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사부작, 채지형이 여행을 모으는 방식
사부작사부작, 채지형이 여행을 모으는 방식
  • 김예지 기자
  • 승인 2020.05.01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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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쯤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새내기 에디터였을 무렵. 채지형 작가와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기억한다. 세심하고 다정했다. 출판사니 잡지사니, 그동안 수많은 에디터들을 접했을 그녀임에도 뭘 잘 모르는 에디터의 (어쩌면 어이없었을) 한마디도 허투루 흘리는 법이 없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작가님”이라는 무책임한 사과를 할 때면 “괜찮아요, 맘 쓰지 마셔요, 기자님”이라는 답변이 채지형 작가에게는 늘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그렇게 한결같이, 명랑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채지형 작가는 세계일주 여행자 1세대였다. 세계일주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은 2000년대 초, 그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온 지구를 돌았다. 그렇게 쓰인 <지구별 워커홀릭>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이후 에세이부터 가이드북까지, 활발한 출판 활동이 이어졌다. 놀라운 건 대부분의 책들을 회사를 다니며 썼다는 사실이다.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입사한 것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녀는 무려 18년 동안 출퇴근을 했다. 직업이 IT 기자였으니 글 쓰는 일과 무관하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10권 가까운 책을 낸 일은 실로 존경스럽다(그 외 공저로 출판한 책도 10권이 넘는다). 2014년 채지형 작가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IT 업계를 떠나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택했다. 


<트래비>에도 채지형 작가의 글이 꽤 자주 실렸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그녀답다고 생각한 글은 2017~2018년 연재했던 ‘채지형의 여행유전자’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부곡으로 시작한 에세이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포함한 사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여행욕뿐만 아니라 수집욕까지 아버지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채지형 작가는 과거를 추억해 말하기에 더없는 인물이었다. 색 바랜 사진, 손 글씨로 써 내려간 엽서와 함께 보내 온 그녀의 원고는 매달 받아 보는 애틋한 서신과 같아서. 그럴 때마다 나는 에디터가 아닌 한 명의 독자였다. 


2020년 봄. 연재가 끝나고도 2년이 넘게 흐른 뒤 채지형 작가를 다시 만났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을 입은 그녀를 어렵지 않게 알아 볼 수 있었다(범상치 않은 패션 센스의 소유자다). 직접 만든 선인장 배지(badge)와 도라에몽 마스크, 귀엽고 소소한 선물을 건네는 모습 또한 영락없는 그녀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예쁜 쓰레기들을 정리하느라 오히려 바빴다는 근황마저도. 간만의 바깥나들이에 채지형 작가는 조금은 들떠 보였다. 여행을 할 수 없는 4월의 어느 화요일, 꼭 여행을 앞둔 소녀 같았다. 

