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템포 느린 시간을 걸어서, 울산
한 템포 느린 시간을 걸어서, 울산
  • 이고은
  • 승인 2018.05.04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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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바람, 시간이 흐르는 
길목에 울산이 있었다.  
잠깐 쉬어 가려고 들렀다. 
 
태화강 십리대숲. 대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의 따스함이 정점에 이르렀던 순간 
 
●울산을 너무 모르고
 
감청색 새벽 공기를 벗 삼아 기차 타고 울산으로 떠나는 길. 몽몽한 정신으로 처음 향하는 목적지에 대해 상상부터 시작했다. 어떤 분위기일까, 어떤 음식이 맛있을까, 어떤 음악이 어울리는 곳일까 등등. 어차피 기승전’고래’가 아니겠냐는 지인의 짓궂은 농담이 그 상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문제는 고래가 아니었다. 울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리도 없었단 말인가?  
 
궁리 끝에 떠올린 것은 청색의 바다와 회색의 공장들. 어느 부둣가에 선 채 차가운 바람과 싸우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괜히 입고 있던 겉옷부터 굳세게 여몄다. 뭐, 다녀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울산은 내가 생각한 그런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시대 만회 박취문이 교우를 위해 세운 정자, 만회정. 그 후 소실된 정자를 2011년 울산광역시가 새롭게 십리대숲에 중건했다
울산 12경의 하나, 태화강 십리대숲. 숲의 음향에 감탄해 여러 번 올려다본 하늘
 
●대나무 이파리 나빌레라
 
여행은 숲에서 시작됐다. 사방이 초록초록한 그때의 정경이 강하게 각인된 까닭에 지금도 기억을 더듬으면 잔상이 풀빛으로 스사삭 물들어 버리고 만다. 몇 가지 장면이 진하게 찍힌 스탬프 문양처럼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이파리와 나무 숨결을 따라 움직이던 석양볕, 그리고 하늘과 강의 경계를 둥둥 떠다니던 물별들. 모두 태화강 십리대숲에서 남긴 추억이다.
 
 
일몰 즈음 훈훈한 갈색으로 마음도 따뜻하게, 태화강대공원
 
 
울산 생태공원인 태화강대공원 안에 자리한 대나무 군락지를 태화강 십리대숲이라 부른다. 산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나무가 강 길을 따라 무려 십 리(4km)에 걸쳐 이어져 있는 풍경을 보았다. 과연 엊그제 꿈결에 본 그 장소가 여기지 싶다.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길이 아찔해 보일 만큼 양쪽에 대나무가 빼곡했다. 공원 입구에 설치된 야외 스피커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온리 유Only You’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숲을 걷기에 좋은 템포다. 
 
“어때요, 벌써 풍부한 음이온이 느껴지죠?” 일찍이 그 기운을 흠뻑 받은 듯한 관광해설사의 말이 활기차다. 덩달아 신이 났다. 팔 벌려 숨부터 크게 들이쉬었다. 아직은 쌀쌀한 계절, 울산은 그 계절을 거슬러 늦가을의 날씨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 중인 사람과 정자에 앉아 태양을 쬐는 사람, 손잡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세고 있는 연인들. 이 숲이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풍경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바람이 숲을 통과하면서 탄산스파 같은 청량한 음을 냈다. 소리가 귀로 들어와 잡념을 소독하니, 자연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이 따로 없다. 고려시대 중기, 약 900년 전 문장가 김극기는 태화강 자연의 정서를 시로 남겼다. 그는 샘솟는 강물에 감탄하며 바람소리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샘에서 물은 퐁퐁 솟고 숲을 지키듯 바위벽이 섰네. 
난간에 들어오는 햇빛은 적으나 누에 들어오는 솔바람소리는 많구나.
이렇게 산중의 낙을 실컷 즐기니 누가 다른 것을 물어 무엇하리오.
김극기 <태화루> 中
 
때마침 흔들리는 이파리 사이로 백색의 석양과 태화강의 무수한 물별이 보였다. 그의 말은 옳았다.
 
*ASMR│심리적인 힐링을 유도하는 영상. 바람소리, 작은 속삭임 등을 포함한다.
 
태화강 십리대숲
주소: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107
오픈: 연중무휴
홈페이지: www.ulsan.go.kr/taehwagang
전화: 052 229 6141~5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 보이는 울산대교
 
●빛을 품은 시간은 느리다
 
해 질 녘의 울산은 색감이 신비했다. 고개를 들면 바다향이 나고 위아래로 동시에 푸르게 물들어 가는 세상이 제법 볼거리였다. 울산대교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은 밤빛으로 한창 푸르러지던 바로 그 즈음이었다. 
 
