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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훈이라는 점 하나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0.05.01 17: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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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인지 ‘햇수’인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독보적인 ‘말빨’을 가진 22년차 여행작가. 뻔뻔하게도 진지하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에게 딱히 딴지를 걸 수도 없었던 건 그만큼 자명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부터 약 2년간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고정 게스트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 노중훈 작가는 올해로 7년째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 중이다. 그 ‘말빨’을 증명하듯, 우리의 첫 만남에는 어색한 쉼표 하나가 없었다.


그의 여행기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간이 전혀 되지 않은 두부랄까. 노중훈 작가의 글을 음식으로 치자면 초식처럼 담백했었단 말이다(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가 담백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는 쓸데없이 현란한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규칙을 정확하게 지킨다.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순우리말을 쓴다. ‘좋았다’ ‘맛있다’ 같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상황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 정보 없이 노중훈 작가의 글을 식별하기까지는 정확히 3편의 여행기가 소요됐다. 


노중훈 작가를 독보적으로 만든 또 하나의 단어는 단연 ‘맛’이다. 그의 저서인 <식당 골라주는 남자>를 비롯해 그동안 출연한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미식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식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경계한다. 먹는 걸 좋아하는 여행작가일 뿐, 개인의 입맛을 절대적인 양 말하고 쓰기를 극도로 조심한다. 취향은 ‘할매식당’. 전국의 수많은 식당을 다니는 사이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킨 작은 동네 식당이 좋다는 점이 뚜렷해졌다.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 또한 노중훈으로 수렴하는 ‘점’이다.


100% 허름한 노포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가 이끈 곳은 서울 성북동의 귀여운 수제버거 집. 순대국 집만 갈 것 같다는 편견은 버리라며, 노중훈 작가는 인터뷰 내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처음엔 딴짓으로 오해했다). 입사시기를 묻는 질문에 메모에서 정확한 연도를 확인하고, ‘햇수’라는 단어를 쓰다가 표준국어대사전 앱을 켜고 ‘ㅅ’이 붙는 게 맞는지 확인하던 그. 이날 인터뷰는 원활했으나 한편으론 버겁기도 했던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노중훈 작가는 누구보다도 기록을 신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이 완벽한 문장에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 그저 기분 탓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실치 않다.

