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역사로드-고대왕국의 보물을 찾아서
스리랑카 역사로드-고대왕국의 보물을 찾아서
  • 천소현 기자
  • 승인 2020.06.01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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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가 태어난 곳, 스리랑카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뜻한다. 
그 어원인 세렌딥(Serendip)은 페르시아가 스리랑카를 부르던 옛 이름으로 ‘보석의 땅’이란 뜻이다. 
보석 같은 발견의 기쁨이 우연처럼 이어지는 곳. 그런 곳이다, 스리랑카는. 

해발 200여 미터에 고립된 채 세워진 바위 요새 시기리야의 수영장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넓이다
해발 200여 미터에 고립된 채 세워진 바위 요새 시기리야의 수영장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넓이다

인도의 남쪽 섬나라 스리랑카는 한반도 3분의1 면적(6만5,610km²)에 인구는 2,100만여 명이다. 해양 실크로드 상에서 서구 강대국의 식민 지배 시절과 독립 이후 이어졌던 오랜 내전이 종식된 이후, 지금은 꼭 가 봐야 할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중남부 산악지대 중턱의 푸른 차밭은 실론티의 고향이고, 해안선을 따라 콜롬보, 갈(갈레), 벤토타 등 아름다운 휴양 도시가 늘어서 있다. 상업수도는 콜롬보, 행정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ewardenepura Kotte), 줄여서 코테(Kotte)라 부른다. 

인도양에 맞닿은 콜롬보 시민들의 휴식처, 갈 페이스 그린 비치
인도양에 맞닿은 콜롬보 시민들의 휴식처, 갈 페이스 그린 비치

●Historic Road
스리랑카 역사로드 
고대왕국의 보물을 찾아서

Colombo콜롬보 - Kurunegala쿠루네갈라 - Sigiriya시기리야 - Kandy캔디


이제는 꼭 방문해야 하는 나라


흔히 스리랑카를 ‘대륙의 눈물’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뚝 떨어진 눈물 한 방울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인도의 눈물이 아니라 스리랑카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BC 6세기 인도 뱅골에서 건너온 비자야 왕자를 시조로 한 싱할라왕국은 BC 3세기 인도에서 전파된 불교를 구심력으로 약 2,300년간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1505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침략해 오면서 440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다. 실론(Ceylon)으로 불렸던 스리랑카는 1815년 영국과의 전쟁으로 왕조 시대를 마치고 대영제국에 병합되었다. 1948년 영국연방 자치국이 된 실론은 1972년에 독립해 국호를 스리랑카로 고치고 공화국을 선언했다. 하지만 1983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다시 26년간 혼란에 빠져들었다. 영국 식민 지배 당시 커피 농장과 차 농장의 노동력으로 인도에서 데려온 타밀족이 북부에서 자치권을 요구하며 일어난 분쟁은 2009년 정부군의 반군 토벌로 비로소 종식되었다. 

옛 국회의사당 앞 D. S. 세나나야케 실론(Ceylon) 초대 총리의 조각상
옛 국회의사당 앞 D. S. 세나나야케 실론(Ceylon) 초대 총리의 조각상

이런 혼돈 속에서도 스리랑카는 상좌부(上座部)불교*의 종주국으로서 정통성과 자부심을 이어 왔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경이다.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하고 불교에 귀의한 아소카왕이 아들 마힌다(Mahinda)를 스리랑카에 파견해 포교에 성공했다. 지금도 스리랑카 인구의 70%가 불교를 믿는다. 

스리랑카는 국토 전체가 불교 성지이자 아직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고대 도시의 유적을 간직한 보물섬이다. 그런 이유로 2019년에 <론리플래닛>이 스리랑카를 ‘2019년에 방문해야 할 여행지 1위’로 선정하면서 전 세계 여행자의 관심이 쏠렸지만 그해 4월 콜롬보 도심에서 테러가 발생해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 불과 1여 년 전의 일이니 아직 위험한 나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스리랑카 가이드 반다아르씨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마지막 발악이었죠. 다 정리된 일입니다.” 


코로나 이후 지향하는 여행지도 달라질 것이다. 청정하고 덜 붐비는 새로운 여행지의 첫 줄에 스리랑카가 있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상좌부불교 | 흔히 소승불교라고 불리는 상좌부불교는 부처님이 당대에 사용하신 팔리어로 된 불경을 간직하며, 초기 불교에 더 가까운 형태다.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이 소승불교(남방불교)로 분류된다.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의 불교는 대승불교(북방불교)로 산스크리트어 불경과 이를 한역한 한문 불경을 사용한다. 

