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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그리스인의 피에는 호머의 서사시가 흐른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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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의 피에는 호머의 서사시가 흐른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20년간 바다를 떠돌았던 오디세우스. 그는 용기와 지혜를 갖춘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남편을 기다리며 수많은 구혼자들에 맞서 가문과 지조를 지킨 강한 여인 페넬로페가 있다. 그리스는 바로 이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나라다. 그리스를 특징짓는 것은 이러한 역사 신화적 정신이며 그리스인의 내면세계는 과거를 살아간 이들의 감정과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무의식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들은 역사적이고 신화적 영웅이나 위대한 학자의 이름을 본떠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다. 영웅의 이름은 도시와 거리의 이름에서도, 심지어 애완동물의 이름에서도 발견된다. 정치가들은 ‘콘스탄틴’이나 ‘안드레아스’처럼 모두 황제와 성인, 장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이름들은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할머니에게서 손녀에게로 끊임없이 대물림되어 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정교회의 교회에서도 옛날 사원과 수도원에서 행해지던 의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성인들은 다신교 시절의 영웅과 신이 절반쯤 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상식이 아무리 풍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인의 이러한 내면을 인식하지 못하면 진실로 그들과 지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격렬한 에너지와 만성적 무정부 상태의 세계

그리스인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은 바로 이들이 말하는 언어이다. 그리스어 속에는 광범위하고 왕성한 인간 정신이 드러난다. 그리스인은 북유럽인처럼 조용하고 침착하며 냉담하지 않다. 또한 몸짓 언어는 그리스인의 주요 언어이다. 몸짓 언어는 정확하고 지적이며 고양된 감정까지도 전달하는 효과를 가진다. 유머, 쾌활함, 익살이 풍부하지만 그것은 진지한 유머이며, 합리적인 쾌활함이자 지적인 언어유희이다. 눈과 입술, 이마와 입, 머리와 상체, 손과 팔, 발과 다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그리스인의 몸짓을 통해 상대방은 그들의 감정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작가 로렌스 듀렐은 “어떤 그리스인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발을 까딱거리거나 무릎을 움직이거나 혀를 끌끌거려 소리를 낸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심지어 그리스인에게는 근심을 없애 주는 묵주조차도 단지 손가락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무모함과 추진력에서 보듯, 그리스인은 분명 격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레이 페르모는 그리스인의 열정적이며 개인주의적인 기질을 두고 ‘만성적 무정부 상태의 세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들이 예술과 과학을 비롯해 인간의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영역에서 이뤄 낸 모든 것들이 이러한 기질 때문에 가능했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 전체 인구의 단 4분의 1만이 그리스인이었지만 이들은 결코 명목상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던 터키를 위해 봉사하지 않았다. 그들이 위대한 식민 국가, 대규모 상업 계층, 영웅적 항해인, 가공할 군사 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유로운 성! 그러나 누드는 No!! 

그리스인에게 성이란 활기를 불어넣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때론 수줍고 때론 요염한 것이기도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처럼 위선의 허울을 덮어쓰고 있지는 않다. 성이란 즐기는 것이지 변명하거나 미안해 할 일이 아니며 즉흥적인 것이지 소심하거나 비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미국인이나 영국인처럼 위선을 떨거나 고상한 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편안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진지하면서도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성을 대한다.

하지만 누드에 대해서는 그리스인도 좀 점잔을 떨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리스정교회에 의해 강화된 일종의 고정 관념 탓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리스인이 샤워할 때 속옷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누드는 일반적으로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리 엄격히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정교회는 여성이 소매 없는 셔츠, 짧은 치마, 목선이 깊게 파인 옷, 헐렁한 바지 등을 입고 교회에 오는 것을 금지한다. 사람들이 잘 기억 못하는 사항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노골적으로 그리스 교회를 지지했던 콜로넬의 1967년 쿠데타가 미니스커트에 대한 거부감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남성의 턱수염과 긴 머리에 대한 거부감도 포함되어 있다. 

고대에는 각종 운동 경기가 나체로 진행되었고 여성의 참여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행사였다. 신이 그들의 몸을 만들었고 따라서 운동 경기는 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식사를 하며 여신 데메테르를 축도하고 술을 마시며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사냥에 나가며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그리고 섹스를 하며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축원하듯이 말이다. 


* 큐리어스 시리즈는 도서출판 휘슬러에서 출간한 '큐리어스 시리즈'에서 발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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