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의 프랑스에서
그 가을의 프랑스에서
  • 강화송
  • 승인 2018.11.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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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
A Modern Journey through an old land

가을이라고, 마다할까

첫날이었다. 모호한 낮밤의 경계와 엉망이 되어 버린 시차. 가을철 프랑스의 태양은 어찌나 또 게으르던지. 밤 9시, 그림자가 거리에 드러누울 때쯤 루아얄 광장(Place Royale)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이 밤, 홀로 무얼 할까. 마음속에 동여맬 수 있는, 그럴싸한 계획이 필요했다. 한 잔 가득 낭트를 담아 마시기로 하곤 와인에 입술을 적셨다. 보랏빛 스멀스멀 물들어 갈 때 엉금엉금 창가로 향해, 어슴푸레 찾아온 낭트의 새벽을 방 안으로 들였다. 가을이라고, 제법 쌀쌀맞더라. 하루 고단을 침대 맡에 놓아두곤 이불 속에 숨어들었다. 그 가을의 프랑스에서 나눈 꿈같은 이야기다.

그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올 때
그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올 때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4개의 도시, 낭트(Nantes), 생 나제르(Saint Nazaire), 렌(Rennes), 생 말로(Saint Malo). 그리고 몽생미셸까지. 그들의 역사 유적과 더불어 예술, 미식, 현대를 하나로 모았다. 프랑스를 유랑하며 돌아본 서부 여행코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A  Modern Journey through an Old Land)’은 대서양에서부터 영불해협까지, 대지와 육지 사이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물과 추억을 여행자들에게 선물한다.
홈페이지: www.voyage-en-bretagne.com

그림자가 눕고, 온 세상이 주황빛으로 가득 찬다
그림자가 눕고, 온 세상이 주황빛으로 가득 찬다

●Nantes

낭트섬의 기계들

터벅터벅, 낭트거리를 걷다가 코끼리 한 마리가 끼얹은 찬물에 정신이 ‘확’ 들었다. ‘레 마쉰 드 일드 낭트(Les Machines de I’lle de Nantes), 낭트섬의 기계들’에 다다랐을 때다. 19세기, 낭트는 조선업으로 이름을 떨치던 도시다. 사실 영원한 번영이 어디 있겠는가. ‘대박’과 ‘폭망’은 언제나 같이 가는 법. 조선 산업이 급속도로 쇠퇴하며 낭트에 남긴 것은 문을 닫은 폐공장과 방치된 부속품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바나나 창고뿐이었다. 영원한 흉터로 남아 낭트를 괴롭힐 것만 같던 이 공간들은 현재 기계 코끼리가 활보하는 예술지대로 변모했다. 사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남겨진 것들을 재활용해 꽃피워 냈을 뿐. 물론 사람의 손으로. 

낭트의 늦은 오후, 맥주를 기다리는 노신사
낭트의 늦은 오후, 맥주를 기다리는 노신사

낭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그룹 ‘로얄 드 뤽스(Royal de Luxe)’는 공장에 방치되어 있던 부속품들을 이용해 거대한 기계 코끼리를 만들어 냈다. 낭트가 위대한 SF소설가 ‘쥘 베른’의 고향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상상력의 집약체인 셈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코끼리가 도심 한가운데를 활보하며 소리치는데, 뭐랄까. 단순히 동심을 느끼기엔 너무 거대한 상상력에 경외감이 들었다.

만화 <인어공주>에서나 볼 법한 회전목마도 압권이다. 오징어, 해마, 새우 등 바다 생물이 빙글빙글 잘도 돌아간다. 삭막했던 공장 지대에서는 거리마다 전시가 한창이다. K-pop에 맞춰 군무를 펼치는 이들, 자전거 묘기를 부려대는 이들, 축구공으로 예술을 그리는 이들까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영감이 솟는다. 괜스레 카메라를 거꾸로 쥐어 봤다. 그래도 박수쳐 줄 것 같은 마음에. 낭트는 그런 곳이다.