●채지형 작가의 50문50답
인스타그램 @cookielovestravel

01    출생년도_ 베이비붐 정점, 1971년. 무려 102만 명이 태어난 해
02    출생지_  광주
03    별명_  닉네임은 명랑쿠키, 별명은 딱히 없음. 예전엔 에너자이저, 땅콩이라고 불리기도 함. 
04    전공_  신문(석사), 통계(학사), 한국어문화(학사) + 두 번째 대학원에서 문화관광을 공부하다 중간에 멈춤.
05    좌우명(혹은 굳게 믿고 있는 진리)_  길 위에 답이 있다.
06    어렸을 적 장래희망_  피아니스트 또는 한의사
07    주로 입는 옷_ 색깔  초록색
08    선호하는 주종_  주종불문.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맥주
09    챙겨 먹는 영양제_  비트주스 한 잔
10    좋아하는 음식 3가지_  쏨땀, 멍게비빔밥, 자리 물회
11    감명 깊게 읽은 책 3권_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김형경 <사람풍경>,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12    생애 최고의 영화 3편_  <그녀에게>, <인생은 아름다워>, <사이드웨이>
13    가장 좋아하는 작가_  빌 브라이슨, 후지와라 신야
14    지금껏 가장 오래 체류했던 장소_  파키스탄 훈자마을
15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_  세계일주, 결혼
16    가장 후회되는 순간_  글쎄. 자잘한 후회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떠오르지 않음.
17    의외로 집착하는 것_  첫 문장 길이. 짧게 쓰려고 여러 번 고침
18    무의식적인 습관_  골똘히 생각할 때 손가락으로 볼을 꾸욱 누르고 있음.
19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_  오늘은 해가 떴을까?
20    새벽 2시와 오후 2시에 각각 주로 하는 일_  새벽 2시에는 꿈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음, 오후 2시는 그때그때 다름. 어제 오후 2시에는 밭에 감자 심고 있었음.   
21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_  타이핑
22    최근 가장 많이 검색한 검색어_  고혈압
23    최근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_  수면 시간. 5시간이면 충분했는데, 지난해부터는 8시간은 자야 눈이 떠지더라.
24    꼰대라고 느끼는 순간_  ‘옛날에는~’ 이런 말이 나오려고 할 때
25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일탈_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해 버리는 편이라 떠오르는 건 없지만, 굳이 답변한다면 백발염색?  
26    생애 첫 여행지_  기억하는 첫 여행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했던 전국일주 가족여행. 해외여행은 영국. 45일간 유럽여행의 출발지였음.
27    지금껏 다녀온 여행지 모두_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기차여행), 이탈리아, 프랑스, 태국(방콕, 치앙마이, 빠이, 치앙라이, 코사무이, 파타야), 미국(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산호세, 파나마, 하와이, 텍사스, 뉴올리언스, 콜로라도, 필라델피아, 네바다), 필리핀(마닐라, 보라카이, 세부), 홍콩, 마카오, 일본(규슈, 규슈올레, 도쿄, 삿포로, 오사카, 고베, 도야마, 시즈오카, 대마도, 후쿠오카, 가마쿠라, 미나미시마바라, 가나자와, 간사이, 요코하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타만네가라, 페낭, 카메론하이랜드, 말라카), 인도네시아(발리, 족자카르타, 자카르타, 마나도), 캄보디아, 베트남(하노이, 사파, 달랏, 후에, 호찌민, 푸꾸옥), 중국(베이징, 계림, 리장 쿤밍, 장가계 하문, 내몽골, 실크로드, 기차횡단여행, 중경, 난징, 황산, 하얼빈), 말레이시아,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괌,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말라위, 탄자니아, 모잠비크, 케냐, 스페인, 모로코, 그리스, 터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집트, 캐나다,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쿠바,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티벳, 호주(퍼스, 브룸), 브루나이, 라오스(루앙프라방), 네팔 트레킹 자낙푸르, 파키스탄(훈자), 인도(라자스탄, 라다크), 핀란드, 인도 기차종단, 몰디브, 스리랑카, 세이셸, 미얀마 등
28    가장 많이 간 여행지 5곳_  방콕, 후쿠오카, 샌프란시스코, 호찌민, 도쿄
29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3곳_  파키스탄 훈자, 나미비아, 미국 뉴올리언스
30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_  요하네스버그
31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_  와인을 곁들인 아사도
32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_  알래스카 
33    여행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_  어머니 건강
34    여행갈 때 꼭 챙겨 가는 것 3가지_  일기장, 선물용 엽서, 두통약 
35    사용 중인 카메라 기종_  Canon EOS-1DX Mark II, Canon EOS 5D Mark III 
36    여행 기록법(노트, 어플 등)_  길에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수첩에 쓰고 매일 저녁 일기장에 정리. 수첩을 꺼내지 못할 상황에는 메모 어플을 사용. 전체 여행 동선은 구글 맵을 이용해 기록. 지역 내 동선은 GPS가 장착된 시계로 저장. 
37    여행 중 가장 잘 잃어버리는 물건_  펜
38    여행 후 가장 먼저 하는 일_  엄마한테 전화
39    매체 근무 및 기고 전력 모두_  연재 <한국일보> ‘채지형의 화양연화’, <중앙일보> ‘채지형의 세계의 시장’, <한국경제신문> ‘채지형의 구석구석 아시아’, <주간 동아> ‘채지형의 온더로드’, <트래비> ‘채지형의 여행유전자’,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캐나다 배낭여행 일기’,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 <디지털타임스> ‘채지형의 세계일주’ 온라인 허브줌 ‘채지형의 여행살롱’  이외 기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에이비로드>, <좋은생각>, <아트래블>, <마이웨딩>, <보그>, <뮤인>, <싱글즈>, <메종>, <W매거진>, <월드비전>, <프라이데이> 등과 삼성웹, 도로공사 등 각종 사보
40    가장 어렵게 쓴 글_  <한국일보>에 연재하던 ‘채지형의 화양연화’ 중 ‘마지막 여행’이라는 글.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써서, 쓰는 내내 눈물범벅이었음.
41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대표 여행기_  <지구별 워커홀릭>
42    작가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_  책을 꾸준히 내다보니 작가라고 불러 주시는 것 같다.
43    자주 쓰게 되는 단어 혹은 문장_  상상 이상이다. 
44    강연자로서 본인의 ‘말빨’을 평가한다면_  아직 걸음마
45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강의 주제_  인공지능이 바꿀 여행스타일
46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_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
47    여행작가로 살기 버거운 순간_  오른쪽 손목이 신호를 보낼 때요. 카메라가 무거워서 통증이 심하다.
48    ㅇㅇ한 여행작가, 탐나는 수식어_  재미와 감동을 주는 여행작가
49    여행의 목적_  여행 자체가 목적
50    글을 쓰는 이유_  글쓰기는 명상이다. 무작정 타이핑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다음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글로 정리를 해 놓아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재미로’ 떠나는 여행

