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力 Interview] 이가수불 이상헌 대표- 19도 막걸리를 위한 안내서
[酒力 Interview] 이가수불 이상헌 대표- 19도 막걸리를 위한 안내서
  • 트래비
  • 승인 2014.03.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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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은 마치 무사 같다. 
그가 술 빚을 때 타협은 없다.
그의 이름을 내건 ‘이상헌 탁주’, 
‘이상헌 약주’도 그 결기를 빼닮았다.
알코올도수 19도의 막걸리는 
어느 모로 보나 이상헌의 술이다.
 
 
이씨네 술, 세상에 나오다

이상헌 대표의 도가 ‘이가수불’은 아산에 있다. 집과 도가를 겸하고 있는 터라, 현관문을 열면 거실 한편에 놓인 술 단지를 볼 수 있다. 거실과 안방, 발효실과 숙성실이 공존하는 이곳이 이 대표가 살아가는 곳이다. 아늑한 분위기에 비해 집 안의 공기는 꽤 쌀쌀하다. 술이 익기 좋은 온도, 20도다. 아무래도 이 집의 환경은 사람보다 술에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이상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가수불’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가수불은 이가李家의 술(수불은 술의 고어다), 즉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제주祭酒를 뜻한다. 종갓집에서 자란 그는 젊은 시절부터 200년이 넘은 시루로 그보다 훨씬 오래된 집안의 술을 빚었다. 그에게 술이란 집안의 뿌리 그 자체다. 조상을 모시고 손님을 잘 대접한다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 그가 술을 빚는 이유였다.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대중을 위한 술을 빚고 그 술을 파는 지금의 모습을 말이다. 이 대표는 30년 넘게 술을 빚으면서도 도가를 차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디자인회사, 토목회사, 건설회사 등을 운영하며 지낸 곡절의 시간 후 깨달은 게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술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온몸 바쳐 술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에 빚은 누룩. 손수 키운 밀로 술의 씨앗을 만들었다
 
“이 사람도 내 술엔 손 못 대요”

그는 누구도 엄두 못 낼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 쌀을 씻고 찌고, 술을 담그고 거르는 일이다. 쌀을 빻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절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기계가 만들 수 있는 술이 있고,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술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을 쓰는 일도 없다.
 
“이 사람도 내 술엔 손 못 대요.” 든든한 조력자인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농사도 짓는다. 손수 재배한 밀로 술의 씨앗인 누룩을 만든다. 누룩을 직접 발로 디뎌 만드는 도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술맛을 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정성스레 빚다 보니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술 단지는 6~8개고, 한 단지에서 나오는 양은 탁주 50병, 약주 30병이다. 발효만 12일, 술이 익는 긴 시간을 더하면(탁주는 52일, 약주는 100일) 효율성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슬로푸드다. 이 대표는 병마다 서명과 함께 술의 라벨을 쓴다. 몇 번째 단지에서 빚은 몇 번째 병인지 말해 주는 번호다. 이렇게 술마다 번호를 매기는 일은 귀하게 빚은 술의 가치를 더해 준다. 흔히 접하는 대다수의 막걸리는 1~2주일 안에 모든 과정이 끝난다. 빨리 유통하기 위해 빨리 만든다. 그러나 이상헌 식 술빚기에서 이런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상품성을 위해 술의 질을 낮추거나, 첨가물로 쉽게 단맛을 내는 것 말이다. 이상헌 대표는 이러한 술들은 절로 술 맛이 든 게 아니라 술 같은 맛이 나도록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그의 이름을 걸고, 이씨 집안의 이름을 건 술은 편법을 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것이 상식이다. 
 
“사람들은 술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술은 귀하게 만들어야 하고, 귀하게 마셔야 합니다. 술은 다른 음식과는 달리 천지자연이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역할은 제대로 된 방법을 따르는 것뿐이고요. 저는 제 술 못 마십니다. 얼마나 귀하게 빚은 술인지 아니까 손이 떨려서요.”
 