콜롬보 도심에 위치한 강가라마야 사원
콜롬보 도심에 위치한 강가라마야 사원

●Colombo
보물섬이 열렸다
강가라마야 사원 


드디어 찾았다. 천일야화 중 하나인 <바다의 신드바드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보물섬(스리랑카)과 보물을 말이다. 신드바드는 일곱 번이나 인도양에 나가 갖가지 고초를 겪었지만, 우리의 보물 찾기는 콜롬보 베이라 호수 근처에서 단번에 성공했다. 

스님들은 식민 시대에도 교육사업에 힘썼다
스님들은 식민 시대에도 교육사업에 힘썼다

강가라마야 사원(Gangaramaya Vihara)에 들어서자 보물이 한가득이었다. 황금, 백옥,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이 보물의 공통점은 모두 불상이라는 것.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상과 탱화, 신상, 파고다, 진신사리 등은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성보다. 도교의 신상과 민속 사료 같은 생활 유물과 잡다한 소품들까지, 흡사 불교미술박물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무엇이든 공양할 수 있으며 한국 사찰에서 보내온 선물도 있었다. 이런 ‘아량’으로 사원은 스리랑카 불교 재부흥 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강가라마야 사원은 1885년 히카두웨 수망갈라(1827~1911)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피아나두라 대논쟁*에 기여했던 수망갈라 스님이 가장 힘쓴 것은 교육이었다. 많은 큰 스님과 인재들을 배출했다. 

불교미술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성보들
불교미술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성보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성스러운 보리수 주변을 돌며 조용히 공양을 올리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이 많은 보물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귀중한지를. 

*피아나두라 대논쟁 | 영국 식민지 때인 1873년 콜롬보 남부의 작은 마을 파아나두라에서 모호티왓테 구나난다(1823~1890) 스님과 영국인 목사 데이비드 드 실바, 전도사 사리만나 사이에 불교에 대한 비하를 두고 대논쟁이 있었다. 기독교인들의 무지를 파헤친 것으로 평가되는 이 논쟁을 계기로 스리랑카인들의 불심은 다시 타올랐고, 영국인들의 불교 개종까지 늘어났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강가라마야 사원
주소: Colombo, Sri Lanka
홈페이지: www.gangaramaya.com  
전화: +94 112 435 169

사원들은 동굴 지형을 고스란히 살렸다
사원들은 동굴 지형을 고스란히 살렸다

●Kurunegala
동굴에서 찾았다 
리디 비하라야 동굴 사원 


왜 바위 동굴 아래 사원이 만들어졌는지를, 리디 비하라야(Ridi Viharaya) 사원의 젊은 스님은 내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의 절반은 아까부터 발바닥으로 내려가 있었다. 햇볕에 달궈진 바닥이 너무 뜨거워 맨발을 폴짝거리는 동안 저절로 깨달음이 왔다. 왜 2,200년 전 스님들이 동굴 안에서 수행을 했는지 말이다. 

리디 비하라야 동굴 사원 내부의 불상들
리디 비하라야 동굴 사원 내부의 불상들

스님이 전한 전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싱할라왕국 초기인 BC 2세기경 리디 가마(Ridi Gama)라는 마을을 지나가던 한 무리의 상인들이 휴식을 취하다가 잭플루트를 발견해 동굴 안에서 수련 중이던 수행자에게 먼저 공양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수행자가 동굴 안의 은맥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서둘러 두투게무누(Dutugemunu, 161~137 BC)왕에게 이를 알렸고, 마침 거대한 스투파를 건축할 재원이 부족했던 왕의 고민도 단숨에 해결될 수 있었다고. 왕은 감사한 마음에 은광이 발견된 곳에 사원을 세웠다. 

2,200년 동안 더해진 불교 미술의 깊이를 목격할 수 있다
2,200년 동안 더해진 불교 미술의 깊이를 목격할 수 있다

인근 불자들의 공양에 힘입어 한때는 25개의 석굴 사원과 500여 명 이상의 스님이 살았던 사원은 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태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석굴사원군이 그리 멀지 않은 담불라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시기적으로 리디 비하라야는 담블라 석굴사원보다 한 세기쯤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2,000년의 역사를 보여 주는 유적과 정교한 조각, 화려한 탱화, 거대한 와불, 인도의 영향을 받은 힌두 양식의 석조사원 등은 압도적이고 흥미롭다. 맨발 투혼이 어렵다면 양말을 준비하시라. 

리디 비하라야 동굴 사원 
주소: Ridi Gama, Sri Lanka
홈페이지: www.rideeviharaya.lk  
전화: +94 77 505 0670

위에서 내려다본 테라스는 사자의 발과 발톱 형상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테라스는 사자의 발과 발톱 형상이다

●Sigiriya
오지 말라고 지은 바위 요새 
시기리야 고대 도시 


아버지 다투세나왕(455~473)을 죽이고 왕이 된 자, 죄책감까지 더해진 왕관의 무게에 눌려 버린 아들은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높은 바위에 요새를 만들어 피신했다.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요새 시기리야(Sigiriya Fortress)는 그렇게 탄생했다. 높이 195m의 바위산 꼭대기에 그가 무엇을 만들어 놓았는지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가이드를 용서했다. 60대의 그는 처음부터 아예 동행불가를 선언했었다. 