IT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기자가 꿈이었나?

어쩌다 그렇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고려했는데 한편으론 사회 경험도 해 보고 싶었다. 그러던 때마침 당시 남자친구가 한 IT 전문 잡지사 수습사원 자리를 권유했다. 3개월 일한다는 게 5년을 다녔다.

잘 맞았나 보다.

90년대 후반 IT 업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직원이 5명인 네이버에 취재를 다니고 ‘포털’이라는 말도 막 처음 쓰기 시작하던 때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취재한 내용을 쓰고 정리해 내보내는 과정도 적성에 잘 맞았다. IT 기자간담회나 신제품 발표회 같은 해외 출장의 기회가 잦은 점도 좋았다.

1994년 첫 책 <유럽일기>를 출간할 땐 시기상 대학생이었겠다. 원래부터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했나?

유전이다. 아빠가 여행과 기록을 좋아했다. 텐트 마니아였던 아빠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섬 여행을 많이 다녔다. 사실 <유럽일기>는 여행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기록을 정리해 엮은 것에 가깝다.

잡지사에서 <디지털 타임스>로 옮긴 뒤에도 5년을 더 다녔는데.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한 계기는.

회사생활 7년차쯤 됐을 때부터 스스로 안식년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좋은 남자가 나타난다더라, 아빠가 아프신데 어딜 가냐 등등의 엄마의 반응과 함께 현실적인 이유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너무도 갑자기,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쯤에 차 사고를 당하기도 했는데, 위험한 순간에 가장 후회되는 건 결혼보다는 세계일주를 안 한 거더라. 얼마 안 있어 회사를 그만뒀다.

세계‘일주’의 기준은 뭔가?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암암리에 인정한다. 그래서 쓴 책이 <지구별 워커홀릭>이다. 아, 여기서 워커는 ‘Walker’다.

대표작으로 알고 있다. 가장 애정하는 출판물인가?

아무래도. 살면서 가장 길게 한 여행을 기록한 거였고, 독자보다는 나를 위한 책이었다. 그러고 보면 <유럽일기>는 대학생 때 갔던 유럽 여행을 정리하고, <넌 이번 휴가 어디로 가>는 직장을 다니며 주말마다 떠났던 여행을 정리한 결과물이었다.

정리에 대한 강박이 있나?

인생에서 중요한 여행에 있어선 그렇다. 지난 여행을 정리하고 나서야 다음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지금 가장 맘에 걸리는 건 신혼여행 정리를 아직 못했다는 거다. 병이다(웃음).

계획병도 있나?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A4 용지에 하루를 세 등분해서 계획한다.

계획은 어긋나기 마련인데. 스트레스 받지 않나?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내 취미가 계획이다. 오늘 이걸 하면 며칠 뒤, 몇 달 뒤엔 이렇게 되어 있겠지, 하고 상상하는 일이 좋다. 지인들은 “계획할 시간에 그냥 그 일을 해라”고들 하더라. 