1, 2 한창 익고 있는 이상헌의 술 3 맑은 약주를 떠내기 위해 ‘용수’를 박아놓았다 4 이상헌의 술이 완성되는 항아리 5 다 익은 막걸리는 손수 걸러낸다 6 완성된 탁주와 약주는 고급나무상자에 담긴다
 
"전통이란 지금 존재하는 것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

19도 막걸리를 위한 안내서

애초에 이상헌 탁주는 호락호락한 술이 아니다. 매끈한 외면에 비해 속내는 거칠다. 아니 까칠하다고나 할까. 혀를 착 감싸는 달착지근함도, 청량감도 없다. 한 모금 들이켜면 강렬한 알코올의 매운 맛이 사정없이 뒤를 친다. 알코올도수가 무려 19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맥주의 알코올도수가 4도, 막걸리가 6도이고, 소주도 점점 도수를 낮추는 시대에 이토록 독한 막걸리를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술 마시는 문화 자체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상헌 탁주는 도수가 높아 작은 잔에 따라 조금씩 마십니다. 벌컥벌컥 마시지 않죠. 이상헌 약주는 여과를 하지 않아 섬세한 맛을 갖고 있습니다. 그 향을 음미하려면 와인 잔 같은 게 좋죠. 술마다 잔을 달리하고, 마시는 사람이 그 가치를 생각한다면 우리 술도 위스키나 와인처럼 비싼 값을 내고 마시는 술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 이 술을 만들 때 탁주는 ‘위스키 같은 강렬함’, 약주는 ‘와인 같은 달콤함’을 염두에 뒀어요. 제 새끼 같은 술들이라 탁주는 거친 아들놈, 약주는 섬세한 딸내미라고도 하고요.”

이 대표가 추천하는 방법은 딱 세 번만 마셔 보기다. 그의 술이 갖고 있는 복잡함은 단 한 번 만에 평가하기 어렵다는 뜻일 거다. 우스갯소리로 세 번 이상 마시면 누구나 중독된다고도 한다. 이상헌 탁주를 처음 맛본 미국인 베카Becca는 이렇게 말했다. “드라이하고, 쓰고, 복잡하다. 초보자가 좋아할 술은 아니다. 그러나 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이 막걸리를 분명 좋아할 것이다.” 
 
이상헌의 도가에서 가까운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 들렀다
 
이놈 저놈, 다 모여라

그러고 보면 이상헌 대표는 파수꾼이라기보다는 혁명가에 가깝다. 무작정 전통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전통이란 지금 존재하는 것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켜야 하는 것은 방식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것도. 

지금 그가 바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우리 술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달고 청량한 막걸리 일색인 이 술판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다 같이 겨뤄 보자는 것이다. 그가 전국의 소규모 양조장 연합인 ‘우리술협동조합’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유도 다양한 우리 술을 알리고 판로를 개척하자는 뜻에서다.  

“막걸리도 진화가 필요합니다. 기술이 개발되어 거품막걸리 같은 것도 등장하고 있는데, 술 만드는 사람들은 진화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좋은 술을 만들게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똘똘 뭉쳐 판로를 뚫어야죠. 특색 있는 술이 나오고, 우리 술판이 바뀌면 우리 술 세계화도 그때 가능하지 않겠어요? 위스키 즐기는 영국인들에게 우리 소주를 팔고,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 우리 약주를 팔고, 독일인들이 맥주처럼 막걸리를 즐겨 마시게 해야죠.” 

‘이상헌 탁주’(19도)와 ‘이상헌 약주’(18도)를 만드는 방식은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가수불에서 출시할 그의 술들은 맥주 같은 막걸리가 될 수도, 위스키 같은 소주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어떤 술이 됐든 ‘세상에 없던 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Travie info
2013년 12월 출시한 ‘이상헌 탁주’와 ‘이상헌 약주’는 ‘우리술협동조합’을 통해 유통하고 있다. 우리술협동조합은 대형 주류회사, 유통회사의 벽에 막혀 우리 술 유통이 어려운 현실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생산자협동조합이다. ‘뭉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뭉친 22개의 우리 술 업체들 만드는 다양한 우리 술을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www.sul.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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