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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bread-찹쌀떡 할아버지와 눈인사

  • Editor. 양이슬
  • 입력 2014.08.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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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무살, 첫 번째 아르바이트 장소는 빵집이었다. 단순히 빵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면서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근무 시간. 오전 7시에 시작해서 낮 2시까지 이어지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위해 매일 아침 늦어도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고, 올빼미 생활을 즐겨했던 당시의 나는 매일 아침을 ‘왜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까’라는 후회로 시작했다. 해도 뜨지 않은 겨울 새벽에 출근을 위해 문을 열고 집을 나설 때마다 모자, 장갑, 목도리 등 각종 방한 용품을 이용해 눈에 보이는 모든 살들을 뒤덮어 체온을 유지했다.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장 문을 가장 먼저 여는 것도 힘들기만 했다. 
 
매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나의 불만과 불평은 끝이 없었다.

‘오늘은 정말 일어나기 싫다’로 시작된 불만은 새로 들어온 빵을 진열하며 ‘날이 추워 손이 얼 것 같다’로 이어졌고, 퇴근할 때면 몸 전체에 밴 빵 냄새도 맘에 들지 않았다. 불만이 가득하니 당연히 표정이 좋을 리 없다. 이른 아침이라 사장님도 안 계시겠다, 제빵사 언니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내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터. 손님을 향해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는 물론, 판매원의 기본인 미소도 떼어먹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할 일만 묵묵히 하던 날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매장을 들러 빵을 사 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 낱개로 포장된 찹쌀떡을 하나씩 사 드시던 이른바 찹쌀떡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날도 찹쌀떡 할아버지는 “좋은 아침이여~”라고 말씀하시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늘 듣던 인사였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한 달여 동안 제대로 된 인사 한 번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니 머쓱해졌다. 민망함에 웅얼거리듯 ‘안녕하세요’라 말하자 싱긋 웃어 보이셨다. 인사를 나누고 나니 그동안 그 인사를 외면했던 나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더불어 웃으며 매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표정 없이 빵만 사고 되돌아갔지만).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가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생각이 바뀌면 태도와 행동, 습관, 성품이 바뀌고 운명까지도 바뀐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생각이 성공, 혹은 인생에 끼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책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른 아침 시작하는 아르바이트는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나에겐 약속한 시간까지 주어진 책임이 있었다.

사소한 불만거리들 또한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잠재울 수 있었다. 

출근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니 하루가 길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갓 나온 빵을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다는 점과 가끔 덤으로 빵을 얻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나에게 충분히 매력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사소한 것부터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추운 겨울 매일같이 매장 문을 여는 것도 더 이상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굳어진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은 바뀌었지만 그 생각이 태도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아르바이트를 약속했던 3개월이 끝날 무렵에는 손님을 맞이하며 먼저 인사하는 나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글 양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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