레 마쉰 드 일 드 낭트
Les Machines de I’lle de Nantes
주소: Parc des Chantiers, Bd Leon Bureau, 44200 Nantes
전화: +33 2 51 17 49 89 
홈페이지: www.lesmachines-nantes.fr

사람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사람
사람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사람

브르타뉴, 그리고 낭트

이른 아침, 탈랑삭 마켓(Talensac Market)으로 향했다. 누런 종이봉투에 납작 복숭아를 바스락거리며 담아내고, 빼꼼 솟은 바게트를 살포시 눌러 정리하는 일, 시디신 베리를 나눠주며 음흉한 미소 짓거나, 뜨거운 크레페를 맨 손으로 받아 들곤 화들짝 놀라는 일. 갓 구운 크루아상 결처럼 따끈한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 가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아침이었다. 낭트에서 유일한, 그리고 가장 오래된 실내 시장인 탈랑삭 마켓은 1937년에 문을 열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채소에선 땅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해산물은 아직 바다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물론 과일이야 근처 과수원에서 직접 따 오기 때문에 두말하면 잔소리. 전부 신선하다. 덥수룩한 수염 아저씨가 몽둥이 같은 가지를 두 손으로 휘두르더니 ‘오가닉(organic)’이란다. 아마 몽둥이 든 헤라클레스가 저런 모습이었겠지. 채소만큼 상인들도 전부 ‘오가닉’ 하니 미소 지을 수밖에. 

탈랑삭 마켓, 멋스러운 그녀는 종이봉투 가득 자두를 담았다
탈랑삭 마켓, 멋스러운 그녀는 종이봉투 가득 자두를 담았다

좀 더 걷기로 한다. 시장에서 구입한 자두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15세기부터 400여 년에 걸쳐 완공된 생 피에르 & 생 폴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St. Paul)에서, 13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브르타뉴 공작 성(Castle of the Dukes of Brittany)까지. 낭트에 서린 브르타뉴의 역사 속을 담담히 거닐었다. 과거 낭트는 ‘브르타뉴 공국’이라는 독자적인 국가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488년, 당시 브르타뉴의 공작이었던 프랑수아 2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브르타뉴 공국은 공작의 딸이었던, ‘안 드 브르타뉴(Anne de Bretagne)’에게 자연스럽게 상속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11세. 어린 나이에 브르타뉴의 대공이 되었다는 것은, 곧 파벌들이 지배권을 놓고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전조였다. ‘안’은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샤를 8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이 정략결혼의 결과로 프랑스 왕인 샤를 8세는 브르타뉴의 공작 작위를 동시에 얻게 된다.

얼마 안 가 불의의 사고로 샤를 8세가 사망하자 뒤이어 프랑스 왕위에 오른 루이 12세와도 연달아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공국의 운명을 위해. 그녀는 살아생전 프랑스 왕권으로부터 브르타뉴가 종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게 힘썼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삶도, 브르타뉴 공국도. ‘안’은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깊은 잠에 들었다. 그로써 브르타뉴 공국은 프랑스에 완전히 종속되게 된다. 

브르타뉴 공작 성
브르타뉴 공작 성

브르타뉴 공작 성의 입구, ‘안’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청동색 동상의 형태로. 현재 낭트는 브르타뉴주가 아닌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주로 분류되어 있다. 덕분에 뿌리를 그리워하는 낭트 시민들은 지금까지 ‘브르타뉴주에 포함시켜 달라’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단다.

탈랑삭 마켓 Talensac Market
주소: Marche de Talensac Rue Talensac 44000 Nantes
전화: +33 2 40 20 59 98 
홈페이지: www.nantes-tourisme.com
오픈: 화~일요일 7:00~13:30(월요일 휴무)

브르타뉴 공작 성
Castle of the Dukes of Brittany
주소: 4 Place Marc Elder, 44000 Nantes
전화: +33 2 72 640 479
홈페이지: www.chateaunantes.fr/fr
오픈: 월~토요일 10:00~18:00, 일요일·공휴일 10:00~17:00(7월1일~8월26일 매일 09:00~19:00)

 

●Saint NazAire

예술이 빗어낸, 생 나제르

낭트에서 렌으로 향하는 길목, 어린 시절 등굣길이 떠올랐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들고 향했던 분식집, 아침부터 땀 뻘뻘 흘리며 공 찼던 운동장, 멋모르고 쏘다녔던 그때 그 시절. 렌까지 가는 동안 눈 돌리는 곳마다 볼거리 천국이니 가는 길이 즐거웠던 등굣길을 떠올릴 수밖에. 루아르강 하구를 따라 렌까지는 예술이 흐른다. 그것도 콸콸콸. 이쯤이면 길목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셈이다.

메종 덩 라 루아르(Maison dans la Loire), 루아르강에 세워진 집
메종 덩 라 루아르(Maison dans la Loire), 루아르강에 세워진 집

음산한 기운을 내뿜으며 루아르 강변에 세워진 집 ‘메종 덩 라 루아르(Maison dans la Loire)’, 현대미술가 황용핑(Huang Yong Ping)이 바다에 띄워 낸 뱀의 뼈대, ‘세르펑 도세앙(Serpent d’ocean)’, 그리고 생 나제르(Saint Nazaire) 공장 벽면에 그려진 삼각형의 연속 ‘쉬트 드 트리앙글(Suite de Triangles)’ 등이 대표적이다. 브리에르(Briere) 습지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가 지역자연공원으로 지정하며 보호하고 있는데 7,000헥타르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배를 타고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은 불과 150km. 사람 손이 닿질 않으니 해마다 풀은 우거지고, 그 들판을 거위와 양이 누빈다. 그 눈부신 풍광에 화룡정점은 찬란한 갈기마다 햇빛이 부서지는 슈발(Cheval), 말이다.