날씨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망대에 오른 그날은 보기 좋게 익은 석양을 기대한 마음이 무색하게도, 저녁부터 몰아치는 바닷바람과 먹구름으로 4층 야외 전망이 곤란한 상황이었다. 3층 실내 전망대부터 올랐다. 날씨 악운에 내심 낙담해 볼은 이미 살짝 부어 있는 상태로. 그런데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른쪽으로 360도 파노라마 뷰가 펼쳐졌다. 사방이 파랗다. 매정한 바닷바람의 위력이 안에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조선산업단지, 태화강, 울산항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울산대교 전망대 
 
화정산 정상에 자리한 전망대답게 울산의 시가지가 동양화 병풍처럼 크고 시원하게 이어졌다. 산업단지 오른쪽으로는 울산대교가 보인다. 불필요한 요소를 탈탈 털어 내고 꼭 있어야 할 선만 정확히 남긴 듯한 다리의 담백한 형상이, 그 뒤로 겹겹이 솟아 있는 산들과 야무지게 닮아 있다. 자동차와 조선산업단지를 조망할 수 있는 구간에서는 조금 긴 시간 뜸을 들였다. 온갖 자동차와 선박, 산업시설이 멈춰 있는 것이 흡사 푸른 액자에 박제된 모습 같다. 가만히 응시하자, 멈춘 줄 알았던 풍경의 흐름이 그제야 보였다. 구름이 움직이고 배가 움직인다. 마땅히 시간도 흘렀고 바다도 흘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 있죠? 그중 하나가 이 지역 풍경이에요.” 그렇지만 고대한 밤은 생각보다 느리게 찾아왔다. 선박에서부터 하나 둘씩 빛이 들어왔지만 좀처럼 짠하고 야경이 펼쳐지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울산의 파란 저녁과 검은 밤 사이만 길게 누렸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따뜻한 것이 고팠다. 음, 뜨거운 카페라테가 좋을 것 같다. 
 
울산대교 전망대
주소: 울산광역시 동구 봉수로 155-1(화정산 정상)
오픈: 09:00~21:00(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휴무)
홈페이지: tour.ulsan.go.kr
전화: 052 209 3345/ 3367
입장료: 무료
 
탁 트인 대왕암공원. 바다와 기암의 경관을 조화롭게 이어 주는 순백의 대왕교
사색하기 좋은 해안 둘레길 
 
 
●이 길의 끝에 바다가 있다
 
대왕암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공원에는 대왕암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두 가지의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송림을 관통해 해안 산책로를 둘러서 걸어가는 길, 다른 하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대왕암까지 직행할 수 있는 길.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투박한 숲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멀찍이 길 끝으로 회청색 바다 빛이 보였다. 나는 송림 길을 택했다.
 
햇살은 부족해도 바람은 잔잔했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가까울 줄 알았던 동해는 어째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정경이 좋은 곳이면 멈춰 서기도 하고, 어느 듬직한 해송 아래에서는 식후 간식으로 챙겨 온 장생포 고래 빵을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 흐느적흐느적 걷는 사이 대왕암에 다다랐다. 통일신라시대 문무대왕이 죽어서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장소다. 칼로 벅벅 그은 듯한 형상의 기암들이 시야 가득 들어섰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어 보이는 게 없다. 
 
대왕교를 지나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 작은 성취감이 느껴진다. 심호흡으로 바다를 들이마시니 갈증이 말끔히 해소됐다. 누군가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바다를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고, 또 누군가는 대왕암이 보이지 않는다고 연인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다. 각도와 포즈를 정해 주며 아내의 사진을 찍어 주는 할아버지도 눈에 들어온다. 반딧불이처럼 주변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이다. 문득 이 바다에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내 여행의 마지막은 항상 이런 식이다. 
 
대왕암공원
주소: 울산 동구 일산동 산 907
전화: 052 209 3738  
홈페이지: daewangam.donggu.ulsan.kr
 
▶TRAVEL  INFO 울산
 
TRANSPORTATION
서울역-울산역 KTX 노선이 매일 상시 운영되고 있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20분 정도. 
 
HOTEL
롯데시티 호텔 울산(LOTTE CITY HOTELS ULSAN)
2015년 6월에 오픈한 비즈니스 호텔이다. 공항 및 버스터미널과의 접근성이 좋다. 걸어서 5~10분 정도 나가면 쇼핑 타운이 펼쳐지는 번화가가 있어 저녁에도 심심하지 않다.  
주소: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로 204  
전화: 052 990 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city/ulsan
 
FOOD
참가자미 미역국
회보다 더 맛있는 미역국을 먹었다. 울산 참가자미가 우러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국물이며 미역 건더기며, 밥 한 공기를 싹싹 긁어 먹고 왔다. 울산 하면 참가자미라더니 그 말이 참말이었다. 
울산 현대횟집  
주소: 울산 동구 주전해안길 110  
전화: 052 252 8111  
가격: 참가자미 미역국(1인분) 1만5,000원
 
글·사진 Traviest 이고은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울산관광 tour.ul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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