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지구를 돌아 하늘을 날다
온 지구를 돌아 하늘을 날다
  • 김예지 기자
  • 승인 2019.09.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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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이동진

아마존을 뛰고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자전거로 미국을, 야생마로 몽골을 횡단한 모험가는 하늘이 날고 싶어 파일럿이 됐다.
영화평론가 다음으로 포털에 뜬 ‘이동진’의 직업은 모험가도 파일럿도 아닌 영화제작자다.

모험가 이동진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각자의 우주가 있다. 선택이 길을 만든다. 남들이 원하는 내일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로 살겠다. 그를 처음 알게 된 CBS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들은 말이다. 맞는 얘기지만 그게 어렵지, 자기계발서에서 본 문장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법한 그 모든 지론들을 모험가는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동진을 검색했다.  

88년생.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점수 맞춰서 들어갔죠(웃음).” 모험가 이동진의 첫 도전 대상은 20대 초반의 이동진 자신이었다. 소극적이고 꿈도 목표도 없는 스스로를 절실하게, 바꾸고 싶었다. “군대를 해병대로 지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안팎으로 강해진 그가 히말라야로 가게 된 건 전역 4일 만의 일이다. 대한산악연맹에서 모집한 오지탐사대 단원으로 지원해 5,800m 봉우리에 올랐다. 도미노처럼 도전은 계속됐다. 울진에서 독도까지 240km의 바닷길을 헤엄쳐 갔고, 280km 아마존 정글 마라톤을 완주했으며,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자전거로 6,000km를 횡단했다. 5개월의 무전 세계일주를 하고 몽골에서 야생마로 2,500km 초원을 횡단했다는, 후에 이어진 그의 무용담들은 놀랍지만 이제 놀랍지 않을 정도다. 

2014년 몽골 2,500km 횡단
2014년 몽골 2,500km 횡단

●도전의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


뭔가 대단한 일을 도모하자고 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존이 가고 싶었던 거죠. 만약 동네 뒷산이 목표였다면 뒷산에 갔을 거예요.” 도전 중독인가, 것도 아니란다. “중독보다는 숙련에 가깝다고 봐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큰 그림이 보이더라고요.”


한 줄의 도전 이력에는 수십, 수백 줄의 실패가 깔렸다. 거의 무전 상태로 시작한 미국 자전거 횡단길에서는 현지 숙박으로 대부분의 잠자리를 해결했다. 60일 중 약 47일을 현지 숙박으로 해결한 덕에 여행경비 총 80만원 중 숙식에 든 돈은 30만원에 불과했다. “수없이 거절당했죠. 그래도 생존의 문제였으니까요(웃음). 부딪히고 또 부딪혔더니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성공확률이 커지더라고요.” 몽골만 해도 회생에 가까웠다. 말을 타고 횡단하겠다는 목표로 경비를 마련하고자 4개월간 스폰서를 구하며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이번엔 정말로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몽골에 가기 딱 2주 전, 맘 맞는 동행들을 구했고 떠나기 1주일 전 그중 한 명이 2,000만원 사비를 털어 모험가를 돕겠다고 나섰다.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순간에도 결국은 어디선가 생각지 않은 곳에서 기회가 열렸던 경험들, 그 데이터가 쌓였어요.” 


그가 말하는 숙련은 정량적인 데이터에 기반한다. 이동진 모험가는 ‘도전스쿨’ 4주 과정을 열어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도전자들을 코칭해 왔다. “큰맘을 먹어야 되는 게 아니라, 당장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고 명확해요. 전국의 산을 정복하고 싶으면 내일 산에 가는 버스를 예약하면 되고, 책을 내고 싶으면 출판사에 메일을 쓰면 돼요.” 도전의 노하우들을 전수한 대신 그는 큰 표본을 얻었다. ‘누구나’ 도전을 하고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했다. “멀어서,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못 하면 평생 못할지도 몰라요. 어차피 이래저래 크게 망할 건 없잖아요.” 대단한 용기는 사실 도전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도. 도전의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2010년 히말라야 고도곤도라 5,800m 등반
2010년 히말라야 고도곤도라 5,800m 등반

