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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텍사스 여행의 시작

  • Editor. 김진
  • 입력 2017.12.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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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하면 누런 흙먼지를 내뿜는 마차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마초들, 
거대한 텍사스 스테이크,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까지. 거칠고 남성적인 것들만 떠오른다. 
그렇지만 여행의 매력은 역시 반전에 있다. 실제로 만난 텍사스는 아기자기한 감성마저 충만하고, 
인간미가 넘쳤으며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낭만 여행지였다. 
 
펄 지구의 상점 벽에 초록 담쟁이가 그림을 그려 놓았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는 남한 면적의 7배에 달한다. 주도는 오스틴(Austin)이고, 주요 도시로는 휴스턴, 댈러스, 포트워스, 오스틴, 샌안토니오가 있다. 텍사스 주기의 별칭은 ‘론스타(Lone Star)’다. 하나로 뭉친 텍사스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목축업이 발달했으나 최근에는 우주 개발이나 석유화학, 철강 같은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텍사스와 서울의 시차는 15시간(서머타임시 14시간)이다.

●San Antonio 샌안토니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샌안토니오에서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주민의 70%는 히스패닉(Hispanic)이고 흑인 인구가 적으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남미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서 생활하고 있다. 유럽, 멕시코와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지구 어딜 가든 어깨가 부딪히던 중국인과 일본인도 거의 없어 진짜 이방인이 됐다. 이런 낯선 도시로 나를 이끈 것은 푸른 초원의 ‘미션(Mission)’과 낭만적인 ‘리버워크(River Walk)’다. 거친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텍사스에서 보드라운 낭만을 찾고 싶었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영향을 받은 샌안토니오의 이국적인 건물
알라모 요새
18세기 복장의 여성이 알라모에서 퀼트를 하며 당시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다
알라모 전투의 민간인 대원으로 변신한 연기자
 
샌안토니오 여행의 시작

‘Remember the Alamo!’ 샌안토니오에서는 이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나 기념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라모를 기억해 달라고? 허츠와 경쟁하는 렌터카 업체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의미가 궁금해졌다. 해답은 샌안토니오 여행의 시작인 알라모(Alamo)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알라모는 샌안토니오에 있는 다섯 개의 ‘미션(Mission)’ 중 하나로 미국 역사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중요한 명소이자 ‘요새(fort)’다. 미션을 그저 오래된 종교시설로 생각해 예쁜 성당이나 교회 정도로 이해하면 오산이다. 이곳의 역사를 알아야 알라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에는 1700년대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21년, 멕시코혁명이 일어나고 줄곧 멕시코령 아래 있었다. 멕시코 공화국은 텍사스 지역을 개척할 목적으로 미국인의 이주를 받아들였지만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결국 이민정책을 철폐했다.

이후 멕시코와 텍사스 지역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고 텍사스 주민들은 멕시코 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국의 주로 받아 달라고 미 대륙회의에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본래 자기네 땅이었으니 멕시코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침내 멕시코는 텍사스 주민을 제압하기 위해 병력 6,000명을 파견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출신 텍사스 거주자들로 꾸려진 민간인 부대는 고작 180여 명. 13일 동안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 전투가 그 유명한 1836년의 ‘알라모 전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845년 텍사스주는 미국으로 편입되었고 지금의 텍사스가 완성됐다. 알라모 전투는 아직까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자유를 향한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보리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알라모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달리 지금은 무척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이제는 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된 전투의 배경지로,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지가 되었다. 마침 알라모 전쟁을 재현하는 ‘대포 축제(Cannon Fest)’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의 치열함은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역시 축제는 즐거운 법. 내 카메라에도 옛날 복장을 입고 뜨개질 하는 아주머니의 온화한 미소만이 담겼다. 
 
 
산호세의 성당 외벽은 300년 전 스페인 가톨릭 양식으로 조각되었다
산호세 성곽 주변으로 실제 거주했던 작은 방들이 이어져 있다
산호세 성당 입구
산호세 성당에서는 지금도 미사가 진행된다
 
 
구름만이 흘러 간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 풍경을 찍고 있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도 않는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봐 달라는 듯 손을 흔들고 포즈를 취한다. 깔깔깔 웃는 모습에 나까지 즐거워졌다. 이것도 인연인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이 스무 명 남짓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40번 버스를 타고 함께 산호세를 구경했다.

동양인이 드문 샌안토니오에서 심지어 혼자 다니는 동양인 여자가 신기했는지 아니면 안쓰러웠는지 “어디서 왔니? 직업이 뭐니?”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이가 반 이상 빠진 할아버지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이번 여행 중 한 장만 남아 있는 내 독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40년간 찍은 내 사진 중 가장 다리가 짧고 머리가 크게 나온 굴욕 샷으로 포토샵 보정마저 불가능한 기괴한 비율의 사진은 처치불능이지만 즐거웠던 이날이 떠올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전 세계에 산호세라는 이름의 장소는 많지만, 내 인생 최초로 찾은 산호세는 미션 산호세(Mission San Jose)다. 다섯 개의 미션 중 규모가 가장 큰 산호세는 초록의 전원 풍경으로 지금은 텅텅 빈 유적지지만, 사람들이 살았던 옛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천천히 그림을 채우듯 하나씩 둘러봤다. 몇 걸음 옮기자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이 보였다.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잠시 들어갔는데 맨 뒷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중심으로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단지 흘러가는 구름만이 깨어 있는 것처럼. 
 

