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담 너머 산청에는 누가 살길래
옛담 너머 산청에는 누가 살길래
  • 천소현
  • 승인 2017.03.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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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사예담촌
저 멀리 산청에서 짊어지고 올라온 이야기보따리. 
이걸 풀지 못해 근질근질, 참기가 힘들었다. 
가가호호, 넘쳐흐르는 옛날이야기는 월담을 부추겼다. 
남사예담촌의 옛담들을 들여다봤다. 
 

(좌) 사양정사 (우)세월이 덧대어진 문고리
(좌) 하씨고가의 사랑채 앞 (우)기와를 얹어 비가 스며들지 못하게 한 양반댁 토담
 
 
●산청 남사예담촌 vs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알아도, 산청 남사예담촌은 모를 수 있다. 인지도에서 분명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사예담촌이 경남의 대표로 경북의 하회마을과 은근 자존심 대결을 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터. 하지만 직접 가 보면 이해가 된다. 

두 마을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것처럼 남사예담촌에도 마을을 둥글게 감싸 안는 남사천(옛이름은 사수泗水)이 있다. 마을의 지형이 닮은꼴이다. 하지만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한옥마을로 정비되어 깔끔하고 세련되기까지 하다면, 예담촌은 손때 가득한 고택들 사이로 방치된 빈집과 낡은 양옥들, 시멘트 주택이 섞여 있어 언뜻 보면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원래 예담촌은 6·25 전만 해도 250여 채의 한옥이 있어서 한강 이남에서 한옥이 가장 많은 마을이었다고. 하지만 미군의 폭격으로 지금은 40여 채가 남았을 뿐이다. 

700여 년을 이어온 두 마을의 길이 크게 나뉜 것은 15여 년 전이다.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남사예담촌은 이듬해인 2011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됐다. 이제부터는 여행자 개인의 취향이다. 어느 쪽에 더 후한 점수를 줄 것인가? 물론 두 곳을 다 가 봐야만 결정할 수 있다. 
 
한아연 | 1982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마을 운동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제1호 남사예담촌 지정과 함께 한아연(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회)도 결성되었으며 현재까지 9개 마을이 지정되었다.  hanayeon.or.kr
 
니구산과 사수 | 공자가 태어난 중국 취푸(곡부, 曲阜)에 있는 뒷산의 이름이 니구산이다.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니구산이라고 부른다. 사수 역시 공자의 고향을 지나가는 산둥성 사수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700년 역사의 남사예담촌에는 4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세월이 쌓인 옛담은 마을의 큰 재산이 되었다
마을에서 가장 부자집이었던 최씨고가의 사랑채
 
●옛담이 아름다워 예담촌 

아이러니하지만 남사예담촌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 것은 으리으리한 명문고가가 아니었다. 투박하고 제멋대로 생긴 토담과 돌담들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남사‘예담’촌으로 정했다. 총 길이 3.2km에 이르는 마을의 옛 담장들은 2006년도에 국가등록문화재 281호로 등록됐다. “이래봬도 담 1m당 가격이 80만원입니다. 함부로 쌓거나, 고치거나, 무너트릴 수도 없습니다.” 지난 경주 대지진 때 일부 담장이 무너지면서,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마을 담장을 점검하며 노심초사했다는 문화유산해설사 노창운씨의 말이다. 

담은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는 남사천변의 강돌. 하지만 그것을 쌓는 방식도 높이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다. 반가에서는 주로 토담 위에 기와를 얹어 비가 스며드는 것을 방지했고, 민가에서는 투박하게 돌담을 쌓았다. 담 안에 사는 주인의 형편과 취향이 고스란히 읽힌다. 보통의 담이 경계와 구분이라면 남사마을의 옛담들은 공존을 위한 장치다. 황토빛 담들은 달구지 하나가 다닐 만한 폭의 정겹고 포근한 길을 만들어 집과 집을 연결해 준다. 