직장생활을 오래 한 만큼 월급에 익숙할 텐데. 전업 여행작가로의 생활은 충분한가?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 통장 사정에 무지한 편이다. 얼마 전 산 주식도 망했다(웃음). 돈하고는 크게 인연이 없는 것 같지만 직장생활로 모아 둔 돈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다.

수입의 대부분은 인세인가, 강의료인가?

지금은 원고료다. 최근 책을 내지 않아서 인세는 별로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강의는 끊겼다.

그러고 보니 전업 여행작가가 된 이후로는 새로운 책을 내지 않았다.

부담감 때문이다. 예전엔 투잡이라는 핑계가 있었지만, 여행이 전업이 되다 보니 오히려 책을 쓰기가 힘들더라.

여행을 업으로 삼은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일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출장을 여행이라 생각하면 괴로워진다. 출장은 일이고, 여행을 위한 여행은 별도다. 작년 남편과 함께 베트남에서 1달, 말레이시아 3주, 그전에도 네팔에서 1달을 있었다. 일정이 빡빡한 출장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이다.

연재를 꾸준히 해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재는.

<트래비>에 기고했던 ‘여행유전자’. 아빠와의 에피소드가 담긴 솔직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칼럼 ‘화양연화’, <중앙일보>에 썼던 ‘세계의 시장’도 나다운 이야기들이었다.

사진은 따로 배웠나?

계속 찍다 보니 익숙해졌지, 아직 멀었다.

풍경 혹은 인물, 어떤 사진이 더 좋나?

둘 다. 근데 인물사진의 경우 친한 사람이 아니면 찍기 쉽지 않다. 요즘엔 풍경을 세밀하게 찍는 게 좋다.

본인의 글과 사진에 다른 작가에겐 없는 특별함이 있다면?

소소한 감성에서 와 닿는 것들, 공감 위주의 내용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하나의 팩트를 여러 근거로 뒷받침하는 기획기사는 어느 정도 탄탄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어의 미묘한 맛의 차이 같은 건 아직도 공부 중이다.

몇 살까지 여행작가를 할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 하고 싶다.   

동년배 여행작가 중에는 여성 작가가 드문 것 같다. 이유가 뭘까?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정을 꾸리면서 육아 등 제약이 있어서가 아닐까.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여성이라 유리하거나 불리했던 점이 있나?

유리한 점은 없고 불리하다기보다는 아쉬웠던 적이 있다. 이전에 EBS <세계테마기행>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여행지가 이슬람 국가였다. 당시 PD는 여성작가의 시선으로 여행지를 다뤄 보자고 시도했는데, 결국엔 위험하다는 이유로 불발됐다. 트레킹을 할 때도 혼자 텐트를 짊어지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 안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남자였다면? 나 홀로 캠핑 가능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 3년 전쯤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좀 의외였다.

평생 혼자 다닐 줄 알았나(웃음). 결혼 전까진 사실 혼자가 편했는데, 지금은 남편과 둘이 가는 여행이 또 좋다.

여행 취향이나 스타일이 잘 맞나?

내가 좀 줏대가 없는 편이라 잘 맞다. 도시와 시골, 화려한 원색과 무채색을 두루 좋아하는 식이다. 한때는 취향을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이제 그냥 ‘그런 류의 인간’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도 도시에 살면서 감자를 심고,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면서 사군자를 친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도 명상을 좋아한다. 나도 이해가 안 가는 다양성이다.

둘이 여행하며 싸우진 않나?

어느 상황에서도, 바꿀 수 없다면 장점을 보는 재주가 있다.

남편은 여행길에 만난 인연인가?

아니, 홍대에서. 파키스탄 엽서를 주려고 만났다.

뭔가 건너 뛴 것 같다.

처음부터 얘기하자면 파키스탄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지인에게 파키스탄을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연락처를 하나 받았는데, 연락이 통 안 됐다. 그러다 여행이 거의 끝날 때쯤 ‘파키스탄 가신다면서요?’로 시작해 정보가 줄줄 적힌 메시지를 받았다.

‘읽씹’은 아니었나 보다.

