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경위는 가물가물하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까. 핀란드 친구를 방문하고 런던으로 돌아오던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기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올 시간이었다. 인간의 심리는 참 묘하다. 어떤 제약이 생기면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 여행에서는 기내식이 가끔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중요해져 버린다. 사실 특별한 메뉴랄 것도 없고,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침내 내 앞에 놓인 기내식 트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북유럽 항공기라서 그런지 식기들은 또 왜 그리 예쁜지. 그중에서도 물컵이 유난히 탐나는 게, 마치 ‘날 집어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갖고 가서 두고두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지체 없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물컵을 가방 속에 숨겼다. 그리고 지나가던 남자 승무원을 불러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물컵이 없는데요?” 군소리 없이 하나 더 가져다줄 거라 생각했는데, 승무원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아, 돌발상황! 이 상황에서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무튼 없는데요…” 할 수밖에. 어쨌든 그는 새 물컵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물론 얼굴엔 ‘영 이해할 수 없다’고 씌어 있었고. 나는 미션을 달성하고도 앙금처럼 남는 이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늘 궁금하다. 식사 후 수거한 기내식 식기류는 전부 버리는지 재활용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나올 때면 늘 그때의 ‘물컵 사건’이 떠오른다. 그렇게 무리수를 두어 가며 획득한 ‘소중한 기내식 물컵’은 집에 와서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쓰다가 휴지통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냥 밥 다 먹고 나중에 하나 챙겨도 됐을 것을.
아무튼 이 사건은 앞으로 사소한 것에
양심을 팔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양심을 팔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 1월 헬싱키Helsinki발 런던London행 기내
TIP
기내에서 주는 물품 중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증정용 어메니티 키트, 기내 잡지 등이다. 일부 항공사의 경우 이어폰을 기념품으로 주기도 한다. 포크, 나이프 등의 일회용 소모품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담요, 식기류 등은 모두 항공사의 재산이다. 어쨌든 여행 중에는 돈을 주고 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공짜라도 받아오지 않는 것이 좋다. 나중에 절대 안 쓴다.
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 현재 여행 동호회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 현재 여행 동호회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