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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사라진 물컵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10.0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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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경위는 가물가물하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까. 핀란드 친구를 방문하고 런던으로 돌아오던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기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올 시간이었다. 인간의 심리는 참 묘하다. 어떤 제약이 생기면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 여행에서는 기내식이 가끔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중요해져 버린다. 사실 특별한 메뉴랄 것도 없고,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침내 내 앞에 놓인 기내식 트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북유럽 항공기라서 그런지 식기들은 또 왜 그리 예쁜지. 그중에서도 물컵이 유난히 탐나는 게, 마치 ‘날 집어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갖고 가서 두고두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지체 없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물컵을 가방 속에 숨겼다. 그리고 지나가던 남자 승무원을 불러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물컵이 없는데요?” 군소리 없이 하나 더 가져다줄 거라 생각했는데, 승무원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아, 돌발상황! 이 상황에서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무튼 없는데요…” 할 수밖에. 어쨌든 그는 새 물컵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물론 얼굴엔 ‘영 이해할 수 없다’고 씌어 있었고. 나는 미션을 달성하고도 앙금처럼 남는 이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늘 궁금하다. 식사 후 수거한 기내식 식기류는 전부 버리는지 재활용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나올 때면 늘 그때의 ‘물컵 사건’이 떠오른다. 그렇게 무리수를 두어 가며 획득한 ‘소중한 기내식 물컵’은 집에 와서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쓰다가 휴지통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냥 밥 다 먹고 나중에 하나 챙겨도 됐을 것을.  
 
아무튼 이 사건은 앞으로 사소한 것에 
양심을 팔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 1월 헬싱키Helsinki발 런던London행 기내
 
TIP
기내에서 주는 물품 중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증정용 어메니티 키트, 기내 잡지 등이다. 일부 항공사의 경우 이어폰을 기념품으로 주기도 한다. 포크, 나이프 등의 일회용 소모품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담요, 식기류 등은 모두 항공사의 재산이다. 어쨌든 여행 중에는 돈을 주고 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공짜라도 받아오지 않는 것이 좋다. 나중에 절대 안 쓴다. 
 
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 현재 여행 동호회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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