다행히도(웃음). 며칠 후면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더니 부탁을 하나 하더라. 자기가 훈자마을에서 꼭 사오고 싶은 엽서가 있었는데 못 샀다며, 대신 사서 전해 줄 수 있냐고.

작업 아닌가?

그런 게 아님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 훈자마을에 가서 엽서를 샀다. 결국 그 엽서가 그 엽서가 아니긴 했지만(웃음). 한국에 돌아와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다.

파키스탄 여행은 흔치 않은데. 남편도 여행 관련된 일을 하나?

회사원이었다. 예전에 인도와 파키스탄을 8년 동안 여행한 이력이 있긴 하다.

‘이었다’면 지금은 회사원이 아닌가?

신혼여행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제주, 인도와 몰디브 등 총 6개월간 여행했다.

엄청난 ‘계획력’이 발동했겠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의외다.

휴가를 쓰고 가야 하는 제한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남편이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곳들 위주로 데리고 갔고, 난 주로 따라다녔다.

경비는 얼마나 들었나?

둘이 1,000만원 좀 넘게 든 것 같다. 몰디브 빼고는 물가가 비싼 여행지들도 아니었고, 그렇게 좋은 데서 잔 적도 몇 번 없다. 항공은 마일리지와 저가항공으로 해결했다.

비밀을 유지하겠다. 남편 전에 여행에서 만난 로맨스는 없었나?

너무 많다(웃음). 마흔 여섯까지 여행하고 마흔 일곱에 결혼했으니 그렇지 않겠나.

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 운영하는 ‘여행작가학교’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여행작가가 되는 데 여행작가 강의는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2009년 처음 강의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반대했다. 뭘 가르칠 게 있냐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인생의 동지를 만나고, 결혼도 한다. 지금은 수강생들이 더 재밌게 그 기회를 이용하도록 만드는 게 나의 임무다.

한국여행작가협회는 어떤 곳인가?

초기엔 국내여행을 주로 하는 작가들의 모임이었다. 2004년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면접도 보고, 나름 까다로운 입회과정을 거쳤다. 기본적으로 서로 외롭지 말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협회에 들면 여행작가로 인정받는 건가?

그렇지 않다. 본인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기관에서는 여행작가 자격증을 발급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별로 관심은 없다. 하지만 시장논리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바리스타 자격증처럼 말이다. 자격증 제도는 있지만 자격증이 없어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여행작가, 한번 해볼까?>, <오늘부터 여행작가> 등의 책을 썼다. 직업으로 정말 여행작가를 추천하는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전제가 확실하다면. 그렇지만 처음부터 뛰어들기보다는 사회 경험을 먼저 쌓는 것이 현명하다.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잡지사에서 커리어를 쌓거나 공모전 등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다.

위의 책 내용에서 지금 바꾸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꽤 많다. 유튜브 내용은 안 들어가 있으니까. 최근 1~2년 새 여행 트렌드가 급속도로 변했다. 만약 지금 시대에 여행작가를 하려고 했다면 여행작가협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만큼 길이 다양해졌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며 매체에 어필할 수도 있겠다.

여행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여행의 갈래가 이렇게 다채로워졌구나, 실감한다. 다만 보여 주기식의 여행, 주류가 획일화되는 경향은 아쉽다. 여행이 흔한 시대지만 정작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그런 진득한 여행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채지형 작가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면 어떤 주제일까?

사실 이미 열어 놓은 채널이 있다. ‘명랑쿠키의 잡화점’이라고, 여행보다는 잡화 이야기에 가깝다. 처음 샀던 비행기 표부터 시작해서 집에 쌓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정리할 때까진 아마 영상 업로드는 힘들 것 같다. 

요즘 집에서 그 잡화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고.

추억의 물건들을 보며 여행 기분을 되새기고 있다.

원래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가?

그런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까지 갖고 있을 정도니까.

인형을 수집한다고 들었다.

올해로 26년째다.

몇 개 정도 되나. 모른다.

왜 하필 인형인가.

여행을 잘 기억할 수 있어서. 인형의 복식이나 표정, 재질이 각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꾼 적은 없나.

배낭 하나 메고 세계일주를 다녀왔을 땐 잠시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다시 나로 돌아왔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건 다 하자 싶어서. 다행히 명품에는 관심이 없다.

예쁜 쓰레기라는 말에 동의하나.