‘예담’의 뜻은 알았으니 이번에는 ‘남사’의 뜻을 알아보자. 사수(남사천의 옛 이름)가 휘감은 마을터가 반달 모양을 이루었기에 조선시대에는 사월리(沙月里)라고 불렸다. 이후 사수를 기준으로 ‘남사월’과 ‘상사월’로 구분되어 남사(南沙), 상사(上沙)로 부르다가 합쳐서 남사촌이 된 것. 남사예담촌이라는 이름은 2003년부터 사용 중이다. 사수뿐 아니라 지리산 자락과 이어지는 마을 뒷산인 니구산(尼丘山)은 그 이름의 연원이 공자*와 연결되어 있다. 마을 곳곳에 유교적 전통이 짙게 배어 있다. 
 
하씨고가의 대문 밖으로 이끼 낀 돌담이 보인다
이씨고가 마당 한가운데의 굴뚝은 용이 승천하는 길이다
최씨고가의 화장실은 2층 구조에다 문도 없다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이씨고가의 망와
 
●다다익선이 된 다성촌 

남사예담촌의 한옥수는 하회마을의 절반 수준이고 가구수도 300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지만 월등히 많은 것은 씨족의 다양성이다. 하회마을은 풍산유씨(豊山柳氏)의 집성촌인 반면, 남사예담촌은 여러 가문이 흘러와 정착한 다성촌이기 때문. 집성촌에 비해 응집력이 약할 것 같지만 남사예담촌에는 아직도 마을 계가 있다. 300년 넘게 이어온 ‘동약계’를 통해 마을 공동재산을 알뜰하고 현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선 유서 깊은 가문들을 호명해 보자. 세종 때 정승을 지냈다 하여 ‘정승집안’으로 불리는 진양하씨(晉陽河氏)뿐 아니라 태조 이성계의 사위 집안이라고 하여 ‘부마집안’으로 불리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냈다고 해서 ‘판서집안’으로 불리는 밀양박씨(密陽朴氏), 포은 정몽주의 장손집안이라고 해서 ‘충신집안’으로 불리는 연일정씨(迎日鄭氏), 만석꾼이라서 ‘부자집안’이라고 불리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유림들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면우 곽종석 선생 때문에 ‘독립운동집안’이라고 부리는 현풍곽씨(玄風郭氏) 등이 남사예담촌 고택마다 문패를 달고 있다.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순서로만 치차면 700여 년 전 가장 먼저 들어와 입향조가 된 하씨고택을 먼저 봐야겠지만 규모가 컸던 고택은 사라지고 후에 재건되었다.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고택은 이씨고가(李氏古家)(1,700년대 건축, 경남문화재 자료 118호)다. 태조 이성계의 딸 경순공주와 결혼한 경무공 이제의 후속들이 대대손손 살아온 집이지만 방문객들은 250년 전 중건한 사랑채까지만 접근이 허락된다. 사랑채 앞마당 한가운데에 불쑥 올라온 굴뚝의 위치가 수상한데, 풍수적으로 용이 지나가는 자리여서 용이 굴뚝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란다.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볼 것이 많은 고택은 3,000석(지금으로 치면 30억 규모) 부잣집이었다는 최씨고가(崔氏古家)1920년대 건축, 경남문화재 자료 117호)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2개의 중문을 두어 남녀의 공간을 구분했다. 사랑채는 한옥스테이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눈여겨볼 것은 화장실이다. 예담촌의 고택들은 화장실이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 주인이 2층 높이의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면 하인들이 아래층 문을 열고 재를 뿌려 퇴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최씨고가의 화장실에는 문조차 달려 있지 않다. 문이 없으니 모퉁이를 돌기 전에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야 했고, 그러면 불편한 냄새를 맡을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발견은 대문 안쪽에 단 거북이 모양의 나무 빗장이다. 옛 가야 지역이었던 산청에는 거북이와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많이 전해지는데, 최씨고가의 빗장에도 장수를 기원하는 뜻과 음양의 조화가 반영되어 있다. 사양정사(泗陽精舍)는 연정몽주의 후손들인 연일정씨(延日鄭氏)(영일정씨迎日鄭氏라고도 불린다) 가문의 재실로 자녀들을 교육하거나 손님을 만나는 공간으로 사용했었다. 규모가 21칸에서 많이 줄었다지만 지금도 정면 7칸, 측면 3칸의 사랑채에 다락방까지 갖추고 있어서 넉넉하게 민박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모재(永慕齋) | 태조 이성계의 사위인 경무공 이제(李濟,1365~1398)년를 모신 재실이다. 이성계가 직접 썼다는 <개국공신교서>가 이곳에서 발견되어 보물 1294호로 지정됐다.  
 
