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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 정호승 시인과 함께 떠난 문학기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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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변덕스러운 봄날의 부석사가 더욱 눈부시고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의상대사를 사랑하던 ‘선묘’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이곳을 ‘그리운 부석사’의 저자이자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정호승 시인과 함께 다녀왔다.

지난 4월15일 교보문고와 KTX관광레저가 함께하는 문학기차는 180명의 참가자들을 태우고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작년 소설가 김훈, 윤대녕씨에 이어 올 해의 첫번째 주자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로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 정호승. 기차 안에서도, 부석사에서도, 선비촌과 소수서원에서도 정호승 시인은 그의 주위에 몰려든 참가자들에게 시의 창작 배경과 의미를 살뜰하고 정성스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중 ‘그리운 부석사’를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언젠가 해인사 사보에 실린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그리워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큰스님의 말씀에 정호승 시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말은 부처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아, 얼마나 사랑하면 죽어버릴까. 죽음의 무게만큼 진지하고 절실하게 매일매일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라고 받아들이고는 이 말씀을 언젠가 자신의 시에서도 풀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40대 초반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1년여 동안 일탈감으로 방황하던 때, 부석사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당간지주(幢竿支柱) 앞에 서 있던 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저 여인은 누구를 기다릴까.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시적 상상력으로 이 시를 짓게 됐다고 설명한다. 


ⓒ트래비

1. 부석사 3층 석탑 
2,3.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부석사의 곳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정겨운 모습


의상대사와 선묘의 사랑 깃든 곳

정호승 시인이 부석사에서 그리움과 사랑에 착안해 시를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임금의 명으로 ‘고구려의 먼지와 백제의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운 아름다운 사찰이다. 

서기 699년, 의상이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을 때 들어간 곳이 산동 반도의 북쪽 등주. 그가 하룻밤 신세를 진 집에는 아름다운 처녀 선묘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의상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불심이 강해 여자를 멀리하는 의상과 끝내 헤어지게 된다. 의상은 화엄경을 설법하는 지엄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10년간 삼장을 배운 뒤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상이 신라로 돌아가기 위해 등주 항구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선묘는 자기가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 주고자 바닷가로 갔으나 이미 의상을 태운 배는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의상이 떠나자 선묘는 용이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의상이 귀국 후 처음 세운 절은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이고 그 다음이 태백산 근처 봉황산 아래 지은 부석사이다. 문무왕의 부름으로 경주에 내려가 명산대천에 사찰을 지으라는 분부를 받고 절터를 정한 곳이 곧 부석사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다른 종파의 불승들이 크게 반발했다. 의상이 마음속으로 부처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나타나 3일 동안 공중에 머물면서 반대하는 불승들을 내리칠 듯 위협하니 그들은 두려워 달아나고 마침내 새 절을 짓는 데 협조하게 됐다. 선묘가 바위가 되어 땅에 내려앉은 바로 그 바위를 ‘부석’이라 하고 선묘의 도움으로 지어진 이 절은 ‘부석사’가 되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앞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니 배흘림 기둥이니 하는 교과서적인 말들을 주어 담는 것은 찰나의 감동일 뿐이다. 반면에 이곳에 녹아 있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알고 본다면 용이 된 선묘 아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부석사가 조금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정호승 시인과의 대화

TLX 이벤트칸에서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품 낭독회’, ‘문학퀴즈대회’, ‘시노래 따라 부르기’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나 정호승 시인이 직접 독자의 궁금증에 답변을 주는 시인과의 대화 시간은 많은 참가자들의 호응이 있었다. 

Q.시의 하늘하늘한 감성과 아름다운 시어를 좋아하는데 현대시는 너무도 어렵다. 현대 시인들은 시를 좀 쉽게 써 주면 안 되는 건가?

A.예전에는 자연과 서정을 노래하는 것을 시라고 여겼을 정도로 예쁘고 소박하고 정겨운 이야기들이 가득했었다. 아무래도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삶도 어려워지고 있다. 시는 시인의 삶과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시는 읽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하는 게 맞다.

Q.천주교 신자라고 알고 있는데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A.그렇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내 시에는 절이 자주 등장한다. 20대 읽었던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운주사의 와불 부부 불상을 보고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큰 감명을 받았다. 물론 저렇게 누워 있는 데는 역사적인, 종교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내 나름의대로‘모든 것을 다 버리고 깨달음을 얻어 평화롭게 누워 있구나’ 하는 해석을 했다.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고 인간은 종교적 존재다. 각 종교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마다 배워야 하는 삶의 진리를 배워 나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광열차 타고 떠나는 색다른 여행

이번 행사를 위해 KTX관광레저(www.ktx21.com)가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관광전용열차’ TLX는 맨 앞 칸과 뒷 칸의 전망칸 2량과 이벤트칸 1량을 갖추고 있다. TLX는 무궁화호 특실 객차를 개조해 만든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관광전용열차다. 넓은 전망창과 카페칸,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지는 이벤트칸 등 갖가지 독특한 아이템이 가득한 열차는 단순한 교통 수단을 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관광거리다. 

