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즈벡 원정기② 부하라 시간여행
나의 우즈벡 원정기② 부하라 시간여행
  • 트래비
  • 승인 2008.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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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즈벡 원정기②부하라 시간여행

타슈켄트와 마찬가지로 사막 한가운데서 번성했던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박물관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을 거쳐 간 문명의 흔적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모스크, 메드레세, 하나카 등 이슬람 건축물, 실크로드의 흔적을 간직한 카라반사라이, 타키 등이 구시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선 공간 자체가 과거를 전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하라를 여행하는 것은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취재협조  대한항공 kr.koreanair.com

>>> 박물관 도시, 부하라 구경하기

부하라는 걸어서도 주요 유적지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보통 하루를 잡고, 오전에 라비하우스를 출입구 삼아 들어가서, 타키라고 불리는 노천시장, 마고키 앗타리를 보고, 오후에 칼란모스크, 아르크성을 여유있게 방문한 후 여력이 남는 대로 차쉬마야욥, 이스마일 샤마니까지 순회하는 게 일반적이다. 

들어가기 

라비하우스에서 타키를 지나

1관 마고키 앗타리
2관 칼란모스크&미나렛
3관 아르크 성
4관 차쉬마 야윱
5관 오후 네 시의 이스마일 샤마니

★ 들어가기  

라비하우스에서 타키를 지나

라비하우스의 아침은 매우 정갈하다. 호수 주변에는 차이(찻집)들이 늘어서 있고, 가게 앞 티테이블에는 몇몇 부지런한 노인들이 모닝 티를 들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느껴진다. 호수는 인공의 태가 확연히 느껴지는 네모꼴인데, 17세기 이 지역의 부호였던 나지라 지반베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호수 양옆으로 세워진 하나카(순례자 숙소)와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도 나지라 지반베기가 세웠고, 그의 이름을 붙였다. 지반베기의 재력과 관련된 일화들은 부하라 사람들의 단골 이야깃거리다. 그의 부인은 선물받기를 좋아하고, 변덕이 심한 여자였다고 한다. 한번은 지반베기가 귀걸이를 선물해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또 선물을 사 달라고 앙탈을 부렸다. 지반베기는 화가 난 나머지 부인에게 선물했던 귀걸이 한 짝을 빼앗아 버렸다. 하지만 부인을 사랑했던 지반베기는 결국 그녀의 마음을 풀어 주기로 결심했고, 화해의 선물로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메드레세였다. 메드레세를 보여 주며 지반베기는 이렇게 말했단다. “여보, 당신의 귀걸이 한 짝을 팔아 지은 것이라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관광객뿐만이 아니다. 당나귀를 타고 익살스런 얼굴로 손을 흔드는 이가 있으니 바로 우즈벡의 홍길동 ‘훗자 나스레딘’이다. 유머러스한 이슬람 신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비길 데 없는 입담으로 왕을 골탕 먹이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던 서민들의 영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즈벡 어디를 가든 우리네 하회탈과 비슷한 표정의 훗자 나스레딘 토기인형을 찾아볼 수 있어 그의 명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라비하우스를 지나 구시가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높은 반구형 천장으로 이뤄진 타키 사라폰이 나온다. 타키는 큰 거리의 교차점을 반구형 지붕으로 덮은 노천시장인데, 안은 과거 실크로드 시대와 다름없이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라폰은 ‘환전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과거 타키가 맡았던 구실을 짐작케 한다. 구시가지 내 교차로에선 이름은 다르지만 어김없이 같은 건물 양식, 같은 풍경을 지닌 타키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카라반(대상)들은 먼 서역에서 싣고 온 물건들을 이곳에 내려두고 필요한 물자를 보충해 남은 절반의 여정을 준비했었다. 카라반을 향한 부하라인들의 존경심은 대단했는데, 이는 그들이 지나온 길고 혹독한 여정에 대한 것이자, 무수한 위험 속에서 그들을 비호해 온 신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카라반들이 낙타에서 내리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도록 타키 입구의 아치가 높게 설계된 데서도 카라반을 향한 경외심이 드러난다. 

현재 타키는 수공예품 쇼핑몰이나 다름없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판에 진열된 수공예품들은 소소한 동시에 그 무늬나, 색깔이 무척 현란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디자이너의 핸드메이드 의상에서부터, 원석 귀걸이·목걸이, 전통 의상을 입은 모직 인형, 테라코타로 만든 토기 인형, 화려한 수가 놓여 깔고 앉기 아까운 방석, 무슬림 모자, 사막 여름나기용 양털모자,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만든 신발, 발에 꿰면 저절로 춤사위가 나올 것 같은 전통슬리퍼, 아기자기한 도자기…. 온통 화려하고 이채로운 물건들이 그득하다. 타키 카펫 주변에서는 대장간에서 직접 담금질해 만든 칼, 가위, 칼집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있다.