거위와 말이 뛰어노는 브리에르 습지
거위와 말이 뛰어노는 브리에르 습지

 

▼낭트에서 렌까지, 여긴 어때요?
 

라 볼(La Baule)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도시지만 유럽에서는 꽤나 유명한 ‘명품’ 휴양도시다. 여름 바캉스 시즌이면 파리와 베를린, 런던 등 유럽 각지에서 휴가차 이곳을 찾는다. 라 볼은 유럽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바닷물로 즐기는 해수 스파는 라 볼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즐길 거리다.
 
게랑드(Guerande)
게랑드의 소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 덕분에 많은 여행객들이 염전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또한 성곽이 두르고 있는 시가지도 거닐어 보길 바란다. 12세기에 지어져 15세기에 한 번 보수를 거치곤, 지금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브르타뉴에서도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힌다. 필수 쇼핑리스트는 역시, 짜디짠 꽃소금.

●Rennes

이런 과거도 사랑해 주겠니

과거를 들춰보는 재미. 이를테면 하얀 세월이 내려앉은 졸업앨범을 들춰본다든가, 우연히 예전 성적표를 발견했다든가. 생각만 해도 실소가 터져 나온다. 마치 렌을 여행할 때처럼. 


브르타뉴(Bretagne)는 과거 약 600년간 공국의 형태로 프랑스의 북서쪽을 지켜왔다. 물론 현재는 어엿한 프랑스의 한 지역이지만서도, 아직까지 지역민들은 자신을 ‘브르타뉴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이토록 자부심 가득한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도시가 바로 렌(Rennes)이다. 그러니 과거가 넘쳐날 수밖에. 렌에는 브르타뉴에서 가장 많은 목골 가옥이 자리한다. 건물 외벽에 뼈대 형태로 자리 잡은 목재가 버젓이 보이는데 유치원생이 시공했다고 해도 믿겠다. 어찌나 삐뚤빼뚤한지, 모양이 아주 엉망일 뿐더러 저 촌스러운 색은 도대체 무엇. 분명한 건 그럼에도 매혹적이다.

브르타뉴 고등법원 내부, 창문으로 내다봤다
브르타뉴 고등법원 내부, 창문으로 내다봤다

과거, 렌 전체에는 이런 목골 가옥이 빼곡히 자리했지만 화재로 무려 850여 채의 목골 가옥과 33개의 거리가 불타 버렸단다. 1720년 12월, 한바탕 활활 타오른 이후, 렌에는 더 이상 나무집을 짓지 못하게 되었다. 허니, 남은 건물이라도 잘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 아이들이 문을 ‘벌컥’ 열곤 뛰쳐나온다. ‘끼익끼익’ 너덜거리는 문 짝이 애처로워 보일 지경. 하필 방금 전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콕 찍어 무려 600년도 더 된 건물이라며 강조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300살이면 젊은 편에 속하는 목골 가옥에는 전부 사람들이 살고 있단다. 오히려 오래된 나무 건물일수록 임대료가 저렴해 대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인기 만점이다. 왠지 ‘목골 가옥이 살아온 세월에 비해 상태들이 참 젊다’ 했더니. 젊은 피들의 활력을 수급 받고 있었다.  

렌 시청광장 한가운데에는 회전목마가 돌고 있다
렌 시청광장 한가운데에는 회전목마가 돌고 있다

렌의 인구가 20만명인데 그중 약 6만명이 학생이다. 제 아무리 잔잔한 풍경일지라도, 살아 숨 쉬는 것이 전부 활력 넘치니 생기로울 수밖에. 마침 이날은 시장까지 들어서 렌 전체가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 찼다. 17세기부터 매주 토요일, 약 350여 명의 상인들이 모여 리스 시장(Marche des Lices)을 이룬다. 아이에게 사탕 건네는 정육점 아저씨, 생선 궁둥짝을 찰싹이는 할머니, 입 맞추며 발 동동 구르는 댄서들. 흰 옷에 딸기 즙을 질질 흘린 꼬마아이. 소란스러웠고,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시장이 끝나는 골목에는 갈레트(Galette)와 시드르(Cidre)를 판매하고 있다. 브르타뉴가 본고장인 갈레트는 우리나라 메밀전병과 흡사하지만 좀 더 바짝 구워 내 각종 재료를 넣고 식사용으로 즐긴다. 자칫 크레페와 헷갈리곤 하는데 갈레트는 메밀로, 크레페는 밀가루로 만든다. 시드르는 술이라고 하기엔 가볍고, 주스라고 하기엔 강한 사과주다. 소시지의 짭짤한 맛, 갈레트의 구수함, 시드르의 상큼함. 어찌 다들 조용하다 했더니, 먹는 데 정신 팔려 있더라.

