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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가트

  • Editor. 최재원
  • 입력 2022.02.01 08:10
  • 수정 2022.02.03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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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화장터에서
염소는 젖을 먹이고, 소는 짝을 찾는다. 
바라나시에서 마주한 죽음의 현장은 삶의 현장이었다. 

Varanasi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 에 있는 도시다. 이곳은 과거 ‘빛의 도시’라는 뜻의 카시(Kashi)라고 불렸다. 인도 북부 갠지스 강 중류에 자리하며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로 여겨진다. 코로나 이전엔 연간 100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바라나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바라나시는 여행 그 이상의 감각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감각의 제국

끝없는 자극이 밀려든다. 보고, 맡고, 듣고 싶지 않아도 반응하게 된다. 인도 보통의 도시가 그렇지만, 바라나시의 미로 골목은 더욱 그렇다. 하늘을 볼 수가 없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 것이 하늘인데 시선은 하염없이 바닥을 향한다. 거리에 가득한 똥을 피하기 위해서다. 인상을 구기는 것도 한때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똥이 ‘장애물’처럼만 느껴지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밟더라도 내색할 수 없다. 맨발의 순례자 앞에서 호들갑을 떨기도 민망한 노릇이다. 장애물을 피해 대로변으로 나왔다. 쉼 없는 릭샤 경적과 뭔지 모를, 쏟아지는 소음이 고막으로 쏟아진다. 아니, 고막을 때린다. 아프다.

장작 위에서 타오르는 인간의 육신은 여느 포유류와 다를 바가 없다
장작 위에서 타오르는 인간의 육신은 여느 포유류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소음을 피해 숨어든 곳은 다시 골목길이다. 차라리 이편이 낫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똥, 개똥, 사람…. 아무튼, 종류도 모양도 각양각색인 게 슬슬 구경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후각은 적응의 감각 아니었던가, 구수한 냄새가 이제 정겹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소의 엉덩이가 귀엽다. 소꼬리가 왼쪽 엉덩이를 치면 파리가 산발한다. 소꼬리가 오른쪽 엉덩이를 치면 파리가 산발한다. 아, 저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인가. 넌덜머리 나던 풍경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똥은 똥이오, 사람은 사람이오. 소리는 소리인 것이라. 체념했고 즐거워졌다. 조금 더, 깊숙한 골목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에서 소와 마주했을 때의 비장함이란 바로 이런 것
좁은 골목에서 소와 마주했을 때의 비장함이란 바로 이런 것

●천국의 계단

바라나시에는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강이 흐른다. 힌디어로 ‘강가(Ganga)’로 불리는 이 강은 갠지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한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를 거쳐 벵골만으로 흐른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이자 갠지스 유역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숨을 거둔 뒤 화장한 골분을 갠지스강에 흘려보내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힌두교도들의 믿음 때문이다.


수십 개의 ‘가트’가 갠지스강을 따라 이어진다. 가트란 강변과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한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각각의 가트는 개인, 단체, 혹은 왕가의 사유물이다. 가트 밑에선 힌두교도들이 강물을 머리 위에 끼얹는다. 누군가에게는 더러운 물이지만 힌두교도에게는 죄를 씻을 수 있는 성수이다. 그들에게 가트는 계단이면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인 셈이다.


가트에서 종교적인 행위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목욕 중인 힌두교도 옆으로 사리를 입고 빨래를 하는 아낙네,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경전을 읽는 수행자, 짜이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보트왈라(보트를 모는 사람), 마사지를 호객하는 안마사,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노숙자,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소년까지. 천태만상 13억이 한데 모인 이곳은 힌두교도의 천국이자 인도의 삶이다.

아르띠 뿌자가 거행되는 다샤스와메드 가트 주위로 육지와 강을 가릴 것 없이 매일 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아르띠 뿌자가 거행되는 다샤스와메드 가트 주위로 육지와 강을 가릴 것 없이 매일 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죽음과 삶의 현장

새빨간 불꽃, 매캐한 연기, 거북한 냄새. 단언컨대, 이보다 강렬한 순간은 없었다. 뜨겁다 못해 타 버릴 것만 같다. 여기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몇백 년째 뜨겁게 타오르는 곳이 있다. 갠지스강 옆에 위치한 화장터,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다.

“람람 싸드야헤(라마 신은 알고 계신다)”, 상여꾼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망자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작별을 고하는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언젠가 걸어가야 할 가장 확실한 미래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은 약 3시간이 소요된다. 필요한 장작은 눈대중으로 보아도 몇백 킬로그램. 장작은 백단향 나무, 망고나무, 보리수나무 등으로 그 종류와 양은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빈민들을 위해 정부에서 합리적인 비용의 전기 화장터를 운영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정통 화장 방식을 고수하는 이곳을 찾는다. 화장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자는 그대로 갠지스강에 수장되기도 한다. 카스트 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도인에게 얽히고설켜 고인을 놓아주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돈이 그렇다.

이상하다. 하얗던 빨래가 점점 까매지는 기분이다
이상하다. 하얗던 빨래가 점점 까매지는 기분이다

한 노인이 망자 위에 쉴 새 없이 장작을 쌓는다. 유가족들은 그런 그들을 덤덤하게 바라볼 뿐, 누구 하나 눈물짓는 이가 없다. 힌두교도에게 죽음이란 고통스러운 윤회에서 벗어난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화장터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염소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발정난 소는 짝을 찾는다. 죽음의 현장은 삶의 현장이다.

갠지스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십 개의 가트는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갠지스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십 개의 가트는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흩어지는 연기처럼

갠지스강에 어둠이 내리면 모두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에 모여든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힌두교 창조의 신인 브라마가 10마리의 말로 희생제를 지낸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밤 갠지스의 여신에게 바치는 종교의식인 ‘아르띠 뿌자(Arti Pooja)’가 거행된다.

힌두교도에겐 성스러운 의식. 여행자에겐 바라나시의 하이라이트, 아르띠 뿌자
힌두교도에겐 성스러운 의식. 여행자에겐 바라나시의 하이라이트, 아르띠 뿌자

여행자에게는 바라나시 최고의 볼거리다. 아르띠 뿌자를 보기 위해 가트에는 물론이고 갠지스강에도 배를 탄 사람들로 가득하다. 과거에는 브라만 계급의 사제가 직접 의식을 집전했지만, 최근에는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집전을 한단다. 


아르띠 뿌자는 가트 변 기단에 일렬로 놓인 우산 모양의 차타리스(Chataris) 아래에서 시작한다. 의식을 진행하는 브라만은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즉 공간, 바람, 불, 물, 땅을 종소리와 램프의 연기, 뱀 모양의 불, 바람을 의미하는 부채 등을 이용하여 형상화한다. 뜻을 알 수 없는 만트라 외는 소리가 연기와 함께 하늘로 피어오른다. 천지를 진동하는 뿔피리 소리가 신을 향해 울려 퍼진다. 흐르는 강물을 닮았고 흩어지는 연기를 닮았다. 


글·사진 최재원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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