1 타키 카펫을 나와 마고키 앗타리로 가는 길. 길목에는 대장간, 남성전용 목욕탕, 이슬람식으로 지은 호텔 등이 있어 18세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2, 3 현재 타키는 수공예품 쇼핑몰이나 다름없다. 타키 안팎으로 형성된 가판, 구멍 가게 등에 진열된 수공예품들은 소소한 동시에 현란하다 4 우즈벡의 홍길동 훗자 나스레딘. 우즈베키스탄 어디서든 그를 본딴 토기 인형을 만날 수 있다 5 타키 사라폰 앞에는 17세기 독일인이 만든 최초의 약국 도리소나가 있다 6 타키 안에는 그림,의상, 도자기 등 다양한 수공예 4 5 품들이 진열, 판매되고 있다


Uzbekistan Food

1 샤실릭 우즈벡식 꼬치구이. 꼬치가 길고 뾰족해 하나하나 빼내서 먹어야 한다. 주로 양고기, 토마토 등을 끼워 굽는다

2 베제 설탕과 계란 흰자를 섞어 만든 과자.달고 바삭한 맛을 낸다

3 쁠롭 한국인들이 흔히 기름밥이라고 부르는 밥. 찬물과 먹었다가는 배탈이 나기 십상이니 주의해야 한다. 나름대로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4 리뾰쉬카 우즈벡의 주식은 빵이다. 특히 ‘리뾰쉬카’는 매끼마다 식탁에 오르는 메뉴인데,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는‘난’이라고도 불린다. 빵이 부드럽기보다 바게트빵 정도로 딱딱한 이유는 건조한 지역에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빵에 그림을 그려 벽장식으로 쓸 정도라니 빵의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5 라그만 우동과 비슷한 우즈벡의 면요리.맛이 우동보다 밋밋하고 국물이 있는 우동보다는 볶음 우동에 가깝다



오아시스의 밤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는 타슈켄트의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와 마찬가지로 정원을 둘러싼 방들이 모두 수공예품 상점이다. 이곳은 식당도 겸하고 있어 중앙의 정원과 회랑을 따라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성수기인 봄, 가을에는 매일 저녁 7시 우즈벡 전통 음악과 춤, 전통의상쇼가 준비돼 식사와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음악은 비가(悲歌)풍이지만 빠른 템포의 반주가 곁들여져 애잔하면서도 흥을 돋우고, 다양한 민족만큼 전통춤도, 춤을 출 때 입는 의상도 각양각색이다. 크게 얼개를 잡자면 북방은 동작이 빠르고 의상도 원색적인데 비해 남방은 동작이 우아하고 의상도 은은한 편이다. 공연 중간 중간 섞인 패션쇼에서는 보다 우아하게 디자인된 전통 의상들을 만날 수 있다. 공연은 1시간 반 정도 지속되며, 리뾰쉬카, 베제, 라그만, 쁠롭, 각종 샐러드가 포함된 저녁 식사와 공연이 도합 40달러이다.   


★ 1관  마고키 앗타리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묻혀 있던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는 1936년 러시아의 고고학자가 처음 발굴한 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밑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발굴되기 까진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부하라의 건축물들은 솔직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마고키 앗타리도 마찬가지다.
마고키 앗타리는 참 묘한 건물이다. 하나의 건물이 맨 아래 벽돌 층, 그 위의 아라베스크 층, 그리고 가장 새로운 건물 층으로 나뉜다니 말이다. 특히 두 번째 층에서는 아라베스크, 마졸리카와 같은 이슬람 특유의 양식과 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무한대 기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역사가들은 7세기 초 아랍 세력이 이 지역을 침범했을 당시, 사원을 파괴하고 그 위에 또 다른 사원을 얹은 탓에 이 같은 문화층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른 종교의 옷을 입고 다른 종류의 신을 모셨던 마고키 앗타리의 내부는 현재 엉뚱하게도 카펫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 2관  칼란 모스크 & 미나렛

부하라는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성지였고, 16세기에는 이슬람 성직자 양성기관이 설립돼 학문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 모스크가 197개, 메드레세가 167개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쯤 되면 부하라(Bokhara)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을 뜻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그중에서도 칼란 모스크는 ‘크다’라는 이름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넓이가 1헥타르 정도로 최대 1만2,000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덕분에 부하라시 지정 대성당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기도 하다. 거대한 아치형 입구를 지나 회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푸른 색 돔을 얹은 미흐랍이 보이고, 그 앞에는 등탑처럼 생긴 작은 추모비가 있다. 10세기경 중앙아시아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에 의해 몰살된 소년들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란다.

