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투어리즘에 뛰어들다
‘불타는’ 투어리즘에 뛰어들다
  • 천소현 기자
  • 승인 2020.11.0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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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감독 고재열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다들 탈출을 생각할 때,
‘다 주연이 되는’ 여행을 꿈꾸며 나타난
대한민국 여행감독 1호.

사람들을 꼭 데려가고 싶게 만들었던 코카서스 산맥의 카즈베기산. 다음 해 첫 단체 여행으로 돌아갔다 Ⓟ이승무
사람들을 꼭 데려가고 싶게 만들었던 코카서스 산맥의 카즈베기산. 다음 해 첫 단체 여행으로 돌아갔다 Ⓟ이승무
Ⓟ이승무
Ⓟ이승무

모 항공사의 광고 카피를 인용하자면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참 어려울 때 여행사업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저널리즘에서 투어리즘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섰는데, 보니까 투어리즘 동네가 활활 불타고 있는 것. 이러다간 남아나는 게 없겠구나 싶긴 한데, 다시 넘어오지는 않기로 했다. 다 타고 나면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보일 것 같더라.


한가하게 불구경 타령이냐고는 못하겠다. 피해 당사자 아닌가.

몇 해 전부터 개인적으로 소모임 여행을 기획해 오다가 재직했던 <시사인>의 이름으로 2018~2019년에 모객 여행을 진행했었다. 올초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만들어 보려 했던 건데, 3월의 쿠바 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귀국해 보니 국내 확진자가 3,000여 명대로 늘어나 있더라.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다행히 회사에서 스타트업 모형을 제안해 주었고, 반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가능성을 타진했다.

타진 결과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모색 중이다. 그렇다고 마냥 회사에 부담을 줄 수는 없어서 9월에 사표를 내고 정리했다. 2000년부터 20년 정도 했으니 기자직에 대해서는 할 만큼 했다. 회사도 나한테 할 만큼 했고. 9월에 ‘재미로재미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했고, 산하 연구소 개념으로 ‘트래블러스맵’이라는 여행자플랫폼을 육성 중이다. 하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거다.

2017년 몽골 올레 걷기 ©김진석
2017년 몽골 올레 걷기 ©김진석
코로나가 종식되면 몽골 초원에도 다시 사람들을 데려갈 예정이다 ©김진석
코로나가 종식되면 몽골 초원에도 다시 사람들을 데려갈 예정이다 ©김진석

20년 기자 생활이라…. 어떤 기자였나.

정치, 문화를 주로 담당했는데 늘 사모임을 만들던 기자였다. 2002년 ‘오프더레코드’라는 기자와 취재원의 사모임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사모임을 주도했다. ‘재미로재미연구소’도 그중 하나였다. 김태호PD, 탁현민, 변희재도 그때 같이 모였던 사람들이고, 지금은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몇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편안한 모임이었다. 그러다 2007년에 언론사 파업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투사가 됐다. 월급이 없어 생활비도 못 줬는데, 그해 4월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퀴즈 영웅이 됐다. 상금 2,000만원에서 세금 털고, 생활비 보태고, 500만원은 <시사인> 창간 기금으로 내놓았다.

항상 SNS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독설닷컴’이 시작이었나.

블로그 ‘독설닷컴’은 지금까지 누적 방문자가 2,600만명 정도 된다. SNS가 활발해지면서는 전성기에 트위터 팔로워가 30만명, 페이스북 팔로워가 4만7,000명 정도였다. 자연스레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게 됐다. 2011~2021년 사이에 SNS로 사람들을 모아 재미있는 일, 공익적인 일을 하나씩 했는데, 산책콘서트는 산책 코스 중에 버스킹을 관람하는 프로젝트였고, 기적의 책꽂이는 3만3,000여 권의 책을 모아서 기증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때 책을 날랐던 기억이 난다. 늘 뭔가 판을 벌이고 일을 만든다.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어 주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우는 플랫폼을 만드는 성향이 강하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다. 돌아보면 이미 DNA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고향 영광에서 소년 고재열의 방은 언제든지 자고 가도 되는 동네 사랑방이었고, 한 번은 친구들을 꼬셔 서울 구경을 시켜 준다고 노령산맥을 넘으려 나섰다가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있다. 

