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여행이 말이야….’ 그날의 가족여행을 추억하다
‘라떼는 여행이 말이야….’ 그날의 가족여행을 추억하다
  • 이우석
  • 승인 2020.05.0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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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의 놀고먹기

오월, 가정의 달을 맞아 
첫 가족여행을 떠올려 본다.
지금 같은 여행은 소설이나 TV 속에서나 
존재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행이 금지(?)되고 시작된 금단 증상에 하루도 견딜 수 없다. 특히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 좋은 가정의 달 오월이니 더욱 그렇다. 생각해 보니 누구나 여행의 첫걸음은 가족과 함께 디뎠다. 가족여행은 또 다른 학교였다. 살아가며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그 짧은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 같다. 금단의 괴로움과 아쉬움이 남아 ‘라떼는…’이란 꼰대적 멘트로 내 첫 여행을 돌이켜 봤다.


여행이 사치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근면 성실로 조국 근대화를 이뤄야 할 시기에 휴일, 휴가는 반사회적 행동이었다. 반(半)공일 포함 주 6일 근무 시대, 추석(정부 방침에 의해 설날은 ‘민속의 날’이라 해서 달랑 하루만 쉬었다)만, 그나마 며칠만 쉬던 시절. 지금 같은 여행은 소설이나 TV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퍼시픽 프린세스 크루즈가 등장한 미국 드라마 <사랑의 유람선(The Love Boat)>이 아무리 인기를 끌었대도 그저 앉아서 바라만 볼 뿐, 그게 어떤 여행인지 와 닿지 못했다. 이동이란 무조건 뭔가 필요한 일로만 이뤄졌다. 출장을 간다든지 귀성을 다녀오는 것, 아니면 관혼상제로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일 뿐이다. 숙소는 당연히 친척 친지의 집이나 여인숙 정도가 고작이었다. 기차표를 끊거나 고속버스를 탔지만 딱히 여행이라 부르기 민망했다. 여행의 ‘여(旅)’는 나그네를 뜻하기도 하지만 군대(예를 들어 여단, 旅團)를 뜻하기도 한다. 농경정착 사회에서 어딘가 멀리 떠난다는 것은, 군에 징발되어 원정을 가는 일밖엔 없었던 탓이다. 여행은 귀했다. 1980년대 말에 비로소 열린 ‘여행의 황금시대’를 맞아 외부 세상에 눈을 돌릴 때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홀로 여행자니, 커플 여행자니 다양한 패턴이 있어도, 누구나 첫 여행은 가족여행이었다. 당연히 부모나 조부모 등 가족이 함께했을 테다. 삼대가 함께 온천을 가고 유원지를 갔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1980년 여름의 기억이 최초다. 어느 무덥던 날, 방학이라 집에서 피서를 가잔다. 형은 입을 다물었지만 나와 동생은 밤새 껑충 뛰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행은 준비 과정이 더 설렌다. 시장을 다녀와 사이다를 얼리고 수박을 사고, 돼지불고기를 재우는 것을 일일이 지켜봤다. 옆집 대연이네도 뒷집 소영이네도 함께 가는 정말 ‘여행’이었다. 


서울에서 피서를 갈 곳이란 빤했다. 세 집이나 떠나지만 자가용 한 대 없던 시절. 신촌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교외선 기차로 갈아탔다. 도착지는 일영역(양주시 장흥면), 일영유원지가 있던 곳이다. 꽉 찬 객차가 일영역에 이르자 단숨에 사람들을 비워 냈다. 계곡이 있는 일영역과 장흥역은 당시 꽤나 너른 야외 대합실을 갖춰 놓았다.


‘개미떼가 제크를 물고 가듯’이다. 어른은 커다란 박스를 들고 아이는 바리바리 바구니를 들고 삼삼오오 기나긴 행렬이 가파른 계곡을 거스른다. (상류 쪽으로) 더 올라가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나마 너르고 괜찮은 곳을 찾아냈다. 차가운 물을 돌 몇 개로 막아 그 안에 수박 참외를 넣고,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면 끝. 그렇게 세 가족의 무박 피서여행이 시작됐다. 어른들은 돗자리에 드러누워 간만의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은 불판으로 쓸 넓적한 돌을 찾으러 다녔다. 모아 놓아도 쓸모없는 잠자리와 송사리를 잡느라 하루 종일 계곡을 오르내렸다. 계곡 차가운 물에서 신나는 물놀이와 즐거운 식사, 그리고 그늘 속 낮잠 한숨. 바늘처럼 따가운 땡볕을 쏘아대던 해가 기울고 나면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역순으로 집에 돌아오면 짧고 피곤한 여행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가득 설거지 거리와 추억을 붙들고 있을 필름 한 롤이 남았던 것 같다. 이후 40년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내 여행의 첫 기억이다. 

