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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의 후지타 사유리-“모든 여행은 역사에서 시작해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0.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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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의 후지타 사유리
“모든 여행은 역사에서 시작해요”

어눌한 한국어로 조근조근 내뱉는 독특한 생각들, 미니홈피에 게재된 거침없이 특이한 표정과 포즈의 사진들은 ‘4차원’이라는 한마디 말로 그녀를 포장했다. 허나 직접 대면한 그녀는 엽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진지하고 생각이 많을 뿐이었다. 후지타 사유리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몇 가지 모습들.

  김영미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김병구   
취재협조  (주)하서출판사 02-2237-8161~5 / 발리캣 01-337-7046
* 따옴표 안 직접 인용구는 사유리의 실제 말투를 가능한 살렸음을 밝힙니다.

후지타 사유리는 방랑가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도쿄 토박이였던 그녀는 어학연수차 미국에 거주하다가,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뒤에서 푸시푸시 하는 사람이 가라고 해서’ 약 2년 전 한국에 왔다. 연세어학당을 다니던 중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패널로 출연하게 됐고, 청순한 외모와 상반되는 독특한 말과 행동을 선보여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화작가 지망생으로 알려진 사유리의 꿈은 글 쓰는 사람. “글 쓰고 싶어요. 소설가보다 동화작가의 느낌이 더 귀여우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말한 거예요. 동화책도 나올 수 있으면 좋고요. 소설, 희곡, 시나리오도 쓰고 싶어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단다. 

그녀의 꿈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이뤄지게 됐다. 사유리는 도쿄와 오키나와를 합성한 ‘도키나와’와 마음을 뜻하는 일본어 ‘코코로’를 더한, 명랑한 어감의 제목을 단 여행기 <도키나와 코코로>를 출간하며 작가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가이드북 형식의 여행정보 대신에, 도쿄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과 그녀가 직접 적은 시·소설들로 구성된 감성 여행기다.

아름다운 오키나와를 애도(哀悼)하다

류큐(琉球)왕국이 건설되며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오키나와는 문화, 말투, 음식 등 여러모로 일본 본토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이 오키나와에 대해 잘 몰라서 아까워요. 오키나와 가면 아마 일본 오는 느낌 없어요. 하와이, 괌 같은 느낌”이라며, 가장 일본적인 도쿄와 이국적인 오키나와를 엮어 일본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그녀. 사유리는 하늘과 꽃과 별의 이미지를 가진 오키나와는 나무, 바다, 건물 등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기 때문에 반드시 카메라를 가져갈 것을 당부했다.

사유리는 아름답고 정겨운 오키나와를 소개하면서도 그곳의 슬픈 역사를 강조했다. 2세계차대전 당시 일본은 최남단의 섬 오키나와를 방패막이 삼아 본토를 사수하고자 했으나 격렬한 전투 결과,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 등 수많은 영혼이 희생되고 오키나와 섬에 갇혀 버렸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의 이름이 다 써 있어요.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자기 나라의 죽은 사람들만 이름 써요. 하지만 오키나와 사람 생각에는 적군은 없다, 전쟁은 모두 나쁜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이름 쓰고 있어요. 감동 받았어요.” 슬픈 역사에 깊이 공감해서일까. 사유리에게 오키나와 노래는 항상 슬프다, 한국 노래처럼. ‘분위기, 느낌, 가사들에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사유리는 그곳의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의 시작은 박물관에서

사유리에겐 특별한 여행의 법칙이 있다. 여행지에 가면 박물관을 가장 먼저 찾는다는 것. 사유리의 여행 행태는 알려진 바와 달리 진지한 그녀의 본색을 웅변한다. 진주만 폭격의 현장이 보존돼 있는 하와이의 ‘USS 아리조나 메모리얼’이나 나치의 잔혹상을 보존해 놓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 등에서 그곳의 슬픈 역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사유리가 가장 인상 깊었던 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위안부박물관. “가는 길도 멀고 작은 규모이지만, 뭔가 다르다. 나는 귀신 못 보지만, 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여러 장소에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 옮긴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노트가 벌써 7권이다. 

사유리가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성장과정에서 기인한다. 어릴 적,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며 전쟁이야기,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 또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배운 적이 많았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 주곤 했다는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도 “TV에 나오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 있는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네가 배우는 것”이라고 사유리에게 조언한다 고 . 

그래서 사유리는 한국에서 일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책까지 낼 수 있었던 것, 한국에 고마운 거예요.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한테 TV에도 나오고 책도 나오게 해줬으니까. 많은 사랑 받았으니까,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 받으면 다 기부해야 해요. 귀신은 안 믿지만 ‘푸시하는 사람’이 한국한테 그렇게 하라고 계속 말해요.” 사유리는 <도키나와 코코로>의 수익금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도울 생각이다.

책 없이 못 사는 독서광

사유리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찜질방과 강남역 교보문고. 시간만 나면 서점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는다. 다른 건 몰라도 책 사는 비용은 아깝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2~3달에 한 번씩 일본에 갔다 올 때마다 30~50만원 어치의 책을 사들고 돌아온다.  독서광 그녀의 문화적 취향은 자못 진지하다. 미우라 아야코, 엔도 슈샤쿠, 다자이 오사무 등 무게감 있는 작가를 좋아하며, 드라마는 보지 않고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글로써 ‘좋다, 나쁘다’를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작가관은 <도키나와 코코로>의 도쿄 섹션에도 반영돼 있다. 오타쿠, 매춘, 존속살인 등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소재로 쓴 짤막한 소설에서, 사유리는 ‘그들은 왜 그렇게 됐는지, 왜 그래야만 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 

이렇듯 진지한 그녀가 ‘4차원’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다소 엽기적인 그녀의 사진들 때문이다.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연예인들 보면 항상 예쁜척 하잖아요. 그런 거 보면 에이~ 그런 느낌 있어요. 재미 없잖아요. 자기만 재밌어요.” 문득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가 떠올랐다. 엽기적인 표정으로 사진을 찍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던 외로운 소녀. 카메라 앞에서는 특이한 포즈를 서슴지 않지만 실제로는 진지한 사유리. <도키나와 코코로>에는 기자가 잠시나마 만나 본 그녀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또라이라고 하는 말은 try(도전)라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인간을 또라이라고 부른다면... 난 또라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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