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속까지 파고든 온기, 오바마 온천 & 운젠 지옥
깊은 속까지 파고든 온기, 오바마 온천 & 운젠 지옥
  • 트래비
  • 승인 2017.03.09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규슈 렌터카 여행③나가사키현 
운젠시(雲仙市) +시마바라시(島原市)
 
For Driver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것을 보려면 둥글게 순환하는 여행코스가 최적이다. 규슈 여행은 후쿠오카 공항으로 들어가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 항상 소외되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나가사키현의 운젠, 시마바라 등의 지역이다. 일정 순으로 나열한 여행기지만, 사실은 이렇다. 이토시마와 다케오가 점심 먹듯 마음에 점만 찍은 곳이라면 나가사키현의 운젠과 시마바라시는 마음에 따뜻한 돌덩이 하나를 품어 새긴 듯하다. 하루 반이라는 긴 일정 탓에 본 것, 먹은 것, 마주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주인은 운젠지옥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개는 어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다
오바마 온천마을의 족욕탕
시마바라성의 드넓은 해자 위로 나무 그림자가 피었다

운젠을 빛내는 두 개의 온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오바마 온천마을.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 캐릭터가 관광객을 맞지만 발음만 같다. 작은 해변이라는 뜻의 오바마 마을은 해안가에 면한 온천마을이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105도의 온천수가 해안가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덕에 마을 곳곳엔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 천연증기로 해산물을 쪄내는 밥집이 있다. 오바마 해안가에 자리 잡은 무시카마야(蒸し釜や). ‘무시’는 찜, ‘카마야’는 통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풀면 찜통집이다. 가게 안의 진열대에서 해삼, 문어, 굴, 조개, 소라 등의 해산물은 물론 고구마, 각종 야채 등을 골라 바구니에 담으면 가게 입구의 유황냄새 폴폴 나는 찜통에 넣어 쪄 낸다. 다양한 찜요리로 배를 채웠다면 엄청난 맛의 디저트를 즐길 차례다. 

무시카마야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젤라또 가게 ‘오렌지젤라또’는 꼭 들러 볼 것! 온천물을 졸여 얻은 소금으로 살짝 간해 ‘단짠단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다양한 과일 맛이 있지만 우유 맛 젤라또를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 센베이가 가장 맛있다. 온천 기호 모양으로 라테아트를 만들어 내는 카페라테도 맛이 좋다. 젤라또를 손에 들고 갈 곳이 있으니 가능하다면 테이크아웃 하자. 도보로 1분 거리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온천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장이 있다. 105도의 온천수를 상징하는 의미로 105m 길이로 만들고 보니, 일본 내에서 가장 긴 족욕장이 되었단다. 뜨끈한 물에 두 발 담그고 젤라또 맛보며 바다를 바라보는 맛. 사는 게 뭐 별건가. 이거면 족하다. 

오바마 마을이니,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사는 해야겠다. 이런저런 자료도 챙길 겸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입구에 오바마를 형상화한 밀랍인형이 객을 맞는다. 오바마에 비해 왜소한데다 옷도 남루하고 조악한 꽃팔찌까지 끼고 있어 왠지 짠한 느낌이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동상을 잠시 숨겨뒀단다. 동상의 행방을 묻는 관광객에게 오바마는 선거운동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했단다. 이런 위트라니! 이 마을 사람들, 매력이 넘친다. 
 
무시카마야(Musigamaya)
주소: 19-2 Obamacho Marina, Unzen 854-0517, Nagasaki 
전화: +81 957 75 0077
홈페이지: musigamaya.com
 
온천마을에 사는 오바마의 패션 포인트는 꽃팔찌다
무시카마야의 찜통에서 맛있는 해물찜이 나오는 순간.

오렌지 젤라또는 꼭 들를 것!
 
아기자기한 지옥 순례

운젠 지옥은 오바마 온천마을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차에서 내리자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인을 따라 운젠 지옥의 산책로에 나선 개는 첫 들숨에 흠칫 놀란 표정이다. 후각에 예민하니 더 괴로울 거다. 계란 썩는 냄새가 나 괴롭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계속 맡다 보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증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덩어리들이 거대하게 피어났다. 곁에 선 사람의 형상도 겨우 보일 정도였다가 바람이 불면 마법처럼 경계를 드러낸다. 찰나의 순간, 훅! 그 순간이 재미있어 꺄르륵꺄르륵 웃다 보면 어디선가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꾸르렁꾸르렁. 다치바나만 해저에 묻힌 마그마의 열기가 조심스레 솟아오르며 대지를 간질일 때 나는 소리다. 혹자는 이를 새가 우는 소리라고, 혹은 지옥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의 소리 같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극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마냥 신비롭기만 한 이 풍경이 진짜 지옥이었던 때가 있었다. 일본 내에서 서양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가사키에는 가톨릭이 급속도로 전파됐다. 도쿠가와막부가 크리스천들을 탄압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운젠 지옥에서 고문당하고 순교했다. 운젠 지옥의 열기 속으로 신도들을 밀어 넣고 살갗이 타면 그 위에 소금을 뿌리는 식이었단다. 이 말에 온천 증기로 찐 계란을 오물거리다 멈칫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니 경건해진다. 이 탓에 운젠 지역 곳곳은 가톨릭 성지로 거듭났고, 성지 순례를 위해 부러 찾는 관광객도 많다. 
 