▶샌안토니오의 미션

미션은 1700년대 스페인이 텍사스 원주민들을 가톨릭 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해 지은 대규모 마을 공동체다. 북미에 있는 미션 중 가장 규모가 큰 곳 모두 샌안토니오 지역에 있다. 미션 콘셉시온(Mission Concepcion), 미션 산호세(Mission San Jose), 미션 산후안(Mission San Juan), 미션 에스파다(Mission Espada), 그리고 알라모(Alamo)로 줄여 말하는 미션 샌안토니오 발레로(Mission San Antonio de Valero)다. 미션은 텍사스의 라티노, 원주민, 스페인의 문화가 결합된 곳이라 미국의 본질인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텍사스의 상징적인 역사와 유산이 인정되어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샌안토니오의 미션 여행 정보는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도시 전반에 관한 정보는 샌안토니오 관광안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 heritage.unesco.or.kr, 샌안토니오 여행정보 www.visitsanantonio.com
 
리버크루즈는 샌안토니오의 풍경을 낭만적으로 만든다
리버워크 산책로를 잇는 다리
 

샌안토니오 속 베네치아

이탈리아에 베네치아가 있다면 텍사스에는 샌안토니오 리버워크(River Walk)가 있다. 샌안토니오강은 넓어서 유람선도 다니고, 강 양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아열대 나무들은 싱그러움을 더한다. 리버워크를 보고 있으면 샌안토니오가 공업도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다. 그만큼 낭만적이다.
이곳에 왔다면 리버크루즈는 꼭 타 봐야 한다. 작은 유람선으로 강을 한 바퀴 도는 40분 가량의 투어가 있다. 선장은 사연이 있는 건물이나 다리를 지날 때면 잠시 멈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옆에 앉은 멕시코 노부부는 주름진 손을 포개고 연한 미소 지으며 크루즈를 즐기고 있었다. 

크루즈 투어를 마치고 리버워크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골든리트리버 ‘샘(Sam)’을 만났다. 애견인으로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견주와 몇 마디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돼 버렸다. 이 미국인은 “지금 한국에서 밥은 누가 주는데요?”라며 내 강아지를 걱정해 주는데 전 세계 견주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 샘은 내가 반가웠는지 카메라 렌즈에 잔뜩 침을 발라 놓았다.   
리버워크에서는 출출할 걱정이 없다. 이곳에 널리고 널린 것이 레스토랑이다. 특히 텍스-멕스(Tex-Mex), 멕시코와 텍사스 음식이 결합된 형태 음식과 데킬라 칵테일을 추천한다. 아니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을 흐뭇하게 봐도 좋다. 강변에 늘어선 상점에 들어가 구경하거나 지나가는 크루즈를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리버워크를 즐기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마음껏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 
 
펄 지구 상점가는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맥주공장이었던 펄 지구에서 마시는 황금빛 맥주는 맛과 향이 훌륭하다
 
아기자기한 세련미에 빠지다

마초 이미지가 강해 보였던 텍사스에서 펄 지구(The Pearl District)는 완전 다른 지역 같았다. 패셔너블하게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색색의 과일로 장식한 타르트와 커피를 즐긴다. 한 모금이면 끝날 법한 양의 수제맥주를 와인처럼 음미한다. 이런 펄 지구는 샌안토니오에서 가장 세련된 스폿이다.
 
100년이 넘은 맥주공장과 호텔 등이 자리한 상점가는 시간의 멋을 간직한 채 21세기 문화를 덧입었다. 아기자기한 핸드메이드 공방, 카페, 레스토랑, 펍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맥주 공장이 있던 지역이니 맥주를 안 마시고 지나치면 큰일. 이곳에서 으뜸이라는 수제맥주 집에 들렀다. 맥주마다 궁합이 좋은 안주가 있는 모양이다. 프레즐과 굴, 황금빛의 라거(lager)를 시켰다. 한 알에 2,000원 꼴인 굴은 껍데기 속에 풍미가 응축돼 있어 입 속에 넣으면 바다의 향기가 퍼진다. 맥주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런 맛있는 경험을 친구와 나눴더니 그녀의 웃긴 답변이 돌아왔다. ‘비싸서’ 그렇단다.

펄의 토요일은 주말 벼룩시장 때문에 언제나 들썩인다. 버스킹은 흥겹고, 피크닉을 나온 가족의 웃음은 끊이질 않는다. 함께 나온 강아지들도 아는지 발걸음이 무척 빠르다. 밤새도록 와인과 맥주의 향기가 지역 전체를 감싼다. 펄에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문득 ‘여기가 텍사스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펄은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이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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