●노중훈 작가의 50문50답
인스타그램 @chunghunroh

01    출생년도_  1973년
02    출생지_  서울
03     별명_  목소리만 한석규
04     전공_  신문방송학
05     좌우명(혹은 굳게 믿고 있는 진리)_  Everything has an end
06     어렸을 적 장래희망_  과학자
07     주로 입는 옷 색깔_  무채색과 브라운 계통
08     선호하는 주종_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
09     챙겨 먹는 영양제_  비타민, 눈 영양제, 간장약
10     좋아하는 음식 3가지_  나물, 국수, 만두
11     감명 깊게 읽은 책 3권_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은모든 <애주가의 결심>, 김훈 <자전거 여행>
12     생애 최고의 영화 3편_  파트리스 르콩트 <미용사의 남편>, 파트리스 르콩트 <이본느의 향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3     가장 좋아하는 작가_  김훈
14     지금껏 가장 오래 체류했던 장소_  서울
15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_  라디오를 좋아하는 일
16     가장 후회되는 순간_  좋은 인연을 놓친 것
17     의외로 집착하는 것_  친구에게 문자 보낼 때도 규범 표기를 준수하는 것
18     무의식적인 습관_  많이 먹는 것
19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_  몇 분 내로 일어날까?
20     새벽 2시와 오후 2시에 각각 주로 하는 일_  새벽 2시엔 ‘왜 잠이 안 올까’라는 생각, 오후 2시엔 ‘왜 졸릴까’라는 생각
21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_  침묵
22     최근 가장 많이 검색한 검색어_  00식당
23     최근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_  노안
24     꼰대라고 느끼는 순간_  역지사지가 잘 안 됨
25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일탈_  다이어트
26     생애 첫 여행지_  해외 중에서는 미국 텍사스
27     지금껏 다녀온 여행지 모두_  해외는 66개국 약 500여 도시
28     가장 많이 간 여행지 5곳_  일본, 프랑스, 호주, 전남 구례, 제주
29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3곳_  국내는 무수히 많고 해외 중에서는 프랑스 남프랑스, 슬로베니아 피란, 독일 블랙 포레스트
30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_  없음
31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_  1,000개도 이야기할 수 있음
32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_  없음
33     여행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_  공항의 불편함
34     여행갈 때 꼭 챙겨 가는 것 3가지_  특별히 챙기는 것 없음
35     사용 중인 카메라 기종_  캐논 5D Mark III
36     여행 기록법(노트, 어플 등)_  수첩, 휴대전화 메모장
37     여행 중 가장 잘 잃어버리는 물건_  펜
38     여행 후 가장 먼저 하는 일_  해외 출장 후엔 소주
39     매체 근무 및 기고 전력 모두_  1999년 4월~2001년 9월 <여행신문> 취재부 기자, 기고 매체는 다양
40     가장 어렵게 쓴 글_  모든 원고
41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대표 여행기_  없음
42     작가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_  모름
43     자주 쓰게 되는 단어 혹은 문장_  알 길이 없지만, 헤아릴 수 없지만, 가 닿을 수 없지만
44     강연자로서 본인의 ‘말빨’을 평가한다면_  유아독존
45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강의 주제_  세밀한 여행
46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_  무아지경
47     여행작가로 살기 버거운 순간_  무뎌져서 잘 모르겠음
48     ㅇㅇ한 여행작가, 탐나는 수식어_  없음
49     여행의 목적_  이야기 채집
50     글을 쓰는 이유_  생계의 방편

●작은 골목에서 우주 같은 이야기를 채집할 때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이유라기보단 딱히 할 얘기가 없어서다. 내가 갖고 있는 콘텐츠나 스토리가 그리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이번 인터뷰에 응하게 된 이유는 역시 의리인가?

그렇다. 친정에 대한 의리.

친정이라면 <트래비>를 발간하는 <여행신문>이겠다. 1999년부터 2년 반 정도 취재부 기자로 일했다고. 노중훈에게 <여행신문>이란?

‘거대한 여정의 서막’. 대한민국 최고 여행작가가 되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 최고라 말하는 것이 쑥스럽거나 하진 않나? 전혀.


라디오로 이름이 알려졌다. 첫 방송이 기억나나?

1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프로그램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간 것이 처음이었다.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고정 게스트가 된 건 그 후의 일인가 보다.

그건 정확한 시기를 기억한다. 2012년 8월 말. 여행 이야기를 해 줄 게스트로 출연했다. 한 주 특집으로 나간 건데, 진행자인 시경씨가 음식이나 식당에 대해 앞으로 함께 소개하면 좋겠다고 제작진에게 직접 제안했다.

그렇게 음식 쪽으로 풀린 건가?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었다(웃음).

먹는 건 원래 좋아했나?

그렇긴 했지만 방송을 하기 전까지 식당에 줄서서 먹는 일은 없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마찬가지로 음식 전문가도, 요리사도 아니었다. 다만 당시 그 프로그램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대충할 수 없었다. 전문영역이 아닌 만큼 조사하고 공부하며 나름의 기준을 갖고 식당을 소개하려 노력했다.

매주 토요일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해 온 지도 벌써 7년째다. 장수 비결은?

일단 말을 잘한다(웃음). 그리고 일하기 편한 타입이다.

일하기 편한 타입이라면?

제작진 마인드다. 알아서 방송 콘셉트와 내용을 준비한다. 청취자가 뭘 좋아하는지도 감을 잘 잡는 편이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같이 일하기 용이한 진행자다.

매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겠나?