열차는 기관차와 발전차를 제외하고 총 5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석은 198석. 1호차 객차는 별실 개념이다.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6명 가량 앉을 수 있는 편안한 소파가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다.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 가족이나 소그룹 단위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적합하다. 이 칸을 선점하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일반실은 기존 열차 좌석과 비슷하지만 앞뒤 공간이 훨씬 넓고 객차 중간마다 유리 파티션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고 쾌적하다. 

카페칸은 4인용 원목 탁자가 마련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차 한잔의 운치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교보문고는 KTX관광레저와 함께 두달에 한번 유명 저자와 함께하는 문학기차 여행을 진행한다. 교보문고 북클럽회원은 50%할인된 가격에 참여가 가능하다.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며 오른다


ⓒ트래비

1. 부석사의 맨 꼭대기에 올라 야트막한 돌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며 전경을 감상하는 참가자들
2. 부석사 올라가는 길
3. '부석' 옆에 모셔진 삼존불



부석사 일주문 바로 앞에는 정호승 시인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불전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깃발의 역할을 하는 당간지주의 당간은 사악한 것을 쫓아 낸다는 의미이고 불교 종파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사찰의 문전에 세워지기도 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무량수전(국보 18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등 여러 국보급 보물과 문화재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좁다란 비탈길이 사다리처럼 내려와 있어 한 층 한 층을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맨 아래 하품하생(下品下生; 지옥)부터 맨 위 무량수전이 있는 상품상생(上品上生; 극락)까지 9개(극락왕생의 아홉 품위인 구품구생을 의미한다)의 축대 위에 놓인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길을 오를 때에는, 사과로 유명한 고장답게 봄에는 새하얀 사과 꽃이 눈처럼 휘날리고 달콤한 사과 향기에 기분 좋게 젖어들 수 있다. 가을에는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뒤덮고 겨울에는 눈꽃으로 동화 속 마을이 연출된다. 

일주문, 천왕문, 안양문을 지나 이 길을 즐거운 등산을 즐기듯 올라 무량수전 앞 석탑 앞에 서면 시야가 확 트인다. 봉황산 중턱에 파묻힌 부석사와 주변의 산세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녀 무량수불로도 불린다. 이 ‘무량수’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 곧 무량수전이다. 교과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배우는 것은 배흘림기둥을 가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됐다는 무량수전의 프로필이다. 그럼 부석사 무량수전의 불상은 어이하여 법당 정면이 아닌 왼쪽 벽에 앉아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무량수전이 서방 극락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의 법당이기 때문에 불상이 서쪽을 보도록 배치된 것. 또한 무량수전 정면 중앙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기도 하다.

무량수전의 왼쪽에는 ‘浮石(부석)’이라고 새겨진 ‘선묘’와 ‘의상대사’에 얽힌 넓적한 돌이 바위 위에 떠 있고, 오른쪽 언덕에는 선묘각이 있다. 바로 이 부석과 선묘각이 부석사와 사랑을 연관시키는 그 이유다. 

★ 주변 볼거리

영주는 사과의 고장으로 새하얀 사과 꽃을 가장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자락에 자리잡은 영주는 일교차가 심하고 독특한 토질로 인해 당도와 향이 뛰어난 사과가 자라기 때문에 이곳에 들른다면 반드시 사과를 맛보도록 하자. 풍기에서 부석사 가는 길(931번 지방도)과 영주에서 부석사 가는 길(935번 지방도)은 사과밭이 많아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스승의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를 두고, 스승의 그림자마저 밟을까 하여 학생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는 그 뒤로 배치했고 건물 높이도 일신재보다 한 단쯤 낮게 둠으로써 삶의 자세까지도 배우는 터전이 되었다. 

소수서원 옆에는 단종 복위 실패로 인해 참화를 겪어 불타 없어진 선비촌이 복원돼 있다. 누각, 기와, 초가집, 연못, 산책로 등 선비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의 피로는 전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소백산 풍기온천에서 푸는 것이 좋다. 유황, 불소 등 우리 몸에 좋은 물질이 온천수에 용해되어 있어 신경통이나 피부 미용에 탁월하다. 풍기 인삼 향이 짙은 사우나실이 인기다. 


* 취재협조 : 교보문고 www.kyobobook.co.kr 
                  KTX 관광레저 1544-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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