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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 흐르는 겹겹의 시간으로 타임리프

  • Editor. 서진영
  • 입력 2022.05.1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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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으로 향했다. 남쪽 바닷가 경남 고성이다. 작정하고 고성 뽀개기 여행이 아니라 인근의 통영 또는 남해 여행길에 더하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곳들을 소개한다. 그렇다고 콘셉트가 없을까. 오랜 퇴적층에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는 상족암부터 가야 시대 고분군, 밀물 땐 섬이 되고 썰물 땐 육지와 연결되는 솔섬까지 고성에 가면 겹겹의 시간을 체감할 수 있는 타임리프의 여행이 시작된다. 

●가야의 시간이 봉긋이

우리나라의 고대 문화가 꽃핀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도했던 삼국시대다. 이 세 나라만큼 기세를 떨치지 못하고 562년 신라에 흡수되면서도 한반도 안팎 여러 고대 국가에 상당한 문화적 영향력을 미친 나라가 있다. 한반도 남쪽 12개의 작은 부족 공동체가 세운 연맹 왕국 가야 이야기다. 가야는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압박을 당하며 통일 국가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품질 좋은 철 생산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교역을 통해 삼국 못지않은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적이라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데 가야 문화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고성에 있으니 바로 송학동 고분군이다. 고성은 가야를 이룬 6개의 부족 국가 가운데 소가야의 중심지였다. 고로 고성 무학산에 분포하고 있는 6기의 봉분은 소가야의 왕릉이란 이야기가 된다.

봉긋이 솟은 봉분 사이를 파란 하늘이 채우는 풍경이 최근 SNS에 사진 잘 나오는 곳으로 부각되며 방문객 수가 늘고 있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구릉이지만 걷는 것도 힘들지 않다. 2022년 4월 기준 송학동 고분군을 포함하여 경남 지방 7곳의 가야 고분군을 한데 묶어 세계유산 등재 절차가 진행 중이라 최근 더욱 주목을 받고 있으니 고성 나들이에 나섰다면 스쳐 지나가지 말 것. 고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가야 문화를 양껏 이해할 순 없겠지만 5~6세기에 형성되었다는 이 거대한 유적이 가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알아가는 마중물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
주소 :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


●바다의 시간에 따라 섬이었다가 뭍이었다가

소나무가 많다 하여 이름 붙은 솔섬이지만 실은 진달래 군락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시사철 그 모습 그대로인 소나무보다 화려하게 피고 지는 봄꽃에 시선이 더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솔섬 끝자락에는 ‘장여’라는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썰물 때는 솔섬과 연결되지만 밀물 때는 섬이 되는 곳이다. 바다에 시간이 지배하는 땅인 셈이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초중순이 아니더라도 솔향기 그윽한 솔섬 산책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섬 둘레로 데크가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다. 빠르게 걸으면 30분, 쉬엄쉬엄 걸으면 1시간 코스. 물때가 맞으면 장여까지 둘러 볼 수 있다. 

솔섬
주소 :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퇴적과 침식의 콜라보

상족암은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전에도 한려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기암절벽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던 곳이다. 해수면과 큰 차이 없이 낮게 깔린 너른 암반 위로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 밥상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상족(床足) 또는 쌍발이라 부른 것이 지명으로 굳었다. 

연령대에 따라 상족암 일대를 즐기는 방식이 다른데 아동 청소년 자녀가 있는 가족 여행객의 경우 상족암 위쪽에 위치한 고성공룡박물관과 더불어 생태관광을 즐기는 비율이 높다. 공룡에 큰 흥미가 없더라도 즐길거리는 충분하다. 덕명항에서 시작해 해안선 따라 상족암-몽돌해변-제천항-모래해변-입암항-병풍바위-맥전포항 코스의 해안누리길은 절로 걷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긴긴 차례를 기다려 꼭 하는 일이 있다.

파도에 깎여 암벽 깊숙이 굴이 뚫려 있는데, 굴 안에서 바다 풍경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이 상족암을 찾는 이들의 큰 즐거움이다. 퇴적과 침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어찌 기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상족암군립공원
주소 :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5길 42-23


●조선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숲 속에서

근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촬영지로 알려진 고성 장산숲은 그 역사가 조선 태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의 충신 정절공 호은 허기 선생이 신돈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고성으로 유배되는데 이후 장산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장산숲은 그가 ‘바다가 마을에 비치면 이롭지 않다’ 하여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품림으로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가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 만들어 사적인 것이다. 처음 조성될 당시에는 1km에 달하는 규모였으나 현재는 100m 남짓. 250여 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연못과 그 가운데 정자가 운치를 더한다.

장산숲
주소 : 경남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230-2


●문을 열면 시간 빼앗는 바다

카페 도어스에서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고성의 남쪽 바다를 조금 더 이국적으로 즐길 수 있다. 첫인상은 한 이온 음료 광고에 등장했던 지중해 마을 풍경이 떠오른다. 카페 도어스를 검색했을 때 #고성산토리니카페 해시태그가 등장하는 이유다.

도어스라는 이름처럼 ‘문’을 콘셉트로 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데, 기본 오션뷰에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프레임이 배치되어 있으니 주문은 뒷전이고 여기저기 자리를 바꿔가며 사진 찍는 무리들로 분주하다. 그러니 일단은 주문 전 확실히 ‘내 자리’를 맡아 두는 것이 좋다. 확실히 실내보다 야외 자리가 인기다. 참고로 키즈는 환영이지만 반려동물과는 함께 출입할 수 없는 노펫존. 

실컷 사진을 찍고는 주문한 음료로 목을 축이고 나면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어준 바다에 다시 시선이 꽂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 때리게 만드는 풍경에 바다를 향해 나란히 고쳐 앉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도 카페 도어스에서의 자연스런 흐름이다.

카페 도어스
주소 : 경남 고성군 고성읍 신월로 166

 

글·사진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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