조지아에서의 트레킹. 여행은 흥미로운 인연을 만들어 준다 Ⓟ이승무
조지아에서의 트레킹. 여행은 흥미로운 인연을 만들어 준다 Ⓟ이승무
태안 백리포. 단체여행을 이끌면서도 혼자만의 순간을 즐긴다  ©고재열
태안 백리포. 단체여행을 이끌면서도 혼자만의 순간을 즐긴다 ©고재열

 

그 소년이 커서 ‘여행감독 1호’가 된 거네.

2016년 조지아 여행 출장에서 현지 여행 전문가와 연이 닿은 것을 계기로 코카서스 여행을 추진했는데, SNS 홍보만으로도 2~3일 사이에 37명이나 신청했다. 항공을 각자 예약하는 조건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후 만나게 된 여행 전문가들과 일본 사케 투어 등 몇 가지 특색 있는 여행을 기획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2018~2019년에는 <시사인>의 이름을 걸고 코카서스, 아프리카, 캄차카반도, 야쿠시마 트레킹 등을 진행했는데, 그러면서 여행자와 여행업에 대해 많이 배웠다. 50대로 미뤄 두었던 여행감독의 꿈을 앞당겨, 기왕 하려면 지금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전에는 여행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감독이 적성이더라.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게 ‘트래블러스랩(Traveller’s Lab)’인가?

맞다. 올해 상반기에 여행동아리 개념의 여행자플랫폼을 조직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해외여행이라면 수익을 낼 자신이 있었지만, 국내여행은 돌파구가 작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무인도 캠핑부터 한예종과의 콜라보로 진행한 예술여행 등 국내여행을 15회 정도 진행했다. 적게는 15명, 많게는 30명 정도였는데, 실내가 부담스러워 주로 캠핑과 트레킹을 했다. 코로나가 더 심해질 때는 여행과 관련된 소모임을 만들었다. 트레킹 소모임, 캠핑 소모임, 문화예술 소모임 등이 21개로 늘었다. 이들을 위한 원데이클래스도 15회 정도 진행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개인이 여행 관련해서 나보다 많은 시도를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참여한 분들의 면면이 남다르던데, 고 기자의 지원군들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고, 점차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현재 후원회원이 100여 명, 신청 의사를 밝힌 예비회원이 1,000여 명 정도다. 구체적인 회원 특전이나 운영방안을 고심해 내년에는 모두 회원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30대에서 50대까지를 함께 여행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몽골 여인이 권하니까! 여행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김진석
몽골 여인이 권하니까! 여행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김진석
‘상공경도’라는 이름의 무인도에서 소년처럼 폴짝 ©고재열
‘상공경도’라는 이름의 무인도에서 소년처럼 폴짝 ©고재열

고재열 여행감독의 여행은 무엇이 다른가.

기존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다시 조합해 격조를 높인 수제 패키지여행을 표방한다. 우리 세대가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여행상품보다 10% 비싸게 책정하되, 그 이상의 만족을 주는 여행이 될 거다. 결국 취소되긴 했지만,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 트레킹을 기획할 때 세계 민속음악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탈리아 북부 음악 이야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요리를 배운 셰프의 이탈리아 북부의 요리와 식자재 특성 등 그 여행을 풍부하게 해 줄 장치가 다 있었다. 이런 여행을 통해 개개인의 여행감(感)을 되살리고, 능동적인 여행자로 살 수 있게 돕고 싶은 것인데, 트래블러스랩을 통해 서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 아주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도록 조합하고 튜닝해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의 미래가 흐릿하다. 앞날이 보이나?

계속 마스크를 아가미처럼 쓰고 다녀야 하는 시대라면 나도 답이 없다. 하지만 바이러스니까, 어느 정도 정복되지 않겠나. 언택트 시대일수록 여행동아리는 사람들의 쉼터, 숨을 구멍,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너무 강한 연대가 싫어서 취미 그룹을 안 가려고 하는 사람들, 일은 잘 해서 성취를 이루었는데 같이 놀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여행동아리에서 어울려 노는 법을 배우고, 자기희생을 통해 역할을 찾으며 재사회화되는 기능이 있을 것 같다. 내 여행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유지, 보수 정도만 하지 않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베풀게도 된다. 그게 곧 투자다. 그래서 더 풍성해질 수 있다.