연천 한탄강유원지
연천 한탄강유원지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안양유원지, 연천 한탄강유원지, 광교 원천유원지, 대구 화원유원지 등 도시 주변에 이름난 유원지가 그리도 많았다. 멀리 떠날 교통편이나 휴일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인근 유원지나 해변이 생애 첫 여행지였다. 1970년대까지 연천 한탄강 유원지(현재 한탄강 관광지)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철도청에서 임시열차 편을 띄웠을 만큼 유원지 명성은 자자했다. 한탄강은 인근 동두천과 의정부, 서울 등에서 미군과 가족들이 피서를 즐기러 오던 곳이다. 이들이 한탄강을 찾으니 인근 주민도 많이 모여들었다. 당시 국내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볼 수 있었던 곳은 해운대와 한탄강뿐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안양유원지 입구에 있던 식당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1960년대 안양유원지 입구에 있던 식당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과거 안양유원지의 모습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과거 안양유원지의 모습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북부에 연천이 있다면 남부엔 안양이 있었다. 안양유원지(지금의 안양예술공원) 앞에는 경부선 임시역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역 이름은 ‘안양풀장역’이었다. 일제강점기 1935년 8월11일에 임시로 세운 하루짜리 역이다. 반응이 좋아 1939년?7월10일 한달간 재개장했다. 안양풀장의 인기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

1960년대 여름철 피서객들이 대폭 늘어났고 이에 철도청은 1966년 안양풀장 입구에 임시 역을 다시 열었다. 1969년 8월 여름을 마지막으로 역이 폐쇄될 때까지 국내 철도의 주된 관광노선으로 역할을 했다.

현재 안양예술공원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현재 안양예술공원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세월이 흘러 자라난 아이는 가족 대신 친구와 떠날 여행지를 찾고, 마침 발달한 교통편은 좀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줬다. 그 옛날 유원지의 추억은 잊혀지고 근사한 호텔 리조트, 게스트하우스가 뇌리의 빈 구석을 새로 채운다. 이처럼 가족여행은 끝이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시작한다.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고 다시 자신의 자녀와 함께 가족여행을 떠난다. 여유로운 휴가 등, 보다 나아진 조건 속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여행이 시작된다. 다시 부모를 모시고 새로운 가족인 아이의 손을 잡고 여로를 나선다. 그 옛날 부모가 이끌어 준 손을, 이번엔 어른이 된 아이가 다시 붙잡고 떠나는 가족여행 2.0. 장소도 교통도 바뀌었지만 그 마음만은 오래전 그날과 다르지 않으리라.

강요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떠밀려 여행과 가족에게 일정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2020년 봄, 이대로 묻어 버리기엔 아직은 아쉬움이 많다. 오월, 가정의 달을 맞아 첫 가족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 그곳으로 그이와 함께 떠나고 싶다. 


●초보 가족여행러에게 
추천하는 여행지 3

내로라하던 국내 유명 유원지는 대부분 용도가 바뀌거나 그 모습이 사라졌지만 걱정할 일 없다. 21세기 국내 가족여행지는 다양하고 무궁하다. 사방팔방 연결되는 철도와 도로, 비행편으로 원하는 곳에 반나절 이내 접근할 수 있다. 조건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아무래도 남녀노소가 두루 섞인 가족이 가는 동선이니 신경 쓸 것은 좀 있다.


우선 멀지 않아야 한다. 이동 과정이 복잡하면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 편히 쉴 수 있는 숙소가 있어야 한다. 숙소의 풍광이 좋으면 금상첨화다. (조)부모와 자녀 모두가 만족하는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면 더욱 좋다. 악천후 등 불편한 상황이 발생해도 ‘플랜B’가 갖춰진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쁘띠프랑스
쁘띠프랑스
춘천 닭갈비
춘천 닭갈비
남이섬
남이섬

강원도 
춘천시

전철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다. 백양리와 강촌 등 추억의 여행지가 북한강을 따라 줄줄이 이어진다. 이곳에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해 걸을 수 있는 풍광 좋은 길이 곁들여진다. 제이드가든 수목원과 중도 물레길, 애니메이션 박물관 등 즐길 거리도 좋다. 엘리시안강촌리조트, 춘천 세종호텔 등 의외로 가족형 숙소도 제법 많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좋아하는 막국수와 닭갈비 등 맛난 지역 특산 먹거리도 있다. 부모를 모시고 간다면 민물매운탕이 딱이다.

제주 중문 롯데호텔
제주 중문 롯데호텔

제주도 
중문단지

제주도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아침에 떠나 점심부터 바로 여행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우선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고, 단지 안에 고급 호텔 리조트가 즐비하다. 비가 오더라도 즐길 수 있는 박물관과 테마파크가 있어 편안한 여행을 보장한다. 서귀포와 중산간 지역의 맛집을 모두 즐길 수도 있다. 날이 좋으면 해안을 따라 걸어 볼 수 있는 올레길도 바로 접근 가능하다. 가족여행의 백미인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도장계곡 ©트래비
도장계곡 ©트래비
도장계곡 ©트래비
도장계곡 ©트래비

경기도 
양평

서울 수도권과 가까워 당일 여행도 가능하다. 용문산 철쭉과 산나물 등 5월에 제철을 맞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다. 천년고찰 용문사 등이 있어 둘러보기에 좋다. 한화리조트와 대명리조트 등 콘도미니엄 등 가족형 객실을 잡기에도 유리하다. 해장국과 냉면 등을 오가며 입맛을 챙길 맛집도 사정이 좋다. 강너머 가평으로 건너가면 쁘띠프랑스 등 자녀들이 좋아하는 테마파크가 가까이에 있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지난 연말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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