 

▶렌, 이렇게 즐겨 보세요
파리에서 렌까지는 테제베(TGV)를 이용할 경우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브르타뉴 의회와 장 누벨(Jean Nouvel), 드 포트잠파크(De Portzamparc) 등 저명 건축가들의 현대 건축물을 돌아보자. 특히 약 100년에 걸쳐 17세기에 완성된 브르타뉴 의회는 브르타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당시 왕실 건축가였던 살로몽 드 브로스(Salomon de Broose)가 설계했고, 내부 장식은 루이 14세의 왕실화가들이 그려 냈다. 안타깝게도 1994년, 화재로 전소가 되었는데 화재가 일어났을 당시 모든 브르타뉴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복원된 것으로, 고등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Mont Saint Michel

바다 위, 기묘한 성 이야기

늦은 밤, 오베르 대주교는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벌써 몇 일째 반복되는 그 꿈 때문이다. 몇 일 전, 그는 어느 때와 같이 폭신한 침대에 머리를 뉘였다. 노곤함이 가시니, 대천사 미카엘이 찾아왔다. 꿈이었다. 당황도 잠시, 미카엘은 오베르 대주교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몽 통브Mont Tombe(몽 생 미셸의 옛 지명)에 기도대를 세우고, 예배당을 지으라.” 잠에서 깬 오베르 대주교는 그저 꿈이겠거니,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세 번째 같은 꿈을 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가 세 번째 꿈을 꾸던 날,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어느 때와 같이 미카엘이 다가와 속삭일 줄 알았건만 대천사는 오베르 대주교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그대로 오베르 대주교의 머리는 미카엘의 손가락에 의해 관통되었다.

노부부 사이로 보이는 몽 생 미셸
노부부 사이로 보이는 몽 생 미셸

생생한 감각에 화들짝 놀란 오베르 대주교는 벌떡 일어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곤 깨달았다. ‘해야 한다.’ 미카엘이 꿈 속에서 지목했던 몽 통브를 찾아 내는 여정은 수월했다. 그가 지목한 곳에만 이슬이 맺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베르 대주교는 큰 바위 위에 기도대를 세웠고, 대천사 미카엘이 강림한 땅인 이탈리아 몬테 가르가노(Monte Gargano)에서 화강암을 공수해 예배당을 건설했다. 그렇게 바다 위, 기묘한 이야기를 지닌 천공의 섬 ‘몽 생 미셸’이 탄생하게 되었단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몽 생 미셸 (Mont Saint Michel)
주소: Mont Saint-Michel Abbey, BP 22, 50170 Le Mont-Saint-Michel
전화: +33 2 33 60 14 30
홈페이지: www.ot-montsaintmichel.com

 

▼몽 생 미셸, 아직도 파리에서 가세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몽 생 미셸을 이렇게 평가했다.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몽 생 미셸이 있다.” 몽 생 미셸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여행지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파리에서 몽 생 미셸로 향하는 일정을 택한다. 무려 서울에서 부산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몽 생 미셸을 가장 알차게 즐기는 방법은 낭트와 렌, 생 말로 등 근처 도시를 같이 방문하는 것이다. 파리에서 낭트역을 연결하는 테제베(TGV)는 하루 22대를 운행하기 때문에 편수도 비교적 여유롭다.

생 말로의 낮, 어둑함과 밝음이 공존한다
생 말로의 낮, 어둑함과 밝음이 공존한다

 

●Saint MALO

말로 할 수가 없어서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니고 생 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단언은 칼 같았고 목소리는 묵직했다. 마침 대서양이 덮고 있던 모래사장이 고개를 빼꼼 내미니 여행객들이 일제히 해변으로 나서서 자리싸움을 시작한다. 해적의 도시, 생 말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생 말로의 전경
하늘에서 내려다 본 생 말로의 전경

생 말로는 조수간만의 차가 아주 심한 편이다. 간조와 만조의 높이 차가 무려 13m나 되니, 방파제를 뚫고 튀어 오르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간조가 되면 모든 이가 바다로 나선다. 대서양이 다시금 뒤덮기 전, 뽀송한 모래사장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다. 바닥에 널린 미역줄기를 휘휘 던지고는, 우선 눕고 보는 식이다. 저 멀리 성벽에서 내려다보면 장관이다. 다들 누워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광합성 하는 바다사자들의 모습 같기도. 