이씨고가 앞 회화나무 한 쌍은 사랑이 지극하다
650년이 지나도 주렁주렁 감이 열리는 감나무
 ‘원정구려’라고 쓴 하씨고가의 현판. 원정공이 살던 옛집이라는 뜻이다
구멍에 손을 넣고 빌면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 나무
바람이 불 때 사효재 향나무에서 나는 소리는 효자들만 들을 수 있다
 
●사연 많은 노거수 이야기 

남사예담촌은 노거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입향조답게 가장 오래된 나무는 하씨고가에 남아 있다. 원정공 하즙(元正公 河輯, 1303~1380년)이 <영매시>를 남겨서 원정매라고도 불리는 650년 된 매화나무는 너무 고령이라 쇠약해졌다. 원정매를 포함해 마을의 노거수들을 대부분 후계목을 키우고 있다. 다행한 것은 620년 된 감나무의 노익장이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7세 때 심었다는데, 아직도 매년 가을이 되면 여전히 홍시를 주렁주렁 매달아 건재를 과시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이면 도깨비가 나타나 감나무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도깨비를 보면 성공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감나무를 찾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도깨비의 인기를 물리친 것은 이씨고가 앞 회화나무 한 쌍이다. 좁은 골목길 좌우에 심은 두 그루 나무는 310여 년 동안 서서히 서로를 향해 몸을 틀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서로에게 빛을 양보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따스하다. X자로 교차한 모양 때문에 부부나무, 사랑나무라고 불리고, 두 나무 아래를 부부가 함께 지나가면 백년해로를 한단다. 그러니 심사숙고한 후에 지나가라는 당부가 따라붙는다. 

망설임 없이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갈 정도의 부부라면 이씨고가 마당의 삼신할머니 나무를 찾아뵐 자격이 충분하다. 수령 450년의 이 회화나무 몸통에는 쑥 파인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손을 넣고 빌면 아이를 점지해 준단다. 

사랑이 아니라 효심을 시험해 보려면 옛담촌 맛집으로 사용 중인 사효재를 찾아가면 된다.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는 재실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520년 동안 서 있었던 향나무는 바람이 불면 윙윙 소리를 낸다는데, 효자들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이호신 화백이 살고 있는 오늘화실로 들어가는 길목
마을의 빈집들은 이제 각자의 용도를 찾아가고 있다
남사예담촌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
남채정으로 이주하기 위해 겨우내 분주히 청소를 하던 소설가 이진숙(왼쪽)씨와 동생
 
 
●예술가들이 탐내는 마을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남사예담촌에는 더 많은 노거수와 고택들이 있다. 불쑥 방문하여 휘휘 둘러보는 것과 마을안내사의 설명을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반나절도 빠듯하다. 남사천변에 녹음이 무르익을 때 즈음 며칠 푹 묵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혼자서만 한 것이 아닌지, 이미 앞길 튼 예술가 이주민들이 있었다. 

현석 이호신 화백은 일찌감치 남사예담촌의 주민이 되었다. 전국의 아름다운 마을을 순례하며 그림을 그리다가 8년 전 지리산 밑, 산 좋고 물 좋은 남사예담촌에 ‘오늘화실’을 마련했다. 서재 겸 응접실로도 사용하는 그곳에서 만난 이 화백은 “남사예담촌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풍부한 700년 역사를 가진 마을이라는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마을의 사계절과 곱게 늙어 가는 노거수들을 화폭에 담고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모아 2012년에는 <남사예담촌>이라는 마을그림책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아내도 아예 산청으로 내려와 마당 건너편에 산청아트숍을 열고 남편의 작품과 출판물 그리고 차를 판매하고 있다. 막상 살아 보니 차로 25분이면 진주에 도착하고, 큰 마트도 차로 10분 거리라 불편함이 없단다. 
 