저 바위 위에 왕궁, 수영장, 정원이 있는 요새가 있다
저 바위 위에 왕궁, 수영장, 정원이 있는 요새가 있다

바위산을 휘감아 설치한 철제 계단은 포기하지 말라는 듯 중간 보상을 잊지 않았다. 첫 번째는 프레스코 벽화로 남겨진 천상의 무희(압사라)들이고 두 번째는 거대한 발등과 발톱으로 남은 라이언 게이트였으며, 내내 감탄스러운 것은 발아래 펼쳐진 열대 정글의 풍경이었다. 가장 큰 보상은 땀에 흠뻑 젖은 채 도달한 바위산 꼭대기에 있었다. 여러 개의 직사각형으로 구획된 빈터를 보며 수영장, 회의장, 궁전, 저수지를 상상하는 재미 말이다. 맨몸으로 올라오기도 벅찬 바위산 꼭대기에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희생되었을 이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풍차의 원리를 이용한 거대한 기중기로 벽돌을 날랐을 거라는 가이드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말이다. 그는 또 올림픽 규격만큼 넓은 수영장(목욕장이라고 한다)이 그만큼 많은 여인이 함께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도 했다. 기록이 희미하니 상상은 각자의 몫이다. 바위가 자리한 일대가 온통 물정원과 보타닉 가든, 분수, 해자로 구성된 것을 보면 당시 왕에게 치수가 무척 중요했음을 짐작할 뿐이다. 

요새로 접근하는 방법은 아찔한 철재 계단뿐이다
요새로 접근하는 방법은 아찔한 철재 계단뿐이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천상의 성에서 11년간 은신했던 카사파 1세(Kashyapa I, 477~495)는 결국 인도에서 용병을 끌고 돌아온 동생 목갈라나에게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의 사후, 시기리야는 불교 사원으로 운영되다가 폐허가 되어 전설로만 전해졌다. 발굴은 400여 년이나 흐른 19세기 후반에야 영국에 의해 이뤄졌고, 1982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기리야 고대 도시 
주소: Sigiriya, Sri Lanka
홈페이지: www.sigiriya.info

빈손으로 오는 사람은 없다. 초와 연꽃 공양은 기본이다
빈손으로 오는 사람은 없다. 초와 연꽃 공양은 기본이다

●Kandy
마지막 왕조가 남긴 보물 
캔디의 불치사 


고대왕국 싱할라왕조는 3개 도시를 기반으로 번성했다. 기원전 4세기부터 무려 14세기 동안 첫 번째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180년간 왕국을 품으며 제2 전성기를 이루었던 폴론나루와(Polonnaruw), 이후 200여 년간 유랑하던 왕조가 1480년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된 캔디(Kandy)가 그곳이다. 왕실의 천도는 3세기에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진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안전하게 봉안하는 임무를 포함했다. 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를 잘 관리해야 왕국의 정통을 잇는 수도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815년 영국에 패배해 왕조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세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문화 삼각지대(Cultural Triangle)’라고 불리며 스리랑카 여행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함은 허가된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함은 허가된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

불치사의 영광은 싱할라왕국 최후의 수도였던 캔디에 남겨졌다. 스리랑카 최고의 불교 성지로 정식 이름은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다. 역시 경내는 맨발이 원칙이다. 부처 앞에선 만인이 동등하므로 옷차림은 흰색이 좋다. 몇 번의 학습 끝에 하얀 티셔츠를 꺼내 입었더니 가이드가 ‘엄지척’을 했다. 손발을 깨끗이 씻고 입장하자마자 꽃을 한 송이씩 든 하얀 옷의 인파와 마주쳤다. 그 향기로운 물결에 몸을 실으니 자연스레 2층으로 올려졌다. 무려 6겹으로 봉인되어 있다는 사리함을 친견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이 순간을 위해 긴 여정을 견뎠을 순례자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쁜 표정이었다. 440년의 식민 지배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지켜진 스리랑카의 정신은 바로 이 불심으로 겹겹이 싸여 있음이 분명하다.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 
주소: Kandy, Sri Lanka
홈페이지: www.sridaladamaligawa.lk
전화: +94 812 234 226

학교에 갈 때도, 사원에 갈 때도 흰옷을 입는다
학교에 갈 때도, 사원에 갈 때도 흰옷을 입는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주한스리랑카대사관, 스리랑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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