여행감독 1호의 사람 투자는 어떤가.

여행감독이 뭐, 딱 정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대략 10호쯤 있다. 여행 전문가, 여행작가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모임 안에서 역할을 갖는다. 여행감독의 일이 본질적으로 기자와 비슷하더라. 인터뷰도 섭외가 51%이듯, 결국 섭외다.

원하던 일을 시작한 건데, 행복한가?

음…, 일상은 행복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 아닌가. ‘아, 지금 출근해서 너무 행복해’, 그러진 않으니까. 나는 여행이야말로 구체적으로 행복을 쟁취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이 남들이 재미를 느끼는 걸 보고 나도 재미를 느끼는 거니까,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행복을 쟁취하는 것을 보면 나도 행복하다.

진짜 그게 다라고?

물론 불행한 부분도 있다(웃음). 사람들의 안 좋은 부분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름 방법을 찾았다.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한 ‘분인(分人)’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은 나눌 수 없는 존재(individual)가 아니라 나뉠 수 있는 존재(dividual)라는 것. 혹시 나랑 안 맞아도 인격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의 ‘분인’ 정도만 공유하기로 했다. 여행 동행으로 안 맞는 사람이라고만.

고재열 개인의 여행은 어떤가.

여행감독을 자처하면서 보니까, 여행자로서 3가지가 부족했다. 첫째, 배낭여행을 안 해 봤다. 둘째, 혼자 하는 (출장 말고)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셋째, 남미에 못 가 봤다. 이 세 가지를 한 방에 해결하는 ‘남미 혼자 배낭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막혔다. 지금 기획해서 진행하는 여행들은 다 단체여행이지만, 내가 한눈팔 시간이 있을 때, 가장 짜릿하다. 구조가 잘 짜여서 나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니까. 

여행자플랫폼 모형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왼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진석
여행자플랫폼 모형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왼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진석

 

재미로재미연구소는 언제까지 할 일인가?

죽을 때까지 할 일이다. 아는 미술가가 이런 말을 하더라. “고 기자님이 여행자플랫폼을 만드셨으니, 저는 죽을 준비를 할 수 있겠네요”라고. 우리 여행에 자기 죽음을 의탁할 수 있겠다고.

여행과 죽음이라….

그분 어머니가 고급 요양원에 계시는데, 고급이긴 해도 인간관계가 없는 곳에서 엄마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더라는 거다. 우리 동아리에서 수년 내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한 칸 정도를 빌려서 여행할 수 있다 치자. 그러면 아주 먼 모형으로, 크루즈 한 층 정도를 빌릴 수도 있지 않겠나. 그 배가 영원히 다닐 수도 있겠지. 각자 원하는 일정으로 합류하고 빠지고, 관계를 맺고, 그러다 아프면 죽을 수도 있을 거다.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있다가 죽는 거다.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그림이 그분 입에서 나오더라.

끝으로 홍보 기회를 주겠다.

개인이 여행의 영감이나 정보를 얻는 것은 여행작가로부터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이 어울려서 하는 여행에서 시너지를 얻고 싶다면 트래블러스랩이 유용하다. 진짜 괜찮은 여행, 진짜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줄 자신이 있다. 10~11월에 ‘명품 한국 기행’ 3회를 베타 테스트로 진행할 예정인데, 트래블러스랩 회원이 되면 실비로 참가할 수 있다. 3박 4일에 99만원. 고가지만, 그게 다 원가인 ‘명품’ 여행이다. 

 

*여행감독 1호 고재열 20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0년 9월 ‘재미로재미연구소’의 대표여행자 겸 여행감독이 됐다. 현재 ‘트래블러스랩’이라는 여행자플랫폼을 운영하며, 다양한 여행과 소모임, 강의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poisontongue.tistory.com 인스타그램 kojaeyoul

 

글 천소현 기자  사진제공 고재열, 김진석, 트래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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