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지평선, 김제 벽골제 생태농경원
여행의 새로운 지평선, 김제 벽골제 생태농경원
  • 천소현 기자
  • 승인 2021.07.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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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생태관광 | 김제

김제의 논습지를 재발견했다. 벼를 키우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고, 논은 사람만을 위한 땅이 아니다. 태양은 물론이고 땅, 물, 바람과 꼬물거리는 곤충까지, 온 자연의 일이다.  

둠벙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둠벙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논으로 떠나는 여행  


6월의 들판은 물 오른 초록. 모 심은 자리가 까슬까슬 했다. 농경문화의 자부심이 뿌리내린 김제는 과연 드넓은 평야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논이 넓으니, 많은 물이 필요할 수밖에.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하면 김제 벽골제가 따라 나오는 건 주입식 교육의 힘(?)이다. 벽골제는 삼한시대(백제 비류왕 27년)에 조성된 저수지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컸던 저수지가 바로 김제 벽골제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의 일이다. 벽골제는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지만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 제방이 무너져 버렸다. 이로 인해 서해 조수가 밀려들자 나루터를 만들었다가 인근에 마을이 생기면서 갯다리(포교)를 놓았다. 지금 벽골제에는 수문과 제방만 남아 있고, 그 터에는 벽골제관광단지가 들어섰다. 매년 농경문화축제인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리는 무대가 이곳이다. 

벽골제 옆 원평천 하중도는 생태농경원이 됐다
벽골제 옆 원평천 하중도는 생태농경원이 됐다
벽골제의 전설이 용으로 남았다
벽골제의 전설이 용으로 남았다

포교가 가로지르는 하천은 동진강 지류인 원평천인데, 원평천에는 하중도가 하나 있다. 지금은 다리가 연결되어 육지와 다를 바 없지만, 예전에는 배를 타고 오갔던 곳이다. 땅이 비옥하니 마을(포교마을)이 들어서고 농사를 지었는데, 상류에 댐을 만든 후 종종 방류시 범람 피해를 보는 일이 생겼다. 한때는 50여 가구에 이르렀다는 마을은 2016년 하중도 밖으로 이주했고 섬에는 논만 남았다가, 이후 벽골제농경생태원이 조성됐다. 논으로 떠나는 생태여행이라니, 이런 걸 두고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하는 게 아닐까. 

논습지는 보존해야 할 생태적 자원이다
논습지는 보존해야 할 생태적 자원이다

●둠벙둠벙, 땀 닦고 신 털고  


벽골제농경생태원 방문자센터에서 인사를 나눈 최명애 에코매니저도 어린 시절 하중도 마을에 살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농가 주택이 있던 천변엔 야생화군락지가 조성되고, 높게 다져진 둑길에는 논습지 탐방 코스가 생겼다. 길을 걷는 동안 그녀가 논습지의 가치를 설명했다. 대표적인 습지식물인 벼를 심으며 정착한 것이 7,000년 전쯤 인류 농경문화의 시작이었다. 지금 농업은 많은 부분 기계화되었지만, 노령화된 농촌주민에겐 여전히 고된 일이고,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한국의 농경지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논습지의 감소는 식량자원의 문제뿐 아니라 생태적인 손실이기도 하다는 것. 습지는 물을 저장하는 홍수조절 기능, 탄소를 저장하는 기후 조절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기후 온난화는 수자원 고갈로 이어질 것이고, 메마른 땅은 모든 생명에게 위협적인 환경이다. 

둠벙 속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우렁이와 치어
둠벙 속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우렁이와 치어

생태탐방은 그리 넓지 않은 하중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볼거리가 넘친다. 지칭개, 뽀리뱅이, 둑새풀 등 야생화 이름을 맞추고, 잘 익은 오디까지 따 먹느라 시간이 꽤 지체됐다. 그래도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지만 설명만으로는 와 닿지 않으니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른바 ‘논과 둠벙 탐사대’의 출동이다. 둠벙에는 과연 무엇이 살고 있을까? 뜰채를 넣었다가 가만히 들어 올리자 우렁이, 붕어 치어, 올챙이, 물자라가 쉽게 채집된다. 부드러운 솔로 살살 털어내 그릇에 옮겨 담아 관찰한다. 손가락 두어 마디 크기의 거머리도 발견했다. 오래전 대학생 농활에서 피를 나눈 사이지만, 썩 반갑지는 않았다. 모두 다시 거두어 둠벙에 방류하는 것으로 탐사대의 임무를 마쳤다. 

거미를 품은 도깨비가지
거미를 품은 도깨비가지
잘 익은 버찌
잘 익은 버찌

도로를 건너 하중도의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나지막한 솔숲 언덕이 솟아 있는데, 이름이 조금 특이한 ‘신털미산’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 신 털기와 상관이 있단다. 1415년 벽골제 제방 수리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이 이곳에서 짚신의 먼지를 털거나 해진 짚신을 버린 것이 산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애환이 느껴지는 전설이다. 한자로는 초혜산(草鞋山)이다. 

짚신을 털어 언덕이 되었다는 신털미산
짚신을 털어 언덕이 되었다는 신털미산

털미산 아래 공터가 옛 되배미라고 추정되는 자리다. 둘레가 40km에 이르렀다는 벽골제를 보수하기 위해 많게는 연인원 32만명이 동원되기도 했는데, 되배미 논에 인부를 세워 놓고 꽉 차면 500명으로 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말하자면 ‘되배미논’은 사람을 세는 도량형, 즉 ‘되논’이었던 셈이다. 좀 떨어진 곳의 ‘제주방죽’이라는 지명은 제주도와 완도에서 온 인부들이 제방 작업을 한 구간이라 그리 불리게 되었단다. 

지푸라기로 계란꾸러미 만들기. 쉽지 않다
지푸라기로 계란꾸러미 만들기. 쉽지 않다

신털미산 초입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푸라기 한 단씩을 배급받았다. 하룻밤이 꼬박 걸린다는 짚신까지는 무리이고 간단하게 계란꾸러미를 만들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인데, 쉽지가 않다. 매듭을 단단하게 지으려면 지푸라기를 물에 충분히 적시는 것이 관건인데, 마음이 급하니 뚝뚝 끊어지기만 한다. 인내심을 총동원해 요령껏 완성한 계란꾸러미를 들고 하산이랄 것도 없는 내리막길. 김제에서 배운 이름들을 새끼 꼬듯 꿰어 본다. 김제의 옛 이름 벽골군(碧骨郡)은 ‘벼의 고을’ 볏골에서 온 이름이고, 지금 부르는 김제(金堤)는 금(金)에서 유래한 것인데, 사금이 채취되었기 때문이란다. 어느 쪽이든 황금 들판, 영락없는 금싸라기 땅이다. 신을 터는 대신, 뭐라도 묻혀 가야 하는 게 아닌지, 잠시 망설여졌다.  

ㆍ김제 벽골제 생태농경원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109-8  

ㆍ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21

ㆍ벽골제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전라북도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www.jb-ecotou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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