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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가족여행-강릉사람의 가족여행법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4.11.04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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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이 다 되었다. 어느새 ‘우리집’이라 말하기가 어색해진 나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20분만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고 왕복 시내버스 요금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쌈짓돈만 있으면 그럴듯한 해수욕장 피서가 완성되는 도시다. 서울에 사는 지금, 그런 곳이 고향이라고 말하면 다들 ‘그럼 일 년에 몇 번씩 강릉을 가겠네?’라며 부럽다는 반응을 보낸다.

그런 주변인들의 반응에 으쓱해져서일까, 떠나온 지 오래되어 그리움에 젖은 것일까. 나도 지금은 내가 강릉 출신이란 사실을 꽤 낭만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강릉에 살았던 시절엔 집이 강릉이란 게 그리 좋지 않았다. 온갖 관광지가 지척에 있다는 이유로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논리는 이러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지가 
여기 다 있는데 뭣 하러 멀리 가느냐’는 것. 

맞는 말이었다. 봄에는 경포호숫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여름엔 동해안을 따라 수많은 해수욕장들이 일제히 개장했다. 가을엔 자동차로 한 시간만 가면 오대산, 설악산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겨울엔 그 비슷한 거리의 유명 스키장들이 하얀 옷을 입고 스키어들을 기다렸다. 그뿐인가. 매년 12월31일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정동진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본 적도, 벚꽃이 절정에 달한 경포호수에도 가 본 적도 없다. 그 또한 ‘관광객들이 몰릴 때 가면 고생만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여행은 한바탕 성수기가 지난 뒤 당일치기 또는 1박2일로 근처에 놀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바다든 계곡이든 별 준비 없이 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씻고 자면 됐었고, 스키장마저 평창 외갓집 가는 길에 들르면 됐다. 매번 가까운 곳만 데려가는 부모님에게 서운한 마음도 많았다.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이 다 되었다. 그 시절의 한을 풀려는 듯, 나는 여행기자가 되어 수많은 곳들을 다니며 멋진 풍경들을 눈에 담고 있다. 신비로운 안개에 싸인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본 나이아가라폭포, 괌의 투명한 바다 속 산호초와 열대어….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가족들의 얼굴과 수많은 강릉여행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비록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에겐 즐거운 가족여행의 추억이 가득하다는 것을. 우리 남매에게 그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곳저곳을 다녀 준 부모님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모든 여행의 의미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가족여행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완성된다는 걸. 

그래서 가족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치 않다. 
함께 간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지난 여름휴가엔 내내 강릉에만 머물렀다. 엄마와 나는 동해의 수평선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능선을 올랐다. 엄마는 타지에서 홀로 사는 딸의 건강을 걱정했고 나는 엄마가 보내 준 견과류와 인삼즙을 얼마나 잘 먹고 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날의 짧은 여행이 좋았던 것은 수평선 때문도 아니고 능선 때문도 아니다.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글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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