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과 통하였노라
산청과 통하였노라
  • 트래비
  • 승인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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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자꾸만 부딪치는 건 소통하지 못해서다. 우리 몸이 고장 난 기계처럼 삐그덕 하는 것 역시 소통의 문제다. 기가 차고 기가 막히는 날, 경상남도 산청에 가면 숨이 ‘탁’ 트인다.


산청에는 1,000여 종의 약초가 자라난다. 산청에서 만난 보라색 당귀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는 동의보감촌의 전경

영험한 자연을 향한 오마주 

언제 어디서 어떤 병균과 바이러스가 침투할지 모른다. 한마디로 ‘질병의 시대’다. 그래서 “아직도 없으세요?” 하고 묻는 보험회사의 인사를 들어야 하고, “미리미리 건강검진을 챙기라”는 병원의 당부를 들으며 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네 선조들은 달랐다. 누군가 병이 나면 그들은 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지천에 널린 ‘몸에 좋은 것들’을 양손 가득 가져와 정성스레 약을 지었다. 

실제 경상남도 산청 사람들은 오래도록 ‘자연’을 명의로 모시며 살고 있다. 1,000여 종의 약초가 산청에서 나고 자라는 덕분이다. 딸기, 배, 사과 등 산청 과일은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감을 곱게 말린 곶감도 산청이 당당하게 내놓는 인기 특산품 중 하나. 산청에선 곶감을 파는 농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산이 맑다’는 뜻의 산청山淸은 이름부터가 산을 향한 오마주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산은 ‘지리산’을 일컫는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지리산의 크기는 여의도 광장의 약 1,000배. 전라북도 남원시와 전라남도 구례군을 시작으로 경상남도에서는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까지 에워싸고 있다. 지리산 하면 남원 혹은 구례부터 떠올렸으나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이 우뚝 선 곳은 다름 아닌 산청군이었다. 산청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다. 산청의 산이 어디 ‘지리산’뿐이랴. 봄이면 철쭉이 만개하는 황매산도 산청군 소속이다.

바보야, 문제는 네 자신이야! 

팔봉산과 왕산이 굽어보고, 지리산과 황매산의 정기가 하나로 모아지는 금서면 특리에 ‘동의보감촌’이 들어서 있다. 바로 이곳이 9월6일부터 10월20일까지 열리는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이하 산청 엑스포’의 주 무대. 5월이면 열리던 ‘산청 한방약초축제’도 올해는 엑스포와 함께 개최된다. 축제의 판이 커진 셈인데, 행사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삐딱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유사한 지역 축제가 여기저기서 난무하고, 국제 행사인 엑스포마저 유행처럼 번지는 형국이 아니던가. ‘엑스포’라는 말만 듣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산청 엑스포’는 겉치레만 화려하고 알맹이는 없는 여타의 대형 행사와 비교했을 때 ‘주제의식’이 명확했다. 주제관은 수천년에 걸쳐 정립된 한의학을 재밌는 영상과 특수효과로 안내한다. 그동안 우리는 몸을 마치 기계인 양 부리고 몸이 아플 때면 약으로 기름칠을 하거나 수술로 몸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만이 능사라 여겼다. 하지만 엑스포는 서양의학에만 기대는 현대인을 걱정하며 기계 다루듯 몸을 뚝딱 고치려 들지 말고 “호모 큐라스가 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Homo과 치유Cura의 합성어인 호모 큐라스는 ‘몸이 곧 우주’, ‘몸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맹신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단순히 민간요법을 담은 의학서라 여긴 <동의보감>도 제대로 뜯어보면 동양 철학서에 가깝다. 주제관 너머로 보이는 동의보감 박물관에선 “우리의 오장육부는 ‘정기신精氣神’에서 출발한다”는 허준 선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알쏭달쏭하기만 한 ‘정기신’은 촛불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초의 몸통은 ‘정’, 타오르는 불꽃은 ‘기’, 불꽃으로 하여금 환하게 뿜어지는 빛은 바로 ‘신’이다. 초의 외양이 제 아무리 튼튼하다 한들, ‘기’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 빛을 낼 수 없을 터. 

자연스레 한의학은 ‘기’의 힘을 중시했다. 동의보감 박물관 내 동의보감관은 <동의보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물을 꾸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은 올해 나이 400살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 전통의약의 대표 치료법인 침과 뜸은 막힌 기를 뚫는 과정이다. 기를 팍팍 살려 모든 것이 잘 돌도록 해야만 몸이 제 기능을 한다는 말이다.  

