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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반려할 해변 하나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1.11.01 06:55
  • 수정 2021.11.25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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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 ‘첫 차 구입 썰’을 풀었더랬습니다. 회사에서 굴리던 자동차가 매물로 나온 김에 오랜 뚜벅이 생활을 정리하고, 오너드라이버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사 다 때가 있다는데 차를 살 호기였는지는 몰라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운전대 앞에서 편해질 즈음,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코시국’에 처하게 될 것을요. 반려동물도 없는 제게 애써 산책시킬 반려차가 생긴 것입니다.

어쨌든 반려하던 차를 보냈습니다. 차를 팔았다는 소식에 지인의 첫 마디는 “기후 위기 대응?”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걸로 합시다! 또 다른 지인의 반응은 “그럼 이제 반려해변을 키워 봐”였습니다. 왜들 이러시나요? 아무튼, 제가 늦깎이로 차를 구입하고, 운전을 익히고, 다시 파는 2년 동안 변한 세상의 ‘대세’가 이러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 ‘고속도로 입양 캠페인’이 성공하면서 ‘해변 입양 제도(Adopt-A-Beach program)’로 이어졌고, 그게 2020년 한국에 상륙했다는 겁니다. 

‘해변 입양’은 한국으로 와서 ‘반려해변’이 되었습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부터 시작해 2년 동안 선발된 반려인들이 해변을 관리하는 중입니다. 해변에 가면 일단은 비치코밍(Beachcombing)부터 한 바퀴 돌고 시작한다는 누군가가 퍼뜩 생각나네요. 이걸 달리면서 하면 ‘플로깅(Plogging)’이고, 제주도의 어느 활동가는 ‘봉그깅(줍는다는 뜻의 ‘봉그다’와 ‘조깅’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더군요.

어쨌든 다 차와는 관련이 없는 활동입니다. 걷고, 뛰고, 허리 굽혀 집어 올리는 신성한 몸의 헌신입니다. 다시 뚜벅이가 되었으니 자연과 몸소 반려하며 기후 위기에도 보탬이 되라는 심오한 충고들이었나 봅니다. 최근 열리기 시작한 국경 너머로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들이 많습니다. 단풍 숲이든, 바다든, 국경 너머 어느 휴양지든, 반려하는 마음으로 아끼며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추억뿐 아니라 쓰레기도 ‘줍줍’하는 것이 여행자의 뉴노멀입니다. 

P.S. 잘 가요. 나의 첫(어쩌면 마지막) 차. 자주 못 놀아 줘서 미안하고, 백미러 깨뜨린 것도 미안합니다.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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