럼 고마운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어 놓지도 않은 채 곧바로 시내 투어를 나섰다.  

바다는 호수처럼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 위로 새하얀 뭉게 구름들이 둥실둥실 떠 가는 정경이 그야말로 ‘작품’이다. 자연이 그려내는 그림을 어느 붓질이 따라갈까. 시원한 바닷바람에 실려온 상쾌한 기운이 활기찬 선착장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괜시리 마음을 들뜨고 흥겹게 만든다. 

저녁이 되니 선착장 부근은 야경 명소로 변신한다. 부둣가 한편에 늘어선 노천 레스토랑과 뒤편에 나란히 선 쌍둥이 빌딩, 그 너머에 길게 이어진 다리까지 지는 저녁놀과 함께 멋진  기념 사진을 만들어 낸다. 새하얀 뭉게구름과 다리 너머로 지던 노을이 환상적이기만하다. 

이전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이 일러준 팁대로 시타들(Citadel)과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을  찾았다. 시타들에 오르니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누구도 범접 못했을 요새였던 이곳이 지금은 관광객들로 붐비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요일 오후 정각 12시. 천둥이 울리듯 ‘펑’하는 대포 소리가 요새 안 어디선가 터져나왔다. 깜짝 놀라 둘러보니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전시 프로그램이었다. 초기 시행때에는 놀란 할리팩스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지만 이제는 아예 이를 종소리처럼 여긴다고. 옛 병사 복장을 하고 보초를 서는 이들은 군기(?)가 꽉 잡힌 탓인지 옆에서 사진을 찍건 말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도통 신기하다. 스코틀랜드 전통 옷차림을 갖춰 입은 병사들과 백파이프 연주, 요새 안에 꽂힌 영국 깃발은 할리팩스 요새를 상징하는 이색 아이콘이다. 

퍼블릭 가든은 요새 바로 부근에 있다. 시민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공간으로 점심 후 나른한 오후를 보내기 딱 좋아 보였다. 무료 음악회까지 더해졌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혼자 산책길을 사색하며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차양처럼 넓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 아래 책을 읽는 이들, 유모차를 끌고 나와 산책하는 젊은 커플, 나란히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노부부들 모두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지금 이 순간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본 공공 묘지는 퍼블릭 가든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로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할리팩스의 주의사당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묻혀 있던 옛 비석들이 빼곡했다. 대부분이 할리팩스 초기 정착민들이라고 하는데, 200년 전 비석도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오래된 공공 묘지가 여전히 자리해 있다는 사실도 심히 놀라웠는데 이를 유적지로 보존시켜 나가고 있다니 묘지하면 으스스함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 정서와 달리 묘지 안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보니 한참 다른 문화가 피부에 와 닿았다. 

할리팩스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오며 멍턴에서 끊겼던 파노라마를 다시 잇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 보았던 곳들이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언제나 그렇듯, 기차는 같은 곳을 달려도 늘 처음 가는 곳 같은 설레임을 안겨다 준다. 


1 할리팩스 퍼블릭 가든의 분수대 2 할리팩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묘지 3 할리팩스 요새의 위병 교대식


Via Rail 이용하기 ②

기차 패스 캐나다 여러 도시를 여행한다면 레일 패스를 이용하면 저렴하고 편리하다. 여행자들을 위한 패스로 코리더 패스(Corridor Pass), 캔레일 패스(Canrail Pass), 북미 열차 패스(North America Rail Pass) 3가지가 있다.

코리더 패스
는 윈저  퀘벡 시티 구간 내에서 10일간 이용할 수 있다. 코리더 패스를 이용하면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 오타와, 킹스턴, 몬트리올 등 동부 주요 도시들을 방문할 수 있다. 단 동일한 두 도시를 한 번 이상 왕복할 수는 없다. 일반 314~750$, 학생 283~675$

토론토와 밴쿠버까지 횡단할 계획이라면 캔레일 패스가 유용하다. 비아 레일 운행 구간 어디든 패스 첫 개시일로부터 30일 기간 내에 12일간 사용이 가능하며 추가 3일도 가능하다. 멍턴에서 세인트 존까지 버스 이용도 가능하다. 일반 549~879$, 학생 494~791$

북미 열차 패스
는 캐나다와 미국을 함께 여행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비아 레일과 미국 암트랙 전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밴쿠버와 토론토, 몬트리올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암트랙을 탑승할 수 있다. 단 캐나다, 미국 간 국경을 넘는 여정이 1회 이상 이루어져야 하며 동일 도시간 2회 이상 왕복할 수 없다. 일반 709~999$, 학생 638~899$

승차권은 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사전에 전화 예약을 한 후 티켓 카운터에서 패스를 보여 주면 발급받을 수 있다(요금은 2008년 기준이며 캐나다 달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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