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우주여행] 칭다오에 가고 싶어
[김서령의 우주여행] 칭다오에 가고 싶어
  • 김서령
  • 승인 2017.12.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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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까운 데로 가서 사나흘만 있다 왔음 좋겠어.” 내 말에 H가 곰곰 생각하더니 “칭다오!”를 외쳤다. 그래, 칭다오.
 
그곳에 다녀온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때도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친구 넷이서 비행기를 타고 홀홀 날아간 칭다오에서 우리는 사흘 동안 먹기만 했다. “우리가 이렇게 먹어 치우는데도 칭다오의 식량이 바닥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야.” 그냥 농담이 아닐 만큼 우리는 진짜 열심히 먹어댔다. 양꼬치를 한 사람당 열 개 넘게씩 먹고도 국수그릇을 비웠고 조개구이와 로브스터를 먹었다. 훠궈 집에 들러선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오리 내장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손에서는 칭다오 맥주가 떠나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차를 한 대 빌리고 연변 출신 청년에게 가이드를 맡겼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차창 밖 풍경에 대해 쉼 없이 설명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차 안에 앉기만 하면 고개를 떨구며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연변 청년에게 “그렇게 애쓰지 마세요. 우린 사실 맛집에만 데려다 주면 되지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거든요.” 그렇게 말해 주었고 그제서야 청년도 입을 다물었다. “자, 여기 내려서 사진도 좀 찍으시고 바람도 쐬셔야죠.” 말해 보았자 우리는 끄응, 몸을 뒤척이며 “창문으로 다 봤어요. 그냥 가요.” 그럴 뿐이었으니 청년 입장에서도 보람 없는 일이었을 테다. 
 
호텔을 예약했지만 호텔에서 자지도 않았다. 칭다오의 찜질방은 너무나 훌륭해서 우리는 찜질방 바닥에서 마구 뒹굴다가 눈을 뜨면 칭다오 맥주를 마셨고 다시 잠들었다 깨서 마사지를 받았다. 일정이 짧았으므로 1일 2마사지를 애초에 계획한 여행이었다. 
 
“나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나도. 이렇게 인생 탕진하면서 살고 싶어.”
 
연변 청년이 밤에 데려다 준 술집에서 먹태와 고량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고심했다. 우리의 수다에 연변 청년도 끼어들었다. “저는 한국 가고 싶어 죽겠는데. 홍대 한 번 가 보는 게 소원이에요.” “오면 누나들한테 꼭 연락해! 누나들이 홍대 클럽에도 데리고 갈게!” 그의 소원은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아이돌 그룹 멤버 못지않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위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천만원의 보증금이 필요하단다. 그는 여태 한국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연변 출신 아주머니들이 연 술집들로 거리가 빼곡한 동네였다. 집집마다 한글 간판이어서 여기가 청계산 앞 막걸리 골목인지 역삼역 뒷골목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연변 이모들은 인심도 좋아서 서비스 안주를 척척 내주었다. 
 
그 기억이 하도 따사로워 나는 H에게 칭다오 여정을 계속 졸랐고 성질이 나만큼이나 급한 H도 곧바로 비행기표 두 장을 예약했다. 그리고 중국행 비자를 위해 H의 손에 내 여권과 사진 한 장, 그리고 명함을 쥐여 보냈다. H는 여행사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너 중국 못 가.” 왜? 화들짝 놀란 내게 H가 짜증을 냈다. “네 여권, 벌써 1년 전에 만료됐거든요!” 정말이지 나는 입을 짝 벌리고 말았다. 나만큼 역마살 단단히 낀 여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두 살 생일을 지내는 동안 나는 여권이 만료된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내 마지막 여행이, 신혼여행이었다고? 
 
뭉개진 칭다오 여행 대신 H와 나는 그날 밤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쓸쓸해. 허무하고. 내 인생 왜 이렇게 된 거야?” 그날 H는 내 하소연을 들어 주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는 잠든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얌마, 너 빨리 커. 엄마 놀러 다니게.” 역마살을 겨우겨우 눌러 앉힌 초보 아기엄마의 술주정이었다. 
 
소설가 김서령
아기는 너무 이르게 자란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은 내가 좀 참아 주겠다. 참았다가 다 자란 너와 함께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닐 테니, 아기는 천천히 자라서 내 눈에 콕 박혔으면 좋겠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작은 아기 천사로 내내 내 눈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시시한 엄마로 살고 있다.      www.facebook.com/titatita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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