생 말로 시가지는 12세기에 지어진 두터운 성벽 안 쪽에 자리한다. 아니, 포장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있어야 이리도 두텁고 높게 숨길 수 있는지, 깨금발로는 성벽 넘어 뭐가 있을지 상상도 못한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생 말로는 과거 해적의 근거지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이다. 특히 15세기에는 많은 사략해적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해적으로 영불해협을 통과하는 영국 선박에게 통행세를 부과하거나 약탈을 했고 그렇게 얻은 부를 프랑스와 3대 1로 나누었다. 아마 영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생 말로를 지켜 내기 위한 프랑스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 말로는 통나무가 감싸고 있다. 무려 방파제라고
생 말로는 통나무가 감싸고 있다. 무려 방파제라고

생 말로는 무려 4년 동안 독립 공화국이었던 적도 있다. 1589년 앙리 4세가 개신교를 인정하며, 가톨릭이었던 생 말로가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결국 1594년, 앙리 4세가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개종하자 다시금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아직도 생 말로의 국기는 프랑스의 국기보다 높은 곳에서 펄럭이고 있다. 국기마저 생 말로의 정체성을 품은 채 묵직이 펄럭인다.


꽁꽁 쌓여 있는 성벽을 전부 둘러본 탓에 오후에나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테이프로 덕지덕지 감겨 있는 택배박스를 뜯어 냈을 때의 쾌감이랄까. 내부는 영락없는 중세시대였다. 짙은 회갈색 건물의 연속, 활기차고 깔끔했다. 생 말로는 1944년 8월,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성 안쪽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다. 지금의 생 말로는 종전 이후 재건된 모습인 셈이다. 그야말로 투박함이 매력이다. 그러니 투박하게 여행하면 된다. 대충 숭덩숭덩 매력 한 움큼씩 덜어 내 기억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 두터운 성벽이 머릿속 기억을 꽁꽁 싸매 줄 테니.  

▶travel  info

AIRLINE 
프랑스, 편하게 가세요, 에어프랑스 Air France

에어프랑스는 인천-파리 직항을 매일 2회(대한항공 공동 운항편 포함)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1~12시간. 파리에서 낭트까지는 1시간 20분이다. 인천-파리 노선에는 한국인 통역원이 탑승해 의사소통이 수월하다. 프랑스의 정취를 좀 더 빠르게 느껴 보려면 프랑스식 메뉴에 에어프랑스에서 제공하는 삼페인을 곁들여 보자.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낭트, 렌까지 환승하며 남는 시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최근 새 단장된 에어프랑스 비즈니스 라운지는 모든 에어프랑스 라운지 중 가장 크며,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따로 확보되어 있다. 현대 파리풍으로 디자인된 식당, 고멧 테이블(Gourmet Table)은 오픈 키친을 갖추고 있으며 2013년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인 파올로 바소(Paolo Basso)가 선택한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삼페인도 함께 제공한다.
www.airfrance.co.kr

©에어프랑스

Hotel
낭트 오세아니아 호텔 드 프랑스 Oceania Hotel de France

낭트의 중심부에 위치한 호텔로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쳐 깔끔하다. 고풍스러운 로비를 지나쳐 입장한 객실은 모던한 인테리어와 2인이 머물기 가장 적합한 사이즈. 총 72개의 객실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낭트 대성당, 브르타뉴 공작 성 등 주요 관광지와도 가깝다.
주소: 24 rue Creillon 44000 Nantes  
전화: +33 02 40 73 57 91
홈페이지: www.oceaniahotels.com

Ⓟ고아라
Ⓟ고아라

 

라 볼 생 크리스토프 호텔 Hotel Saint Christophe
프랑스 영화에서나 보던 대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19세기 대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지나가던 여행객들도 고풍스러운 외관에 기웃거릴 정도. 직원들의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고 서비스도 매우 친절하다. 이른 아침, 푸른 잔디 위 의자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해 보길. 라 볼 해변이 도보로 2분 거리에 위치한다.
주소: 1 Avenue des Alcyons, 44500 La Baule-Escoublac 
전화: +33 2 40 62 40 00
홈페이지: www.st-christophe.com

Ⓟ고아라
Ⓟ고아라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에어프랑스 airfrance.co.kr,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 voyage-en-bretag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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