이슬람신자들의 공동예배가 있는 금요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모스크는 매우 한산하고 고즈넉하다. 미흐랍을 향해 난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텅빈 회당에 운치를 더해 정원 같은 느낌도 준다. 시간을 할애해 회랑 밑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모스크와 연결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칼란 미나렛은 아마 부하라에서 가장 고고한 위상을 지닌 건물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46m나 되는 키 때문에 시내 어디서든 눈에 띄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칭기스칸의 머리를 숙이게 한 탑’으로 유명해서다. 칭기스칸이 부하라에서 이 미나렛을 올려다보다 모자를 떨어뜨렸는데 떨어진 모자를 주우려다 무심코 고개를 숙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칭기스칸은 “칭기스칸은 파괴하고 티무르는 건설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한 무법자로 통하는 걸 생각하면 탑을 추앙하는 부하라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미나렛은 본래 하루에 5번 있는 이슬람의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한 탑이다. 이 때문에 예배집전자인 이맘만이 미나렛에 오를 수 있었는데, 18세기에는 칼란 미나렛에 오를 수 있던 사람들이 또 있었다. 다름 아닌 사형수들이다. 탑 꼭대기에서 자루에 넣어진 사형수들이 던져졌기 때문에 당시 칼란 미나렛은 ‘죽음의 탑’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운명의 탑’, ‘사막의 등대’라는 여타의 별명과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관리인에게 1,500숨을 내면 이 사연 많은 미나렛에 오를 수 있다. 캄캄한 탑 속에서 거의 기다시피 나선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이 가빠질 때쯤 꼭대기에 다다른다. 탑 꼭대기는 좁긴 하지만 사방으로 낮게 포복해 있는 건물들 덕분에 막힘 없이 부하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1‘ 크다’라는 뜻을 칼란 모스크. 내부의 회당은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왼쪽으로 칼란 미나렛과 연결돼 있다 2 부하라 시내에는 푸른 돔이 유난히 많다. 16세기 부하라를 수도로 삼았던 아미르 티무르가 좋아했던 색이 파란색이기 때문. 티무르 제국의 수도를 거쳤던 사마르칸트 역시 푸른 색의 돔이 많다 3, 5 15세기의 모습을 간직한 아르크 성. 내부에는 모스크와 대전, 박물관 등이 있다 4 세 개의 문화층을 가진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 마고키는‘굴 안’, 앗타리는‘약 혹은 화장품’이라는 뜻으로 과거 이 주변에서 아로마 테라피용 향수, 화장품을 많이 팔던 데서 유래됐다 6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 욥의 사연이 서려있는 차쉬마 야윱. 건물 안에는 병을 고쳐준다는 신이한 샘물이 있다 7 태양의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이스마일 샤마니. 벽돌을 무려 24가지 방법으로 쌓았다고 한다
 
★ 3관  아르크 성

타키 카펫을 지나 도로 쪽으로 나오면 견고한 요새처럼 보이는 아르크 성이 있다. 7세기 훗자 하우톤 여왕이 이 성에서 아랍과 싸웠다는 문헌이 가장 오랜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그 전후로도 수많은 전쟁을 거쳐 온 곳이라 파괴되고 복구되길 반복해 왔다. 현재의 성은 1922년 1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됐던 것을 1980년대에 15세기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성문으로 들어가면 오르막길 양쪽으로 죄수들을 가두었던 감옥이 있어, 과거 폭정으로 악명 높았던 부하라 칸국 시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성 안에는 모스크, 옥좌가 놓인 대전(大殿) 등이 있다. 귀퉁이에 자리한 작은 박물관에서는 1920년 러시아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200여 년에 걸친 부하라 칸국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 4관  차쉬마 야윱

아르코 성 건너에 있는 공원을 가로지르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세 개의 돔이 보인다. 차쉬마 야윱이다. 차쉬마는 샘물, 야윱은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 욥을 뜻한다. 욥기는 흔히 상실의 문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욥이 하나님의 시험에 들어 모든 것을 잃고, 온갖 불행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고난의 역사(役事)를 통해 그는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된다. 욥이 눈병으로 고통받던 중 꿈에서 보고 찾아와 만든 샘물이 바로 이곳이다. 그가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자 샘물이 터져 나왔고, 이 물로 눈병을 고쳤다고 한다. 이후 병을 고쳐 주는 신이한 물이라는 소문이 퍼져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샘물을 에워싼 건물의 돔은 각각 14세기, 16세기에 지어져 양식이 판이하다. 샘물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몸에 좋다는 전설의 샘물이라니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한잔 마셔봄직하다.

★ 5관  이스마일 샤마니
오후 네 시의 이스마일 샤마니는 눈부시다. 이 아담사이즈의 건물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영묘로 9세기 말 부하라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았던 샤마니 왕조의 합장묘이다. 이스마일 샤마니가 그의 부친을 위해 지었던 것인데 후에 그 자신과 자손들까지 함께 묻혔다. 얼핏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놀라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시간대별로 미묘하게 외벽의 빛깔이 달라진다. 벽돌을 무려 24가지 방법으로 쌓았기 때문에 벽면에 닿는 햇살의 강도와 기울기에 따라 음영이 달라지는 것이다. 벽돌은 낙타 젖과 계란, 불에 그을린 재를 흙과 섞어 반죽한 후 햇볕에 말린 것이라는데 가까이 가서 코를 대보면 실망스럽게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게 돼 있고, 사면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안은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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