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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기자] 지루한 일상 비틀어 여행하기

  • Editor. 양이슬
  • 입력 2014.02.06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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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일상이 설레는 여행지가 된다.
여행은 마음가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3년 전쯤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낭여행자들이 주를 이뤘던 그 게스트하우스는 서울 종로의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해 항상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 당시 내가 하던 일은 예약 확인 등 간단한 사무업무와 매일 아침 관광지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묻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질문에 답해 주는 것이었다. 물어보는 사람의 국적도, 가고 싶은 지역도 가지각색이었다.
 
매일 아침 손짓발짓 모두 써가며 길을 나서는 여행객들에게 알고 있는 지식을 탈탈 털어 주고 나면 그제서야 한 박자 늦게 길을 나서는 어느 여행객이 있었다. 그녀는 별로 크지 않은 키에 금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노란 곱슬머리를 정수리 위로 묶은 채, 알록달록한 항아리 바지를 입고 “Hi” 한마디를 던지고 매일 아침 총총 사라졌다. 늘 간편한 옷차림 하나였다. 다른 여행객들처럼 커다란 여행가방도, 카메라도 없었다. ‘사진이나 기록에 무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다 일주일 넘게 보이는 그녀가 매일 아침 가는 곳이 궁금해 물어봤다. 되돌아온 대답은 “택견을 배우러 간다”였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너는 이런 곳에 살아서 좋겠다”였다. 매일 아침 택견을 배우며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물던 그녀와 친해졌다. 그녀는 스웨덴에서 온 배낭여행자였다.
 
새로운 꿈을 품다

그녀에게 “이런 곳에 살아서 좋겠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진심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한국전통무예인 택견을 배우기 위해 길을 나서고, 거주인인 나보다 종로, 북촌 지리에 더 빠삭한 그녀를 보면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 온 여행자에게 이곳은 떠나고 싶지 않은 여행지를 넘어서 살고 싶은 곳이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마다 그녀가 던지는 “Hi”를 받아치며 언젠가 나도 내 키만한 배낭을 메고 세계를 떠돌며 여행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여기저기 여행하다가 머물고 싶은 곳에서 그 지역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살아 봐야겠다는 어마어마한 꿈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장기 배낭여행이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장기 배낭여행은커녕 가까운 해외여행지, 아니 하다못해 국내 여행조차 자주 갈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여력이 안 되어서는 모두 핑계다. 바지런하지 못하고 휴일이면 무기력해지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가지던 중 보게 된 책이 <일상 여행자의 낯선 하루>다. 저자 권혜진씨는 소문난 파워블로거로 여행 작가, 때로는 일상 여행자를 넘나드는 13년차 방송작가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고 말하는 저자. 그녀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듯 풍광을 감상하는 법부터 골목과 거리, 창문, 가로등, 비둘기, 휴지통 등 사소한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읽는 법, 한잔의 차, 공기의 흐름, 주변의 소리, 냄새를 통해 일상을 즐기는 법을 배워 온 것이 여행을 다녀온 후 생긴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하루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듯 일상을 여행한다.
 
마음가짐, 그리고 변화

그녀가 책 속에서 언급한 <방에서의 여행>은 그녀보다 조금 더 일찍 ‘일상 여행’을 한 자비에르가 쓴 책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벌인 대가로 42일간의 감금처벌을 받은 스물일곱의 자비에르. 그는 꼼짝없이 갇힌 작은 방을 42일 동안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그는 방을 돌고 돌며 <방에서의 여행> 원고를 완성했고, 훗날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속편이 나올 정도로 인기도 좋았다. 그는 자신이 갇힌 방을 ‘감옥’이 아닌 ‘새로운 여행지’로 바라봤다. 200년 전의 자비에르도, 현재의 일상 여행자 권혜진씨도 그 시작은 시선의 차이에서 시작됐다. 그녀의 시선을 빌리자면 한잔의 커피로 작은 내 방이 프랑스 파리의 작은 카페가 될 수도, 매일 타는 버스의 똑같은 좌석이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변화는 마음가짐의 변화로부터 왔다.

“랭보는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여행자도 마찬가지다. 일상을 바라보는 깨어 있는 시선이 여행자를 만든다.”

쉽지 않은 시도겠지만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우선 햇볕 좋은 평범한 날 야외용 테이블과 작은 파라솔, 그리고 알록달록한 식탁보를 준비한다. 그리고 싱싱한 샐러드에 토스트, 달콤한 디저트로 가득 찬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옥상 피크닉’을 즐겨 볼 계획이다. 그렇다고 장기배낭여행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 장기배낭여행을 준비하는 단계로 일상 여행자가 되어 보겠다는 말이다. 따뜻한 봄날 피크닉을 즐기는 곳이 마음속의 목적지인 프랑스 파리가 아니면 어떻고, 염원해 마지않던 방콕 카오산로드가 아니면 어떠랴. 일상 여행, 그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글  양이슬 기자 
 

일상 여행자의 낯선 하루
가방에 짐을 싸고 지도를 챙겨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낯익은 공간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집, 부엌, 거리나 버스 정류장까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졌다면 이 책을 참고해 일상을 여행해 보길 바란다.
권혜진│이덴슬리벨│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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