‘기’가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 산청이요, 그중에서도 최고의 ‘기’를 발산하는 명당이 엑스포 행사장 안에 있다. 동의보감관의 위쪽에 자리한 한방기체험장은 ‘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명물은 거북이 등껍질을 본뜬 귀감석. 무게가 무려 127톤인 귀감석의 영험함은 서울에서 산청으로 내려가기 전부터 익히 들었다. “불임으로 걱정하던 부부가 이곳의 기를 받고는 아이를 가졌다더라”, “귀감석을 다녀간 뒤 승진을 했다더라”는 등 믿거나 말거나 식의 ‘카더라’ 이야기가 커다란 바위에서 시작해 널리 퍼져 나갔다. ‘기가 찬다’, ‘기가 죽는다’, ‘기 살리기’, ‘기지개’ 등 우리가 생활 속에서 무심코 쓰고 있는 상당수의 말은 우리의 ‘기 문화’에서 연유한 것이란다.     

귀감석에서 계단을 밟고 더 올라가면 돌 거울인 ‘석경’이고 석경 아래엔 손 글씨가 새겨진 나무판이 하나 서 있다. “석경 아랫돌 뿌리에 내 손과 머리를 붙이고 나를 기로 바꾸십시오.” 돌로 만들어진 거울이나,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리를 조아리니 나쁜 기에 휘감겨 고통 받던 자신이 보인다. 결국 모든 고통의 근원은 바로 ‘나’였다.



1 속이 훤하게 비치는 독특한 유리온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옥 모양으로 지어진 약초관은 쉽게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약초를 선사한다 2 동의보감 박물관의 2층에 마련된 한방체험관은 재밌는 퀴즈로 전통의약을 알려준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에겐 필수 코스다 3 길이 20m, 높이 4m의 황금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한다 4 좋은 기운을 내뿜는 귀감석에 기대면 일이 술술 풀린다 5, 6, 7 동의보감관에서는 올해 탄생 400주년을 맞는 <동의보감>을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travie info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재충전이 필요한 가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찾으면 힘이 난다. 몸에 좋은 온갖 약초와 약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좋은 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이 태어난 지 400주년. 허준 선생이 알려주는 전통의약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한방 향주머니 만들기, 약초 꽃 페이스페인팅, 한방 화장품 만들기 등 각종 체험행사도 놓칠 수 없다. 매년 5월에 열리던 ‘산청 한방약초축제’도 올해는 엑스포와 함께 열린다. 13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10월4일부터 11일까지 열리니 참고할 것. 
행사기간 9월6일~10월20일(45일간)  주요 행사장 주제관, 동의보감관, 약초생태관, 세계관, 약선문화관, 교류·산업관, 한방기체험장, 힐링타운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555  입장권 현장권 1만5,000원  문의 055-970-8683 www.tramedi-expo.or.kr

●Interview
“지리산은 나의 텃밭이라네” 
산야초 전문가 전문희

바람 따라 누웠다 일어나는 벼, 땅의 정기를 받아 솟아나는 각종 야생초 등 산청에서 자라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방치했던 몸이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동안 매 끼니를 ‘먹기’가 아니라 ‘때우기’라 여겨 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각박한 삶을 돌아볼 것이다. 동의보감촌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시천면까지 달려, 지리산 건강학교를 찾아간 이유다. 

‘산야초 전도사’로 불리는 전문희 선생이 운영하는 지리산 건강학교에선 선생의 강의실이자 전시실이었다. 이곳에서 전문희 선생은 ‘산야초’를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산야초’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초목 중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일컫는다. 그녀는 700m 고지에서 채집해 온 야생초로 차를 끓이고, 초목의 잎, 껍질, 꽃 등을 발효하고 숙성해 효소를 만들고 있다. 뽕잎차, 솔잎차, 쑥차, 냉이차, 민들레차, 제비꽃차, 산수유꽃차 등…. 산야초 차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코가 조건반사적으로 움찔거린다. 오디, 앵두, 탱자, 엉겅퀴, 쇠비름 등이 효소로 변신하면 우리의 몸을 맑게 해주는 명약이 된단다. 산야초에 대한 내용을 엮어 전문희 선생은 이미 책 <산야초 차 이야기 1, 2>, <산야초 효소 이야기>를 냈다. 두 책을 읽으면 생소한 산야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구례, 하동, 남원을 거쳐 산청에 산 지는 벌써 10년째다. 지역을 구분한들 무엇 하리. 어디가 됐든 전문희 선생의 집은 17년이 다 되도록 딱 한곳이다. 바로 ‘지리산’. 엄격한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그녀에게 지리산은 일용할 양식을 일구는 텃밭이고, 명상의 시간을 선물하는 수련원이자 몸을 치료해주는 병원이다. 이 때문에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유독 각별하다. 몸에 좋은 것을 얻겠다고 식물의 여린 순을 따고 뿌리까지 다 캐내어 버리는 세태를 향해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전문희 선생의 밥상에는 직접 재배한 고추, 오이, 상추, 치커리가 올라온다. 가공식품도 육류도 일절 없다. 나쁜 먹을거리에서 해방된 까닭인지, 화장품 하나 쓰지 않은 그녀의 피부는 아기 피부처럼 맨들맨들하다. 건강하게 사는 그녀의 삶을 본뜨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전문희 선생의 삶도 고달파졌다. 모 방송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소개된 이후로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렸으니 살려 달라’고 무작정 애원하는 사람부터 건강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란다. “너도나도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냐고 물어. 내가 아무리 방법을 알려줘도 본인이 삶을 바꾸지 않으면 소용없어. 결국 무엇을 먹고 살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지리산건강학교┃문의 055-973-7789 cafe.naver.com/sanyachostory  유의사항 사전 예약 필수