동의한다. 다 쓰레기다.

이사도 만만치 않겠다.

이삿짐센터로부터 5~6번 거절당했다. 인형은 직접 옮기겠다고 해도 책이며 뭐며…. 결국 웃돈을 주고 승인(?!)을 받았다.

집이 점점 좁아질 것 같은데.

집은 늘 좁다(웃음).  

<트래비>를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모아 왔다고.

초창기 몇 권을 제외하곤, <트래비>가 주간지였던 시절부터 다 갖고 있다. 잡지는 그때가 아니면 다시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장 2개가 통째로 다 잡지다.

옛날에 비해 요즘 <트래비>는 어떤 것 같나.

훨씬 세련되어졌다. 여행 트렌드에 따라 늘 움직이는 모습이 뿌듯하다.

<트래비>와 인연이 깊다.

<트래비>가 창간하기 전부터 <여행신문>의 객원필진으로 활동했으니 정말 오래 됐다. 지금껏 한 번도 <트래비> 밖에 있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식구 같다. 요즘 같은 땐 그저 버텨 주는 것만으로 엄청난 의미다. 

고맙게도 버티고 있다. 근데 출장이 없다.

정말로 이런 적은 처음이다.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다. 여행사를 운영하던 지인이 하루아침에 망했다. 얼마나 열심히 사업을 일궈 왔는지 그 과정을 잘 아는 만큼 속상했다. 한동안 우울했다.

경제적으로 타격이 있겠다.

강의를 못하고 있고, 펀드가 엄청 까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까. 크게 아프지 않은 게 다행이다.

우린 언제쯤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만간 ‘리셋’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리셋이라면?

나에게 여행은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여행은 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지금까지 여행, 정리, 여행, 정리를 반복하며 살아 왔다. 물론 지금은 정리 기간이 좀 길지만. 이번 정리가 다 끝나갈 때쯤엔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여행을 하고 싶나?

‘재미로’. 사업자 등록할 때 사명으로도 썼다. 여행과 삶에 대한 철학 같은 거다. 인생을 소풍처럼 살다 가는 것.

즐기면서 재밌게 살자는 의미인가?

나름의 고심 끝에 의미도 붙였다. 있을 재(在), 아름다울 미(美), 길 로(路). ‘아름다운 길이 있다.’ 

 

*작가보다는 여행가의 기질이 강하고 수집과 정리, 계획이 취미다. IT 전문 잡지사와 <디지털 타임스>에서 10여 년 동안 IT 기자로 일하며 주말과 출장을 통해 짬짬이 여행을 즐겼다. 그러던 200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쓰인 <지구별 워커홀릭>이 대표작이 됐고, 이후 여행 관련 다양한 출판 활동을 계속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SNS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또 한 번의 회사생활을 끝으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업으로 삼았다. 기자, 여행가, 저자를 아우르는 커리어를 기반 삼아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 운영하는 ‘여행작가학교’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2016,  제주맛집│미니멈
2016,  오늘부터 여행작가│상상출판
2014,  안녕, 여행│상상출판
2012,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힘│상상출판
2009,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여행작가 한번 해볼까?│위즈덤하우스
2009,  어느 멋진 하루│웅진웰북
2008,  까칠한 그녀의 STYLISH 세계여행│살림LIFE
2007,  지구별 워커홀릭│삼성출판사
2005,  싸이월드는 왜 떴을까│제우미디어
2004,  넌 이번 휴가 어디로 가│영진닷컴
1994,  유럽일기│이스트소프트

그 외 공저
2004,  수첩 속의 풍경│한국관광공사
2004,  잊지 못할 가족여행지48│살림
2007,  호젓한 여행지│위즈덤하우스
2008,  노웨어│예담
2008,  1박2일 실버 여행│위즈덤하우스
2009,  트래블게릴라의 구석구석 아시아│터치아트
2009,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위즈덤하우스
2010,  대한민국 머물기 좋은 방 210│위즈덤하우스
2011,  경북의 아름다운 걷기여행│위즈덤하우스
2012,  여행작가들은 여행 가서 뭘 먹을까?│위즈덤하우스
2014,  대한민국 다시 걷고 싶은 길│위즈덤하우스


 

인터뷰 김예지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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