후쿠다야 료칸의 노천온천은 매일 남탕과 여탕이 뒤바뀌니 주의하도록
후쿠다야 료칸 가이세키 중 전채요리
후쿠다야 료칸 가이세키의 창의적인 플레이팅. 드라이아이스 새어 나오는 뚜껑을 열면 방어, 참다랑어, 갑오징어의 모둠회가 딱!
 
맛과 술과 별에 취하는 밤 

운젠 지옥이 있는 운젠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후쿠다야 료칸은 위치, 시설, 가이세키 요리 모든 면에서 최상이다. 사진관으로 시작해 료칸이 됐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지난 2월 신관까지 문을 열었다. 한국인 스태프가 있다는 것 역시 강점이다.
 
지하와 1층에 나란히 지하 용출수가 샘솟는 노천온천이 있고 각 층의 코너 스위트급의 방에는 개인 노천 욕조가 있어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서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가이세키 요리가 특히 감동적이다. 고래 베이컨, 고래 혀, 고래 소장 훈제를 새콤달콤한 폰즈 소스에 찍어 먹는 것으로 시작된 코스는 도토리 소바면, 각종 모둠회, 가다랑어 젓갈에 절인 문어 돌 구이, 운젠의 약물로 만든 젤리로 이어졌다. 젤리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나가사키 와규 샤부샤부, 도미 머리로 국물 낸 맑은 국,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코스다. 술이 음식을, 음식이 술을 서로 부르고 답한다.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이 내 혀를 놀이터 삼아 노니는 듯하다.
 
시간은 아홉시. 뭔가 아쉬운 일행은 유카타 위에 패딩을 덧입고 별이 쏟아지는 산 능선의 한적한 도로를 걸었다. 마을 외딴곳의 이자카야로 가는 길이다. 공기도 맑고 인공 빛이 없어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청명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느라 고개를 젖히고 걷는다. 별을 아는 사람은 북두칠성, 오리온 등 정확한 이름으로 별들을 불렀고, 별 모르는 나는 외마디 감탄사로 별들에게 찬사를 건넸다. 그렇게 걷길 10분, 할머니 홀로 운영하는 이자카야에 들어가 맥주와 짬뽕 사라 우동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후쿠다야 료칸(Unzen Fukudaya Ryokan)
주소: Obama-cho Unzen 380-2, Obamacho Unzen, Unzen, Nagasaki 
전화: +81 957 73 2151
홈페이지: www.fukudaya.co.jp

●시마바라의 오래된 이야기들
 
 
 
하나, 시마바라성 역시 운젠 지옥으로 몰려드는 성지 순례 관광객이 찾는 필수 코스다. 시마바라성은 에도 시대의 번주가 깊고 넓은 해자를 둘러치고 견고하게 세운 성으로 성 내부에는 키리스탄크리스천 역사 자료관이 있다. ‘아마쿠사 시바바라의 난’ 당시의 이야기들을 주로 갈무리했다. 1637년 일어난 이 난은 봉기를 일으킨 수많은 농민들이 크리스천이었던 탓에 종교운동으로 변색됐지만 본질은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농민운동이었다. 자료관 곳곳에선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그림과 자료들이 가득하다. 박해를 피해 불교의 관음상과 비슷한 형태로 만든 다채로운 마리아 관음상이 인상적이다. 
 
 
둘, 시마바라성의 해자를 건너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체국 조금 못 미쳐서 빵 굽는 냄새가 오래된 골목 사이사이로 진동하면 제대로 찾은 것. 그곳에 400년 동안 10대에 걸쳐 카스텔라를 만든 ‘마쓰이시니세’가 있다. 나가사키항을 개항하고 스페인을 통해 전파된 카스텔라가 4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진화한 셈이다. 이쯤 되면 수행의 수준이다. 이 집 3대조 어르신은 노른자 5, 흰자 3의 비율로 배합해 굽는 고산야키(5:3 굽기) 기법을 고안했다. 이후로 끊임없이 발전해 온 카스텔라의 맛은 깊고 진하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건 카스텔라가 아니었는지도. 

마쓰이시니세 카스테라  
주소: 1932 Edocho, Shimabara, Nagasaki  
전화: +81 957 62 4773  
홈페이지: www.fmc.jp/matsui
 
 
셋, 시마바라시에는 오래된 철물점이 하나 있다. 이름은 이노하라카나모노텐. 1877년 칼 만들던 곳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귀한 집이다. 칼은 브랜드로 성장해 판매되기 시작한 지 오래고, 바로 곁에 하야에가와(速魚川)라는 이름의 카페와 갤러리도 함께 운영한다. 오래된 만큼 시마바라시의 등록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칼을 비롯해 날카롭고 거친 물건들만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말 것!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부터 1950년대의 주방 도구, 다기, 마을 인근의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 예쁜 빗자루 등 갖고 싶은 것들이 넘치고 또 넘친다.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에디터 트래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중구 무교로 16, 5층 (주)여행신문
  • 대표전화 : 02-757-8980
  • 팩스 : 02-757-89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렬
  • 법인명 : (주)여행신문
  • 제호 : 트래비 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 라 00311(2009-10-13)
  • 발행일 : 2005-05-30
  • 발행인 : 한정훈
  • 편집인 : 김기남
  • 트래비 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트래비 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ktt@traveltime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