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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모란민속장-어느 초봄의 장터 나들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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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보다 뚝배기에 얼큰하게 끓여낸 청국장과 갓 지은 고봉밥이 땡기는(?)… 모란민속장은 그런 날 찾아야 제 맛이다. 억척스럽고 투박해도 에누리와 덤이 있어 반갑고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뻥튀기 기계의 우렁찬 폭발음이 재밌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입에 침이 고이는 풍경이 아니던가.

글·사진  이민희 기자


1 봄을 기다리게 하는 화사한 색감의 옷이 즐비하다 2, 3 어렸을 적 즐겨먹던 생과자와 각종 사탕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 정도다 4 팔도에서 올라온 각종 약초 5, 6 장터에 나온 귀여운 아기 고양이와 병아리

사람이 그리운 날엔

화려한 조명과 친절한 미소로 무장한 백화점에 정이 안 가는 데엔 쇼핑에 취미도 없고, 브랜드에 무지하며, 과도한 친절함엔 몸 둘 바를 모르는, 조금은 촌스러운 본인의 성향을 탓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내놓고 파는 좌판의 생과자와 저울도 무시한 채 숭덩숭덩 담아 주는 아주머니의 손길, 가는 이의 발길을 잡는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을 그리워하는 것 또한 성향 탓일까. 

성남에 위치한 모란민속장은 ‘전국 최대 5일장’이라는 규모면에서나 전국팔도에서 모인 물건에서나 여느 대형 마트가 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들과는 다르게 부딪치는 사람들의 온정과 흥정의 재미가 있어 자꾸만 발길이 가는 곳이다. 투박하고 거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물건을 고르고, 인파에 묻히지 않으려 목청을 한껏 올리고, 갖은 애교와 협박(?)으로 물건값을 깎았을 때의 희열을 과연 어찌 설명해야 좋을까. 

얼마 전, 대목인 설을 앞두고도 찾는 이가 없어 재래시장 상인들의 한숨만 늘어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때문에 장날을 맞아 모란민속장을 찾는 발길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건만 다행히 추위가 누그러진 탓인지 이곳은 그야말로 문전성시. 여기에 초입에 늘어선 화훼부의 생화와 정월대보름을 앞둔 봄나물들이 반겨주니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다. 



1 이제는 귀한 풍경이 되어 버린 뻥튀기 기계. 뒤돌아서는 순간‘펑’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2 가는 겨울을 아쉽게 하는 붕어빵 3 종류에서나 싱싱함에서나 모란민속장의 생선부는 여느 수산시장에 뒤지지 않는다 4, 5 물러설 줄 모르는 추위에 한껏 몸을 웅크린 녀석들 6 출출한 이들을 위한 포장마차 7 상인들의 추위를 녹여 줄 커피와 드링크제 8 표주박, 바구니, 각종 생필품 등 모란민속장엔 없는 게 없다

도대체 없는 게 뭔가요

꽃이 만발한 화훼부를 지나 모란민속장에 들어서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곧추세우시길. 이미 장터는 물론 인근의 도로까지 가득 메운 인파에 눈치를 채겠지만 숫자 4와 9가 들어가는 날마다 열리는 모란민속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에 등록된 상인만 900여 명이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꽃을 파는 화훼부와 고소한 냄새로 유혹하는 잡곡부, 여느 수산시장 부럽지 않은 생선부, 어느새 봄나물이 지천인 야채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약초로 가득한 약초부를 비롯해 의류, 잡화 등으로 나뉘어 있어 이곳에선 오히려 없는 물건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다. 여기에 모란민속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있으니 애견부와 가금부 그리고 우리나라 개고기 유통의 상당수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 개고기 시장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 모란민속장은 조금은 험악한(?) 분위기의 고깃간 맞은편으로 애완용 강아지는 물론 닭, 오리, 흑염소, 병아리 등이 줄지어 있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묘한 웃음도 잠시, 보기만 해도 흐뭇한 강아지들 주변으로 아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발길을 멈추고야 만다.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에 서로의 몸을 부비며 잠을 청하는 녀석들이라니, 눈 딱 감고 한 마리 업어오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덤’으로 얻어 주변으로 가는‘정(情)’

바쁘게 돌아가는 장터에서 인파에 취해, 갖은 물건에 반해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어느덧 중천의 해는 기울고 뱃속은 허전해 올 게다. 모란민속장엔 어느 곳보다 풍성하고 정겨운 음식이 있어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가득하다. 

노릇하게 구워낸 가래떡, 쫄깃한 수수떡, ‘펑’하는 요란한 소리가 반가운 뻥튀기, 무엇을 고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생과자와 김이 모락모락한 팥죽, 구수한 칼국수, 속이 꽉 찬 만두, 방금 부쳐낸 전 등 간단한 군것질거리부터 다리를 쉴 수 있는 좌판까지 장터 곳곳엔 먹을거리가 고픈 배를 자극한다. 혼자 온 것이 서러울 정도.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르고 고른 끝에 생과자 좌판 앞에 자리를 잡고 한 근(400g)에 3,000~4,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신나서 주워 담았다. 그러자 그만 40g이나 훌쩍 넘어선 저울. 또다시 무엇을 뺄까 고민하는데 좌판 너머의 아주머니는 무심한 표정 그대로 봉지에 후루룩 담아 버리는 게 아닌가. 정량과 정찰에 익숙해진 ‘젊은이’로서는 새삼 재래시장의 ‘손맛’을 느끼고 덤으로 사람 사이의 정을 얻어 가는 순간이다. 

오후가 되면서 더욱 인산인해를 이룬 장터를 헤치고 나오는 길. 골목마다 흥정으로 목청을 높이고 부딪치는 어깨는 더욱 많아졌지만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싫지가 않다. 이러한 난장중에도 묵묵히 앉아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할아버지의 거친 손과 저녁 찬거리를 위해 흥정에 나선 노련한 우리의 어머니들의 모습. 저절로 마음이 뜨뜻해져 온다.

★모란민속장

위치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 앞
개장 시간 매달 4일과 9일이 들어가는 날, 오전 9시~오후 7시 (평일은 주차장으로 활용)
문의 031-721-9905 www.moranj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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