1 엄격한 ‘자연주의자’인 전문희 선생은 산야초 차, 산야초 효소를 10년 넘게 알리고 있다 2 산야초 차와 잘 어울리는 찻잔

글  구명주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김정호   취재협조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조직위

▶travel info
산청에서 잘 먹고, 잘 걷기

약초와 버섯골
국물이 곧 명약인 샤브샤브 

동의보감촌 입구에 들어선 약초와 버섯골은 ‘산청스러운’ 음식을 차려낸다. 간판 메뉴는 ‘약초와 버섯 샤브샤브’. 당귀, 땅두릅, 방풍, 신선초, 뽕잎 등 4~5가지 약초와 함께 느타리, 팽이, 표고, 새송이 등 정갈한 버섯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싱싱한 약초는 13가지 약재가 우려진 뜨거운 육수에 담겨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다. MSG를 일절 넣지 않았다는 국물에 잠시 넣었다가 건져 먹는 쇠고기는 씹기가 무섭게 꿀떡 넘어간다. 국물 자체가 ‘약’인 샤브샤브의 육수는 ‘죽’으로 만들어 먹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소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5 주요메뉴 약초와 버섯 샤브샤브 1만5,000원, 약초버섯 된장탕 8,000원, 약초전 5,000원  문의 055-973-4479

초석정
따뜻한 영양밥과 정갈한 산나물 

엑스포장에서 다소 떨어진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자리한 ‘초석정’은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하다. 돌솥정식 또한 이곳의 인기 메뉴. 호박, 콩, 대추 등이 알알이 박힌 영양밥이 먹음직스럽다. 뜨끈뜨끈한 밥에 고사리, 표고버섯, 취나물, 무나물 등을 섞어 먹으면 쌀밥의 고소함과 함께 나물 고유의 향을 입 안 가득 느낄 수 있다. 돌솥밥과 한 상 위에 오르는 쫀득한 파전, 아삭아삭한 배추얼갈이, 새콤한 장아찌, 후식으로 안성맞춤인 수수부꾸미 등 반찬 또한 훌륭하다.  
주소 산청군 시천면 원리 380-4  주요메뉴 돌솥정식 1만3,000원 산채비빔밥 1만원 
문의 055-972-4400, 055-972-4455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300km를 잇는 도보길로 총 9코스가 있다.
산청은 무려 5개의 둘레길 코스를 선사한다. 홈페이지 www.trail.or.kr

●산청 1구간(둘레길 5코스) 동강-수철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므로 한적한 시골 풍경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상사폭포 등 아름다운 계곡이 일품이다. 길이 11.9km  소요시간 5시간  
●산청 2구간(둘레길 6코스) 수철-어천
더운 날 둘러보면 좋은 코스다. 물이 맑은 경호강이 흐르고,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경호강 민물고기 요리도 놓칠 수 없다. 길이 13.6km  소요시간 5시간
●산청 3구간(둘레길 7코스) 어천-운리
천왕봉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웅석산에서 맺힌다. 웅석산을 조망하기 좋은 3구간은 보물로 지정된 단속사지동서삼층석탑을 지난다. 길이 11.3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산청 4구간(둘레길 8코스) 운리-사리
비단처럼 고운 물길을 내는 백운계곡과 참나무숲길이 펼쳐지는 4구간은 고요하다. 둘레길 본연의 ‘걷는 맛’을 느끼기 좋다. 길이 13.1km  소요시간 5시간
●산청 5구간(둘레길 9코스) 사리-상촌
남명조식유적지를 관통하는 까닭에 5구간을 걸으면 조선 중기 대표 유학자인 조식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하동군까지 넘어간다. 산청의 대표 시장인 시천5일장과 곶감경매장 등도 구경하기 좋은 포인트. 길이 10.3km 소요시간 4시간 


산청 여행만으로 아쉽다면?
경상남도 산청군은 함양군, 합천군, 하동군, 진주시 등과 맞닿아 있다.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구경한 뒤에 경상남도의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기 좋다. 특히 10월에 산청 엑스포를 찾는다면 남강을 ‘빛’으로 물들이는 진주남강유등축제까지 즐길 수 있다. 유등축제는 10월1일부터 10월13일까지 개최된다. 진주남강유등축제 www.yude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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