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GALLERY 이진의의 밀리미터 여행] 7.편지로 떠나는 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6.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남대 생태관광연구센터의 이진의 연구원은 일상 속의 소소한 여행이야기를
0.5밀리미터의 감수성으로 그려 가고 있습니다. 

편지로 떠나는 여행


그녀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중국어 질문보다 상담요청을 더 많이 한다며 시원하게 웃습니다. 나 역시 가끔 일상에 답답함을 느낄 때면 넋두리를 하려고 그녀를 찾아가곤 합니다. 그날도 그렇게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의 손에는 꼬깃거리는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벅차오른 그녀의 감정은 나에게도 전해졌고, 맑고 투명한 눈물이 그녀의 눈에 반쯤 차 있다가 편지를 접으려고 몸을 움직일 때 볼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편지를 받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10년 전에 인도의 ‘라니’라는 여자아이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라니는 눈망울이 크고 몸은 말랐지만 똑똑한 아이였죠. 그녀는 충분치는 않지만 라니가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해 왔는데, 그 아이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도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그녀가 받은 편지는 라니가 삐뚤빼뚤 한글로 쓴 편지였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언젠가 한국에 가면 이곳저곳에 가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녀는 편지를 읽으며 라니가 가고 싶다고 했던 서울의 인사동에서 쇼핑을 하고, 부산의 해변을 거닐고, 목포에서 세발낙지를 맛보고, 한산한 커피숍에 앉아 그 동안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여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떠났던 여행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행복한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넋두리하려 했던 시간은 잠시 미뤄두었습니다. 라니의 편지로 함께했던 여행에서, 라니에게 보내는 편지로의 여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한참을 흥얼거렸습니다.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펜을 잡고 그녀는 라니에게로 향했습니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