지난 겨울부터는 소설가 이진숙씨가 채남정(采南亭)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경남 원지에서 북카페를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조금씩 집을 고치고 나면 조용히 텃밭을 일구면서 첫 번째 소설집 <카론의 배를 타고>의 후속작품들을 집필할 계획이다. 성주이씨 재각이었던 채남정은 마을에서도 워낙 주변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입구에 팽나무가, 마당에는 우물도 있고, 남사천의 우람한 바위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에는 아직 이런 빈집이 좀 남아 있다니 늦지 않았다. 도시로 나가 성공한 후손들에게도,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에게도 비워 둘 수밖에 없는 문중의 고택들은 고민일 터이니. 햇볕 좋은 날, 남사예담촌 토담길 사이를 걸으며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남사예담촌은 주름살을 감추지 않은 자연스런 전통마을이다
 

●남사예담촌 
깊고 넓게 즐기기

300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마을이지만 남사예담촌에는 방문한 김에 꼭 시간을 내서 살펴볼 만한 국악당과 기념관이 있고, 숙박과 식당도 잘 갖춰져 있다. 
 
 
▶국악 대중화의 주춧돌
기산국악당 

기산국악당은 이곳에서 태어나 국악 교육가로 활동한 기산 박헌봉(朴憲鳳,1906∼1977년) 선생을 기려 2013년 개관했다. 기념관에는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 선생을 비롯해 여러 제자들이 기증한 악기들이 한 방에 가득하고 실제 그 악기의 소리도 들어 볼 수 있는데, 그 이름들만 봐도 기산 선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선생은 국내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고,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의 초대 교장도 역임했다. 국악을 배우는 학생들이 주로 방문하는데 세미나도 열 수 있고, 숙박도 할 수 있다.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상동길 69  
오픈: 9:00~18:00(매주 월요일 휴무)  
요금: 무료관람  
전화: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055 970 6421 
 

▶파리장서사건의 주역
유림독립운동기념관 

흔히 아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는 별도로 경상도와 충청도의 유림 137명이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장서를 작성해서 보내려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이다. 당시 유림 대표였던 면우 곽종석(免宇 郭鍾錫, 1846~1919년), 지산 김복한 선생 등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파리장서가 일본에 발각되자 옥고를 치르고, 후유증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이다. 곽종석 선생은 이 마을 출신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 다음으로 많은, 165권의 책을 쓰고 성리학을 집대성한 구한말 대학자다. 마을의 이동서당(尼東書堂)은 그를 기리기 위해 후손과 제자들이 1919년에 세운 것이다.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919번길 7-13 
전화: 055 972 7107
 

▶충무공의 아린 흔적
이사재와 백의종군로

마을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남아 있다. 1597년 백의종군 중이었던 이순신 장군이 박호원의 집에서 묵어갔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있다. 송월당 박호원은 호조판서를 지냈고 밀양박씨 송월당공파를 이룬 인물로 그의 재실인 이사재(尼泗齋)가 남사천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사재 입구에는 ‘충무공백의종군비’가 세워져 있고 ‘산청백의종군로’의 첫 코스가 남사예담촌에서 시작된다.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929번길 7-13
 

▶한옥 민박과 한방족욕체험
농촌 전통테마마을이자 체험휴양 마을인 남사예담촌에는 숙박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사양정사, 선명당, 이씨고가, 기산재, 예담한옥, 최씨고가, 종갓집 등에서 민박을 운영하는데 겨울에는 숙박 손님이 뜸한 반면, 4월부터 11월까지는 지리산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한 달 전에 예약을 서둘러야 할 때도 있다. 담사예담촌의 민박집에서는 대부분 한방족욕체험이 가능하다. 동의보감촌이 위치하기도 한 산청은 예부터 약초가 잘 자라는 곳이었다. 약초물에 20분만 발을 담구면 몸이 훨씬 가볍다. 
 

▶남사예담촌의 맛집들
메뉴 선택도 다양하다. 옛 마을회관을 허물고 새로 지은 향토음식체험관인 ‘예담옥’, 들깨 시래기도 팔고 전통차도 파는 예담촌 찻집, 흙돼지 등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목화식육식당과 송정숯불갈비, 오리닭백숙을 파는 향목정 등이 있다. 예담방아에서 파는 들기름이나 떡, 예담촌농원에서 파는 감말랭이 등도 양질이다. 
 
산청 남사예담촌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897번길 10  
전화: 070 8199 7107  
홈페이지: yedam.go2vil.org
 
글 천소현 기자 사진 Photographer 유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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