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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 톡 쏘는 달콤함으로 뭉친 이상한 나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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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작지만 결코 밋밋하지 않은 나라다. 이 좁은 나라 안에 모인 개성 넘치는 사람들 가운데는 색소폰을 발명하고, 스머프와 탱탱이라는 만화 캐릭터를 탄생시킨 사람과 영원한 은막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있다. 벨기에 사람들은 오줌싸개 동상에 몇백 벌의 옷을 갖다 입혀 나라의 명물로 만들어 놓는가 하면, 고기라면 말이나 악어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의 독특한 취향 덕분에 비 내리는 작은 천국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맞아요! 저게 바로 벨기에식 사건이에요!

황당한 새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곳 사람들이 터뜨리는 소리다. 그들 말로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다. 1999년 10월의 어느 유명한 날에 일어난 두 사건을 소개해 보겠다. 헤드라인 뉴스에 12살짜리 소년이 등장했다. 브뤼셀의 전차 박물관에 몰래 들어간 소년이 전차 하나를 몰고 나왔던 것이다. 어느 전차 운전사는 인터뷰에서 아이의 운전 솜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아이가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 아주 꼼꼼히 살펴봤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아이가 벌인 난장판으로 부모들이 받게 될 청구서는 아마……. 

그날 오후에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 에노(Hainaut) 주의 프라메리(Frameries)라는 마을에서 겁 없는 도둑들이 학교 지붕을 홀랑 벗겨 간 사건이다. “그래요. 나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농담인 줄 알았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교장이 한 말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도둑들은 대담무쌍하게도 지붕의 함석판 조각들을 몽땅 벗겨 가 버렸다. 온갖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을 테지만 아무도 경보를 울리지 않았고 도둑들은 금속 값으로 수천 프랑을 손에 쥐게 되었다. 기자는 재미난 듯이 이런 말로 보도를 마쳤다. “학교 관계자는 교문 개방 방침을 지붕 개방 방침으로 확대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초콜릿이 뭐길래?!

벨기에 국민은 1년에 1인당 거의 8kg의 초콜릿을 먹어치운다. 사실 사방에 초콜릿이 널려 있는 것을 볼 때 그 이상 먹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슈퍼마켓 계산대에는 미니바들이 손길을 유혹하고, 수많은 벨기에 가정들은 슬쩍슬쩍 깨물어 먹을 초콜릿 코트도르(Cote d’Or 황금 뼈다귀)를 준비해 놓고 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막대 초콜릿이나 네모진 초콜릿 조각이 단짝으로 등장한다. 

닥치는 대로 초콜릿을 먹어 치우는 것 같지만 선물이나 접대용 초콜릿을 살 때는 꼭 시내 중심가를 가득 메운 전문 초콜릿 매장을 찾는다. 벨기에인들은 낱개로 포장되어 한번에 깨물어 먹을 수 있는 크기의 최상품 초콜릿을 프랄린(pralines, 일종의 아몬드 캔디)이라 부르는데, 엄밀히 말해서 프랄린 맛이 나지는 않는다. 이 이름은 1912년 초창기 초콜릿 애호가 프랄랭(Praslin) 백작을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프랄랭 백작의 스위스인 할아버지 장 노이하우스(Jean Neuhaus)는 1857년 벨기에 브뤼셀의 휘황찬란한 쇼핑몰 갈리생테베르(Galeries Royales St. Hubert)에 초콜릿 상점을 세웠다. 그 매장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초콜릿은 국민적 자부심인 동시에 국민들 사이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883년에 설립된 코트도르는 벨기에 최대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초콜릿 브랜드이다. 영국의 캐드버리나 미국의 허쉬 초콜릿에 해당하는데 벨기에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펄쩍 뛴다. 이 기업이 다국적 대기업 크라프트 제이컵스 쉬샤르(Kraft Jacobs Suchard)에 매각되었을 때의 국민적 상실감은 실로 엄청났다. 그것은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외국에 넘겼을 때 영국 국민이 느낀 허탈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초콜릿이 무엇인가? 이런 용어상의 정의를 놓고 정치적으로 실랑이를 벌인다면 우습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벨기에에서는 이 다툼이 주요 뉴스거리이다. 문제는 EU의 정의와 전통적인 벨기에의 정의가 다르다는 데에 있다. 최근까지 벨기에인들은 100퍼센트 코코아 수지를 사용한 제품만 초콜릿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제 와서 EU가 초콜릿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가 유럽연합 내에서 통일돼야 한다는 엉뚱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예로부터 코코아 수지를 희석해 사용해 왔던 영국 초콜릿 제조사들의 압력으로 앞으로는 초콜릿 제품에 식물성 기름의 첨가를 5퍼센트까지만 허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많은 벨기에 제조사들은 과거의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 큐리어스 시리즈는 도서출판 휘슬러에서 출간한 큐리어스 시리즈에서 발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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