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도 -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

절 입구에는 거지들이 있다. 이들은 안마당으로 가는 통로 양쪽에 두 줄로 길게 앉아, 잔인하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시체처럼 머물러 있다. 신상은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표정으로 장님과 불구, 기형아, 나병 환자, 삭발한 미망인 그리고 법복을 입은 성직자들을 내려다본다. 차갑고 어두운 성소 안쪽의 신성한 기운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을 향해 내뻗은 이들의 손을 지나쳐 가야 한다. 이는 분명 또 하나의 시련이다. 반짝이는 비단 옷을 입은 우아한 인도 여인들은 참배에 앞서 몇 개의 동전을 무작위로 던져 주며 침착하게 이 의식을 행한다. 고통, 불공평, 그리고 무욕의 현장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이 장면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당혹스러울 정도의 비참함과 또 그에 대한 무관심 모두로부터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침착함의 철학적인 배경은 카르마에서 찾을 수 있다. 카르마는 ‘행동’과 ‘행동의 결과’ 두 가지 모두를 뜻한다. 카르마는 인도에서만큼은 중력의 법칙처럼 널리 퍼져 있다. ‘작용이 있는 곳에는 똑같은 반작용이 따른다’는 자연의 법칙처럼, 카르마는 이곳에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윤리 법칙으로 여겨진다. 카르마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은 그로 인한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를 따라다닌다. 카르마에 있어서 윤회는 필연적이다. 전생에 했던 행동이 현세의 행운을 보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현세의 행동은 내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힌두교인들은 궁술가의 유추법으로 이를 설명한다. 손에서 떠난 화살은 이미 제어할 수 없다. 이것이 과거의 카르마이고, 화살은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신들조차 이미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바꿀 힘은 없다. 궁수는 과녁을 향해 당겨진 화살과 아직 화살 통에 들어 있는 화살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즉, 현재의 행동과 과거의 행동에 의한 결과만을 통제할 뿐이다. 

교통신호, 주차장, 에스컬레이터까지도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 유독 바쁜 날에 신호마다 빨간 불에 걸렸고, 유일한 무료 주차장을 지나쳐 버렸으며, 상행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 올라가야 했다면, 인도인 친구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못한 일이 많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카르마는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힌두교도의 사상을 지배해 왔다. 그것이 변명이든 반성이든 아니면 우주의 본질에 관한 심도 있는 이해에서 온 것이든, 인도인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에 직면하면 어깨를 으쓱하며 ‘내 업보야’라고 말한다. ‘나쁜 일이 좋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공평해 보이는 일들도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르마에 따르면 현생에서 행한 좋은 일들은 내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숙명이나 신들의 변덕으로 인한 희생양이 아니다.

우주의 질서 안에 자기의 본분을 다 하라

힌두어로 ‘덕’을 뜻하는 다르마(dharma)는 ‘천리’나 ‘보편적인 정의’ 또는 ‘본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궤도 안에 있는 행성들조차도 자신의 본분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스바-다르마(Sva-dharma)는 양심처럼 개인의 도덕적 규약과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다르마는 ‘자신이 태어난 지위와 인생의 각 단계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르마는 카스트 계급과 나이,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즉 성직자가 해야 할 올바른 행동을 직조공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에는 일종의 역차별로, 카스트 계급에 따라 범죄에 대한 형벌이 정해져 있었다. 가장 높은 신분인 브라만이 도둑질을 하면 낮은 계층의 도둑보다 8배나 무거운 벌을 받아야 했다. 이런 상대주의적 특징 때문에 힌두교의 윤리 기준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통적인 가치란 관대함, 무욕, 진실성, 노인에 대한 공경심, 다른 생물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카르마와 다르마는 고대의 철학적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가장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이들을 자유롭게 적용하고 있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항상 카르마와 다르마를 인용한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우연의 일치는 전생의 업보에 대한 결과라고 설명하며, 영화 속 영웅들은 다르마를 실행하기 위해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 수많은 인도인들은 이것을 우주의 섭리라고 인식하고 있다. 


* 큐리어스 시리즈는 도서출판 휘슬러에서 출간한 '큐리어스 시리즈'에서 발췌, 연재합니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