●모험을 남겨야 할 이유


또 하나 도전의 비법은 입소문이다. 영화제작자 이동진이 산 증거다. “영화를 만든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하고 다닌지 4개월 만에 촬영감독을 구해서 같이 몽골로 갔어요.” 2015년에 완성된 첫 영화 <고삐>는 2014년 8월, 다섯 청년이 야생마를 타고 63일간 몽골을 횡단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말을 탈 줄도, 다룰 줄도 몰랐던 이동진 모험가가 낙마하고 부상당하고 말을 도둑맞으며, 결국엔 고삐를 풀어 헤치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내용이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모험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경험을 확산시키기에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매체라고 믿는다. “아마존에 몇 년간 살면서 겪은, 저보다 훨씬 대단한 에피소드들도 많을 걸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여행도 남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처럼, 모험 또한 기록해서 공유할 때 힘을 발휘한다. 미국 횡단기를 바이크 전문 월간지 <더 바이크>에, 세계일주 경험을 <국방일보>에 연재했고 2014년 책 <당신은 도전자입니까>를 펴냈다. 물론 언론사에 무작정 연재 제안을 하기 전까지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은 없었다. “우선 시작하고, 거기서 시작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모함은 어떻게든 되게 하려는 도전의 시작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된다. 

2011년 울진-독도 240km 수영 횡단
2011년 울진-독도 240km 수영 횡단

●꿈은 하늘을 날아


두 번째 영화는 <I AM A PILOT>. 첫 작품 <고삐>보다도 10배의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온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문제는 파일럿이 되는 데 든다는 1억원 상당의 어마어마한 학비가 없었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요(웃음). 아무도 안 해 본 거지,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해 봤다. 파일럿이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한국 학생들을 더 유치하겠다는 조건으로 미국에 있는 10곳의 비행학교에 제안서를 보냈고, 그중 샌디에이고에 있는 한 비행학교의 교장이 미팅을 요청했다. “잘 될 것 같다는 촉이 왔어요. 친한 감독을 급히 미국으로 불렀고 그가 고맙게도 찍으러 와 줬죠.” 첫 번째 한국인 학생, 그것도 전례 없는 장학생이 되는 장면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컷이었기에. <I AM A PILOT>에는 교장과의 첫 미팅 장면이 담겼다. 


2017년 이동진 모험가는 첫 비행조종 자격증을 취득하며 파일럿이 되었고, 그가 다닌 비행학교의 한국인 학생은 15명으로 늘었다. “그럼 그중 한 명인가요?” 미국에서 만났다는 파일럿 여자친구는 또 다른 비행학교의 학생이었단다. “그래도 2~3시간이면 볼 수 있으니까요.” 주를 넘나드는 일은 파일럿의 연애에서 일도 아니니까.

2016년 미국 비행학교
2016년 미국 비행학교

●모든 사람의 여행에는 각자의 영화가 있다


온 지구를 돌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 100개국을 여행하며. “머릿속에 생각해 왔던 루트를 표시해 놨어요. 경비행기로 세계를 자유롭게 나는 꿈.” 그는 3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는 커다란 세계지도 한 장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했던 도전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횡단! 목표달성! 이런 거였잖아요. 남들 다 가는 명소들도 가 보고 싶어요.” 대륙과 대륙으로, 또 다른 대륙으로 빽빽하게. 여행자의 지도에는 형광펜으로 그은 수많은 선들이 뻗어 있다. 


우선은 미국으로 간다. 파일럿 자격증 총 4개 중 2개를 취득했고, 나머지 2개가 남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작은 항공사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꿈을 꾼다. “저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경험을 했으면 해요. 단,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미국 50개 주에 있는 5,000개 공항을 비행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숫자를 채우는 데 연연하지는 않는다. “몇 개국 몇 개 도시를 찍느냐는 것보다는 거기로 가는 과정을 즐기는 거죠. 4~5년 전 생각했던 목표에 지금 이 순간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영화제작자 이동진의 두 영화는 아직은 미개봉 상태다. 그의 말에 의하면 10년이 지난 후에 봐도 웃길 것 같다는 <고삐>는 세상에 풀릴 적기를 노리고 있고, <I AM A PILOT>은 최근 한 영화제에  출품했다. “곧 나올 수도 있을 것도 같아요!” 지금쯤 그의 세 번째 영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글 김예지 기자  인터뷰사진 강화송 기자  여행사진제공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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