욕심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어쨌든 여행 프로그램이 데일리로 편성될 가능성은 제로다.

방송을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한다던데. 사실인가?

예전엔 모니터를 열심히 했었다. 지금은 하지 않고, 준비도 그때만큼 하지 않는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건가?

준비를 많이 하면 오히려 방송이 원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생방송의 경우엔 청취자들과의 호흡이나 애드리브가 중요한데, 준비를 빡빡하게 해 가면 그 속에만 빠져서 즉흥성이 떨어진다. 작가들이 써 준 대본만 읽는 DJ는 듣는 사람에게 꼭 티가 난다.

그럼에도 최소한 준비해 가는 게 있다면.

평상시에 늘 준비한다. 얇더라도 많이 아는 것, 박학다식해져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멘트를 할 수 있도록.

목소리가 좋다. 관리하나?

타고 났다. 술 마시고 가끔 잠기긴 하지만 관리란 일절 없다. 한석규나 조진웅 목소리 같다고들 하더라.

이 인터뷰의 반은 자랑이 될 것 같다.

‘유이(有二)’한 장점인 걸 어쩌나. 언변과 목소리.

사람들이 본인에게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면?

바쁜 줄 안다. 또 인간관계가 굉장히 폭넓은 줄 안다.

아닌가?

현재 라디오를 5개 하고 있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을 매일 하나씩 한다고 해도 절대 바쁠 수가 없다. 녹음은 한 번 할 때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나고 그중 몰아서 녹음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아주 한가하다.

그래도 왠지 친구는 많을 것 같은 이미지다.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친구는 딱 1명, 박철호. 초등학교 동창.

20년 넘게 비혼주의를 고수해 왔다고. 결혼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나?

단 1초도 없었다.

여행작가라는 직업과 관련이 있나.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이라든가.

아주 없진 않지만 것보다는 개인 성향적인 면이 강하다. 누군가와 극도로 가까워지거나 경계가 없는 사이를 불편해한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것 같다.

그렇다. 나랑 맞지 않는다는 인상이 한 번 굳어지면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최근 칭찬했던 사람은? ….

그동안 얼마나 의미 없는 칭찬을 많이 날렸는가에 대해 생각 중이다.       

‘미식여행작가’라는 타이틀에 만족하나?

불편하다. 미식이나 맛집의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맛집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사람의 혀만큼 간사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 입맛에 짜다고 해서 짜다고 단정 짓는 것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절대적인 개념처럼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 좀 더 깊게 취재하다 보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한 공감이자 기본 매너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타이틀이 어울릴까?

먹는 것 좋아하는 여행작가.

여행은 좋아하나?

싫어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미친 듯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여행 갈 생각만으로 매번 심장이 두근거리면 심장이 타서 죽지 않겠나. 뭐든 너무 열정적이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여행이 직업이라서, 적당히 거리를 둬서 오래할 수 있는 것 같다.

뚜벅이다. 운전을 못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25년 전쯤 면허를 땄는데 운전 경험은 5번 미만이다. 이유는 우선 차를 살 만한 돈이 없어서. 술을 워낙 좋아해서이기도 하다.

전국을 두루 다녀야 하는데 불편하진 않나?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은 안 가면 된다.
    
엥겔지수가 진심 궁금하다.

100을 기준으로 1,000. 먹는 것에만 쏟아 붓는다. 자동차, 주식 같은 것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음식과 술, 그리고 야구 정도가 취미다.

최근 한 달 갔던 식당 중 최고였던 곳은?

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상안집포차’. 동네 해산물 식당이다. 17년 역사, 4인용 테이블 5개. 근데 이런 것 소개하면 안 되는데.

사람이 많아지는 게 싫어서 그러나.

이미 알고 있던 작은 식당들이 매체를 타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물론 나 또한 일조를 했다. 사람들은 내 SNS를 봤을 테니까(웃음).

허름한 노포만 골라 가는 것 같다.

내가 가는 식당의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동네식당이나 골목식당. 둘째, 가급적 방송을 타지 않은 곳. 셋째, 프랜차이즈는 제외한다.

취향인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할매식당’이다.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 온 작고 허름한,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술 약속은 몇 번 정도인가? 평균 2번 정도.

선호하는 주종은?

다 좋아하지만 빈번하게 마시는 건 소주다. 취약한 건 막걸리. 요즘은 맥주도 많이 마신다.

식당 협찬도 종종 받나? 경멸한다.

어려운 질문일 수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예전에 이 질문을 받으면 세상의 모든 면이라고 답했다. 요즘은 나물이 좋다. 갈수록 은은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게 좋다.

자주 먹는 것일 뿐 많이 먹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175cm에 92~94kg이면 고도비만이다. 심각하다.

기자 출신이다. 언제부터 ‘작가’라고 불렸나?

퇴사 후 스스로 작가라고 했다. 배운 게 여행과 글쓰기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주 짧았지만 삼성맨이었다던데.

<여행신문> 입사 전에 합격했었다. 그러고 연수 10일, 계열사 발령 후 일주일 정도 일했던 것 같다.

왜 그만뒀나?

금융 계열사로 배정받았는데 맞지 않았다.

<여행신문>에서도 3년을 채우지 못했다. 조직 부적응자인가?

돌이켜 보면 그런 것 같기도. 반면 조직 순응적인 면도 많다. 다만 못 참겠다, 싶은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직진하는 성향이 있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은? 조직이 시키는 일을 안 해도 된다.

치명적인 단점은? 조직원보다도 더 조직원처럼 일해야 할 때가 많다.

입사 생각은? 1도 없다.

한때 연봉 1억 작가로 알려졌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22년째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창 바빠 보였을 때 사람들이 ‘월 1,000 작가’라고 부르던 게 와전됐을 뿐이다.

방송과 기고 활동, 하나만 선택하라면?

생활 안정이 보장된다면 방송. 말하는 게 가장 쉽다. 사진이 그 다음, 글이 가장 어렵다.

원고에 순우리말이나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을 자주 쓴다. 의도가 있나?

프리랜서가 된 후 작가로서 변별력이 뭘까, 스스로 고민해 봤다. 내 글을 냉정하게 봤을 때 비유가 특출하게 뛰어나다거나 문체가 화려하다거나 하진 않더라.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강박적일 정도로 신경 쓰기 시작했다. 순우리말이나 고어 같은, 잘 쓰진 않지만 좋은 단어들을 썼다. 글은 내용보다 형식, 그것이 내가 갖출 수 있는 경쟁력이었다.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순우리말이나 고어는 일부러 찾아 쓰는 건가?

좋은 우리말을 갈무리해서 노트를 만들곤 했다. 요즘도 표준국어대사전 앱을 일상적으로 쓴다.

그래서 글이 올드하다는 평도 있다.

동감. 옛날에 쓴 글을 읽어 보면 무슨 훈장님이 쓴 글 같다. 지금 글쓰기의 기준은 문장은 짧게, 규범 표기는 정확하게. 굳이 어려운 단어는 쓰지 않지만 순우리말을 발굴하는 일은 여전히 좋아한다.

좋아하는 순우리말은?

‘으밀아밀’이라는 부사. 뜻은 ‘비밀히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어감이 재밌다. 그렇기도 하고 실제로 비밀스럽게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출판물이 적은 편이다.

쓸 게 없어서다. 여행작가로 오래 활동하긴 했어도 수박겉핥기식의 경험들이 대부분이다. 가 본 나라는 많아도 깊이는 없다. 쓰는 사람이 신기하다.

<식당 골라주는 남자>를 쓰면서 고민이 많았겠다.

전공이 아니니까 쓸 수 있었다. 책을 보고 대중은 ‘여행작가가 쓴 거니까’, 평론가들은 ‘요리 전문가가 쓴 게 아니니까’라고 생각할 테니까. 어느 정도 핑계가 보장됐던 거다.

또 다른 책을 쓸 생각은 없나?

올 가을에 하나 나올 것 같다. 제목은 <할매, 밥 됩니까?>.

할매식당이 왜 그렇게 좋나?

뭐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우주 같은 이야기가 쌓인다. 정작 그 ‘할매’들은 정작 본인의 역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은 이미 동네의 역사, 음식과 재료의 변화 등등 너무 많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설민석의 역사 이야기는 저리 가라다.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여행상품 ‘노중훈만 아는 여행’을 기획했었다. 잘 됐나?

딱 한 번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다.

한 번의 여행은 어땠나? 평생 하고 싶었다.

1분 홍보할 시간을 주겠다.

주로 먹고, 가끔 걸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요즘 소위 말하는 ‘맛집 부시기’ 같은 여행은 아니다. ‘노중훈만 아는 여행’의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대화다. 낯선 사람들에게 뭔가를 묻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도와주겠다. 한 번 여행할 때 정원은 몇 명인가. 어떻게 신청하나?

정원은 한 테이블에 앉기 좋게, 노중훈 포함 4명. 여행책방 ‘사이에’(@saiebook)와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chunghunroh)을 통해 주로 공지한다.

할매식당을 주로 가나.

맞다. 동네 골목식당들의 매력을 발견하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가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지난번 여행 참가자들의 후기는?

“제가 왜 제 얘기를 많이 하죠? 원래 이렇지 않은데”라고 하더라. 

힘든 시기다.

대충격이다. 라디오를 제외하고 모든 스케줄이 다 끊겼다.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선뜻 여행을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무실 임대료를 내려 준다든가 하는 소식은 없나? 아직은 연락을 못 받았다.

지금보다 더한 위기가 있었나?

늘. 프리랜서의 삶이 그렇다. MBC 라디오가 파업했을 땐 몇 달간 기본 수익조차 없었다.

진지하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다.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인정 욕구가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방송이든 글과 사진이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게 흐뭇했다. 막연하고 모호했던 내 취향과 관심사가 하나의 점으로 모아지는 데도 희열을 느낀다. 시간이 누적되어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그렇게 모아진 노중훈이라는 ‘점’은 어떤 모습인가?

동네, 이웃, 골목처럼 좁은 지역적 범위에서 머무르는, 간결한 여행을 지향한다. 현지에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으니 ‘이야기 채집가’가 체질인 것 같다. 그게 여행작가의 매력이자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코로나19가 물러가면 어딜 가장 먼저 가고 싶나?

장소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노중훈만 아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어느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 소주 한 잔. 그런 식당은 전국 어딜 가나 다 있으니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평소 어느 특정한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편인가?

나이가 들수록 웅장한 대자연이나 고색창연한 문화유적 같은 것엔 관심도가 떨어지더라. 그보다는 무언가를 오랜 시간 해 온, 특히나 사람에 관심이 많다. 그런 사람만 있다면 어딜 가나 좋을 걸 알고 있다. 

 

*글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쉬운 여행작가. 1999~2001년 <여행신문> 취재부 기자로 일했고, 이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남다른 입담으로 라디오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2년 8월부터 2014년 4월까지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고정 게스트로 활약했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통해 매주 토요일마다 청취자들과 소통해 왔다. 이외 <쇼! 오디오자키>, <음담패썰>, <배틀트립> 등 방송도 다수 했다. 어려워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글과 사진, 모두 실은 저서로는 <식당 골라주는 남자>가 있으며 올 가을 또 다른 음식과 여행 이야기를 담은 <할매, 밥 됩니까?> 발간을 앞두고 있다. 

저서
2016  식당 골라주는 남자│지식너머
2018  노포의 장사법(글 박찬일, 사진 노중훈)│인플루엔셜
2014  백년식당(글 박찬일, 사진 노중훈)│중앙 M&B

 

인터뷰 김예지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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